서문
우리 민족의 삶과 정신 깊숙이 뿌리내린 무속 의례의 핵심에는 '무가(巫歌)'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무당이 부르는 노래를 넘어, 신과 인간을 잇는 신비로운 소리의 세계이자, 굿이라는 종교 의식 전체를 이끄는 생명력 넘치는 음악적 언어입니다. 지금부터 무가가 어떻게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다양한 지역적 색채를 띠며 발전해왔는지 그 깊은 세계를 탐험해 보겠습니다.
1. 굿의 심장, 무가: 신과 인간을 엮는 소리의 실타래
무가는 굿이라는 거대한 의례의 심장 박동과 같습니다. 이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신령을 부르고, 인간의 염원을 전달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영혼을 위로하는 살아있는 '소리의 실타래'입니다. 무당은 무가를 통해 신의 이야기를 이 땅에 풀어내고, 인간의 간절한 목소리를 하늘에 올립니다. 무가의 가락 속에는 조상들의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그리고 한과 신명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습니다. 무가는 굿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절차를 이끄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무당은 때로는 낮은 목소리로 신령을 조심스럽게 청하고, 때로는 격정적인 고음으로 신의 강림을 재촉합니다. 굿의 각 거리마다 내용과 목적이 다르듯이, 무가의 분위기도 천변만화합니다.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대목에서는 애절한 통곡이 담기고, 복을 기원하는 대목에서는 흥겨운 가락이 넘쳐납니다. 무가의 이러한 다층적인 감정선은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과 몰입을 경험하게 합니다. 무당은 무가의 주된 '창자(唱者)'이자 '이야기꾼'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가사를 읊는 것을 넘어, 몸짓과 표정, 그리고 즉흥적인 재담을 섞어가며 신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무가는 정해진 악보에 갇히지 않고, 굿판의 분위기와 참여자들의 반응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즉흥적으로 창조됩니다. 이러한 유동성과 생동감은 무가를 단순한 음악이 아닌, 살아있는 '구술 문학'의 형태로 만듭니다. 무가의 뿌리는 아득한 고대 공동체의 제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풍요를 기원하던 고대인들의 집단적인 의례에는 반드시 춤과 노래가 함께했습니다. 이 원시적인 소리의 향연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무가라는 독특한 예술 형식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무가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정신적 유산이자, 신과 인간이 소통하던 가장 원초적인 언어였던 셈입니다. 그것은 삶의 불안을 다독이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와 교감하려 했던 조상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소리입니다.
2. 소리의 지형도: 무가에 새겨진 지역의 숨결과 문화적 풍경
무악은 다른 민속음악과 마찬가지로 지역마다 고유한 음악적 특색을 지닌 '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토리'는 무당이 긴 노랫말을 읊조리듯 부르는 무가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며, 각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담아냅니다. 학자마다 무악권을 나누는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크게 네 개의 권역으로 분류합니다. 여기에 제주도를 독립적인 무악권으로 추가하기도 합니다.
첫째, 서울과 경기 지방의 무악은 '노랫가락조' 또는 '창부타령조'라고 불립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인 '노랫가락'이나 '창부타령'의 선율적 특징이 무가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서민들의 애환과 흥을 담은 가락이 무속 의례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죠. 이는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경기 지역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음악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둘째, 전라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상도 일부 지방의 무악은 흔히 '육자배기토리'라고 합니다. 이 역시 이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인 '육자배기'의 구성음과 선율 진행이 무가의 토리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과 흥이 교차하는 남도 특유의 정서가 무악에도 깊이 배어 있습니다. 굴곡 많고 애절한 가락은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셋째,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의 무악은 '수심가토리' 또는 '난봉가토리'라고 불립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인 '수심가'나 '난봉가'의 애잔하고 서정적인 가락이 무가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차분하면서도 깊은 감성을 담은 북서부 지역의 음악적 특징이 무악에도 반영된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이나 그리움을 담은 듯한 멜로디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넷째, 경상도나 강원도의 동해안 지방 무악은 '메나리토리'라고 부릅니다. 이 지역 민요의 독특한 음계 구성이 '메나리'라고 불리는데, 이와 동일한 음악적 특징을 가진 무가까지도 메나리토리로 칭하게 된 것입니다. 억세고 힘찬 동해안 지역의 기상이 무악에도 살아 숨 쉽니다. 거칠면서도 웅장한 바다의 기운이 춤과 노래에 스며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의 무악은 육지와는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서우젯소리토리'라고 불리는데, 이는 실제 굿에서 불리던 <서우젯소리>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져 민요처럼 불릴 정도로 대중성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각 지방의 무가 토리가 그 지방 민요의 토리와 동일하다는 것은, 무가가 굿 의식에서 각 지방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우러지는 곡조로 불려왔으며, 민요와 서로 밀접하게 관계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무가는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음악적 형태로 신과 소통하고 공동체의 염원을 담아냈던 것입니다.
3. 굿판을 채우는 소리의 조화: 악기들의 춤, 재비들의 숨결, 그리고 살아있는 전승
굿판은 단순한 의례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무당의 목소리와 악사들의 연주가 어우러져 신과 인간이 교감하는 거대한 '소리의 극장'입니다. 무가는 무당의 몫이지만, 굿의 전체적인 음악적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재비'라 불리는 악사들의 손끝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굿의 흐름을 읽고, 무당의 감정에 공명하며,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폭발적인 소리로 굿판의 신명을 조율합니다. 무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은 각기 다른 소리의 성격과 역할을 지니며 굿판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꽹과리의 날카로운 쇠소리는 신을 부르고 잡귀를 쫓는 강력한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굿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합니다. 장구의 다채로운 장단은 굿의 리듬을 만들고 무당의 춤사위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징의 깊고 웅장한 울림은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바라 같은 악기가 더해져 춤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합니다. 선율 악기의 사용 여부는 지역별 무악의 개성을 확연히 드러냅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피리, 젓대(대금), 해금 같은 선율 악기가 풍성하게 사용되어 굿 음악에 깊이와 섬세함을 더합니다. 이들 악기는 주로 남자 악사들이 담당하며, 장구와 바라는 여자 무당들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경상도와 강원도 동해안 지방,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선율 악기 없이 꽹과리, 장구, 징, 북 등 타악기만으로 굿을 진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제주도의 꽹과리 연주법은 독특한데, 꽹과리를 들고 치는 대신 채바퀴 위에 엎어놓고 대나무 막대기 두 개로 두드리는 방식으로, 섬 지역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리듬감을 만들어냅니다.
재비들은 단순한 연주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강신무' 지역인 한강 이북(서울, 서도 지방)에서는 특별한 교육을 받은 악기 전문가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세습무' 지역인 한강 이남(경기, 전라도, 동해안 지방)에서는 무당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굿판 현장에서 무악을 익힌 이들이 대를 이어 역할을 수행합니다. 재비에 대한 명칭도 악사, 악공, 산이, 양중, 화랭이 등 지역마다 다양하게 불립니다. 재비들의 임무는 무당의 무가에 '바라지'(후렴처럼 함께 부르는 소리)를 해주거나, 무당이 춤을 출 때 '구음(口音)'으로 살풀이 가락을 넣어주는 등 무당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굿의 전체 진행을 돕습니다. 때로는 재비가 직접 굿의 한 거리를 주재하기도 합니다. 경기 남부의 '돌돌이'나 동해안 지방의 '거리굿'은 재비 중 한 사람이 맡아서 진행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처럼 무악은 단순한 반주를 넘어, 굿이라는 의례의 의미와 감동을 증폭시키는 살아있는 예술이며, 이를 연주하고 전승하는 재비들의 삶과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마치며
무가는 단순한 소리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가장 깊은 신앙심과 예술혼이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굿이라는 종교 의식의 핵심을 이루며,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을 잇는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토리와 악기 편성, 그리고 무당과 재비의 역할은 무악이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한 음악적 유산인지를 보여줍니다. 무악이 다른 민속음악 전반에 끼친 지대한 영향은 우리 음악의 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비록 근대에 들어 그 위상이 약화되기도 했지만, 무악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오며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습니다. 이 소중한 무형유산을 기억하고 보존하며, 그 속에 담긴 신명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책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