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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의 아기 (1968), 가장 무서운 것은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즈메리는 임신을 원했고, 남편 가이와 함께 새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임신이 확인된 뒤부터 이상한 일이 하나씩 생긴다. 새로 만난 이웃은 지나치게 친절하고, 남편은 로즈메리를 걱정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의사는 그녀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해준다. 겉으로 보면 모두 로즈메리와 아기를 위한 행동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로즈메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는 《로즈메리의 아기》(1968)의 공포가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즈메리가 자신의 몸과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장 마지막까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이상한 이웃로즈메리와 가이..

시네마 클래식 2026.09.27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우주보다 오래 기억에 남은 세 장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는 처음부터 관객을 서두르게 하지 않는다. 우주선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인물들은 긴 시간 동안 말없이 화면에 머문다. 처음 볼 때는 “왜 이렇게 오래 보여주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거대한 우주 풍경보다 아주 작은 장면들이 떠오른다. 우주선 안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 HAL 9000의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원숭이가 던진 뼈가 순식간에 우주선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나는 이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주제를 설명하는 대신, 전혀 다른 크기의 장면들을 오래 보여주면서 관객이 직접 연결하게 만든다. ## 1. 우주 한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평소처럼 밥을 먹는다《2001》..

시네마 클래식 2026.09.19

플레이타임 (1967), 모든 것이 망가진 뒤에야 사람들은 편해졌다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1967)을 처음 보면 파리에 왔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도, 좁은 골목도, 익숙한 관광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유리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물, 넓은 도로, 비슷하게 생긴 복도가 계속 나온다. 미국인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움직이고, 윌로 씨는 약속 장소를 찾느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계속 길을 잃는다.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현대 건축을 비웃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티가 재미있게 보여주는 것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려고 만든 질서가 오히려 사람을 어색하게 만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서가 무너질 때 뜻밖에도 사람들은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 잘 ..

시네마 클래식 2026.09.18

밤의 열기 속으로 (1967), 처음에는 잡아가던 기차역에서 마지막엔 배웅했다

노먼 주이슨의 《밤의 열기 속으로》(1967)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티브스”라는 유명한 대사나 농장주 에릭 엔디콧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한 곳은 의외로 기차역이었다. 영화의 시작에서 흑인 남자 버질 티브스는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 스파르타에서 살인 사건과 관련된 용의자로 붙잡힌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 그는 다시 같은 기차역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경찰에 잡혀가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고 떠나는 경찰이다. 길스피에는 그의 짐까지 직접 들어준다. 같은 기차역인데 두 장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범인을 찾는 수사극으로만 보기보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

시네마 클래식 2026.09.17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1967), 나는 왜 이들을 응원하고 있었을까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를 처음 보면 보니와 클라이드가 꽤 멋있어 보인다. 보니는 창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어머니의 차를 훔치려는 클라이드를 발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따라나선다. 두 사람은 차를 훔치고 은행을 털고 경찰을 피해 달아난다. 그런데 영화는 처음부터 이들을 무섭기만 한 범죄자로 보여주지 않는다. 둘이 웃고 떠드는 모습과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에는 이상할 만큼 가벼운 생기가 있다. 당시에도 영화는 두 사람을 매력적인 비순응주의자로 보여주는 동시에 폭력과 범죄를 함께 내놓았고, 바로 그 모순 때문에 큰 논쟁을 불러왔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오히려 다른 질문이 남았다. **나는 왜 이 사람들을 응원하..

시네마 클래식 2026.09.16

졸업 (1967), 일레인을 데리고 나온 뒤 두 사람에게 찾아온 이상한 침묵

마이크 니컬스의 《졸업》(1967)은 대학을 졸업한 벤저민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부모는 그의 미래를 걱정하고, 주변 사람들은 직업과 결혼 같은 다음 단계를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그런데 벤저민은 그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다. 수영장에 떠 있거나 방 안에 가만히 있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벤저민이 조금 답답했다. 가진 것도 많고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도 많은데 왜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벤저민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는가 보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 생각으로 영화를 다시 보니 마지막 장면이 전혀 다르게 느..

시네마 클래식 2026.09.15

욕망(Blow-Up, 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본 이미지의 허구성

서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 영화가 아니다. 패션 사진가 토마스는 런던의 공원에서 한 남녀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처음에는 그 사진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인화하고 확대하면서 평범했던 장면이 조금씩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의 작은 모습과 남자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고, 토마스는 사진 속에 사건의 흔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진에 무엇이 찍혔는가'보다 '나는 왜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1. 사진을 확대할수록 오히려 확실하지 않아 진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토마스가 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스튜디오에서 하나씩 살펴보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

시네마 클래식 2026.09.14

페르소나 (1966), 말을 멈춘 사람이 오히려 상대의 진짜 모습을 끌어냈다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1966)는 시작부터 관객이 이야기에 편하게 들어가도록 만들지 않는다. 영사기와 필름이 돌아가는 모습, 짧게 이어지는 이미지들이 먼저 나오고 나서야 배우 엘리자베트와 간호사 알마가 등장한다. 엘리자베트는 무대에서 갑자기 말을 멈춘 뒤 침묵을 선택한 배우이고, 알마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 함께 외딴 별장으로 간다. 처음에는 역할이 아주 분명하다. 환자는 말을 하지 않고 간호사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 관계가 어느 순간 거꾸로 보이기 시작한다. 엘리자베트가 침묵할수록 알마가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그것도 남들에게 쉽게 하지 않을 이야기까지 꺼낸다. 나는 《페르소나》의 무서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도 나는 계속..

시네마 클래식 2026.09.13

남과 여 (1966), 새로운 사랑은 빈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클로드 를루슈의 《남과 여》(1966)는 겉으로 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다. 배우자를 잃은 남자와 여자가 아이들을 통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순간보다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안에게는 죽은 남편의 기억이 있고, 장 루이에게도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새로운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이미 한 번 사랑을 경험했고, 그 사랑을 잃어본 사람들이다. 내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만 보면 평범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과거의 기억이 계속 끼어든다. ##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시네마 클래식 2026.09.12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1966), 이 부부의 싸움에는 늘 관객이 필요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조지와 마사가 정말 서로를 싫어하는 부부처럼 보인다. 만나자마자 빈정거리고,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고,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도 상대를 망신시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두 사람은 싸우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누군가 보고 있을 때 싸움은 더 거칠어지고, 하나의 놀이처럼 변한다. 마사가 대학 파티가 끝난 뒤 새로 온 교수 닉과 그의 아내 허니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에서 두 부부가 벌이는 긴 밤의 말싸움은 단순한 부부싸움이라기보다 서로의 약점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여러 게임의 연속에 가깝다. 실제로 영화는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이야기는 술에 취한 하룻밤 동안 이 네 사람 사이에서 진행된..

시네마 클래식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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