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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터프런트〉(1954), 테리는 왜 마지막에 걸어야 했을까

infodon44 2026. 3. 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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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뉴욕 부둣가 영화 워터프론트 흑백 배경
비정한 부둣가의 안개,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양심

 

 

 

 

〈워터프런트〉(1954)를 다시 생각하면서 가장 이상하게 마음에 남은 장면은 마지막이었다. 테리는 이미 조이의 죽음에 대해 증언했다. 조니 프렌들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테리가 증언하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거의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얻어맞은 테리가 다시 부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그저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테리가 영화 내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떠올리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테리는 중요한 순간마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의 결정에 따라 움직여왔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테리가 얼마나 용감해졌느냐보다, **이번에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 테리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별로 없다

테리에게는 형 찰리가 있다. 영화에서 밝혀지는 과거를 보면 찰리는 테리가 권투선수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중요한 순간에 개입했다. 테리는 돈을 받고 경기를 져주었고, 그 일 이후 선수로서의 길을 잃었다. 테리가 형을 원망하는 이유는 단순히 권투를 그만두게 됐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택시 안에서 테리가 “컨텐더가 될 수도 있었다”고 말할 때에는 자신에게 다른 삶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묻어난다. 그런데 그 삶을 포기한 결정은 테리 혼자 내린 것이 아니었다. 부두에서의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테리는 조니 프렌들리의 밑에서 일하고, 조이를 옥상으로 불러내는 일에도 관여한다. 테리가 처음부터 조이의 죽음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할 수도 없다. 누군가가 시킨 일을 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행동을 없애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테리를 보면서 처음부터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이 결정해 주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사람에게는 침묵도 하나의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모르는 척하고, 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 테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 그런데 에디를 만나면서 그 방식이 점점 불편해진다

에디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테리는 자신이 해온 일을 예전처럼 모른 척하기가 어려워진다. 에디는 조이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테리는 그 질문을 피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나는 이 부분을 테리가 사랑 때문에 갑자기 착한 사람이 되는 과정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에디가 테리에게 **자신의 행동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된 것에 가깝다고 느꼈다. 테리는 에디에게 사실을 말하면 관계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으면 계속 거짓말 속에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프렌들리나 찰리의 지시 뒤에 숨을 수 있었지만, 에디 앞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에디와의 관계가 테리를 구원했다고 말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 에디가 테리 대신 선택해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말할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은 테리였다. 이렇게 보면 테리가 변하는 과정은 거창한 결심보다 오히려 **자기가 해온 일을 더 이상 남의 지시 뒤에 숨길 수 없게 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 찰리와의 택시 장면에서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된다

그래서 형 찰리와 택시에서 마주 앉은 장면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찰리는 테리에게 침묵하라고 한다.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고 설득하기도 한다. 테리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자 찰리는 결국 총을 꺼낸다. 이 장면을 형제 사이의 비극적인 갈등으로만 보면 테리의 과거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앞의 권투 이야기를 떠올리면 상황이 묘하게 반복된다. 예전에는 찰리가 테리에게 경기를 져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조니 프렌들리의 편에 서서 다시 입을 다물라고 한다. 테리는 과거에는 형의 말을 따랐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테리가 찰리에게 “컨텐더가 될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테리는 그제야 자기 인생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조금 더 분명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테리가 과거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다. 조이도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정해준 선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뒤 테리가 프렌들리에게 맞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였다.

 

### 마지막에는 아무도 테리 대신 걸어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테리는 거의 걷지 못한다. 프렌들리의 사람들에게 심하게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테리는 부두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나는 처음 장면들과 묘한 차이를 느꼈다. 영화 초반의 테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움직인다. 형의 말을 따르기도 하고, 프렌들리의 지시에 따르기도 한다. 조이를 옥상으로 불러낸 일 역시 자기 판단에서 시작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반대다. 누군가가 테리에게 일어나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테리 자신이다.** 그리고 그는 멀쩡하게 걷지 못한다. 비틀거리고, 힘들어하고, 거의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이 좋았다. 만약 테리가 마지막에 당당하게 걸어갔다면 영화가 너무 쉽게 끝났을 것 같다. 테리는 자신의 과거를 없애지 못했다. 자신이 조이의 죽음과 무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프렌들리와의 싸움에서 깨끗하게 승리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걸어간다. 나는 이제 그 장면을 보면서 ‘테리가 영웅이 되었다’는 생각보다 **‘이번에는 테리 자신이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워터프런트〉에서 가장 큰 변화는 테리가 갑자기 용감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결정에 기대어 살던 사람이, 늦게라도 자신의 행동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의 걸음이 그렇게 힘들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남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처음으로 자기 선택을 하고 그 결과까지 자기 몸으로 감당하는 일은 훨씬 힘들다.** 테리가 마지막에 걷는 모습은 그래서 승리의 행진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막 자기 발로 걷기 시작한 사람의 서툰 걸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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