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칼이 왜 그렇게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칼은 아버지 애덤에게 반항하고 형 아론과도 계속 부딪힌다. 겉으로 보면 아버지가 싫어서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처럼 보인다. 그런데 칼이 콩으로 돈을 벌어 아버지에게 가져가는 장면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는 전쟁 때문에 콩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돈을 벌었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보여준다. 단순히 돈을 자랑하려는 행동으로 보기에는 칼의 표정과 태도가 너무 간절하다. 나는 그 장면에서 칼이 돈을 보여주면서 사실은 다른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느꼈다. **“이 정도면 아버지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그런데 애덤은 그 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순간부터 나는 칼의 행동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칼은 사랑받기 위해 떼를 쓰는 아들이라기보다, **아버지가 인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아들**에 가까웠던 것이다.
### 칼은 자기 방식대로 사랑받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칼은 애덤과 성격부터 다르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주변을 맴돈다. 반면 아론은 애덤이 원하는 아들처럼 보인다. 단정하고 성실하며 아버지의 농장과 미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애덤이 아론을 믿는 것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칼에게는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는 아론처럼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콩 이야기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칼은 전쟁 때문에 콩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돈을 벌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가져간다. 그런데 애덤은 그 돈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서 칼이 가장 크게 상처받았던 것은 돈을 잃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처음으로 아버지가 인정할 만한 것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인정받지 못했다는 데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이 장면이 칼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칼은 “나를 사랑해 달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계속 무언가를 해낸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해내야 아버지가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계속 엇나간다.
### 아론은 칼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칼과 아론의 차이를 생각하면 형제 사이의 갈등도 조금 달라 보인다. 처음에는 칼이 아론을 질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론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있고, 칼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런데 아론이 특별히 칼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은 것은 아니다. 아론은 그저 자신이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칼에게 더 잔인하게 보였을 것 같다. 아론에게는 애덤의 인정이 이미 주어져 있다. 그런데 칼은 그것을 얻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 이 차이는 케이트를 둘러싼 진실에서도 드러난다. 칼은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사실과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지만, 아론은 어머니를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같은 가족 안에서 두 형제가 부모를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래서 칼과 아론의 갈등을 단순히 성격이 다른 형제의 싸움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같은 아버지에게서 서로 다른 사랑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이 아론에게 화를 내는 데에는 질투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밑에는 “왜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데 나는 계속 증명해야 하는가”라는 억울함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칼의 행동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수록 아론을 끌어내리려 했다는 점에서 칼 역시 가족의 상처를 더 크게 만든다.
### 결국 칼은 아론을 이겨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칼이 아론에게 케이트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은 단순한 폭로가 아니다. 그는 아론이 지금까지 믿어온 어머니의 모습을 무너뜨린다. 그 순간 칼은 아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론이 무너지고, 결국 전쟁터로 떠나게 된 뒤에도 칼은 행복하지 않다. 이것이 나는 《에덴의 동쪽》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칼이 원했던 것은 처음부터 아론의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론이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볼 때 칼은 그 자리를 빼앗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원했던 것은 아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아버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론이 떠난 뒤 칼에게 남은 것은 승리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장 원했던 사람에게서 더 멀어졌다는 느낌에 가깝다. 그제야 칼의 행동이 조금 안타깝게 보였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으려고 계속 싸웠지만, 그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마지막에 애덤 곁에 남은 칼을 보면서
아론이 떠난 뒤 애덤은 큰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칼이 아버지 곁에 남는다. 나는 이 장면을 칼이 드디어 아버지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에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칼이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할 수 없는 순간처럼 보였다. 돈도 이미 아버지의 인정을 얻지 못했다. 아론과의 경쟁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케이트의 진실을 드러낸 것도 결국 가족을 무너뜨렸다. 그런데도 칼은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칼의 모습이 처음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의 칼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보여주려고 했다. 마지막의 칼에게는 보여줄 것이 없다. 그냥 곁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결말을 **칼이 마침내 좋은 아들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읽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칼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일을 멈출 가능성이 생긴 순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애덤 역시 칼을 완벽한 아들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달라고 한다. 이 영화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은 완벽한 화해라기보다 아주 늦게 시작되는 관계처럼 느껴졌다. 칼은 끝내 아론처럼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 그래서 칼이 가장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에덴의 동쪽》을 처음 볼 때는 칼의 반항적인 행동이 가장 크게 보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행동 대부분에는 이상할 만큼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붙어 있다. 돈을 벌어도 아버지에게 가져가고, 아버지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가까이 가고, 아론과 싸우면서도 결국 아버지의 반응을 신경 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칼을 단순히 반항적인 아들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신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계속 실패하면서 칼은 더 거칠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씁쓸하게 남는 것은 칼이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사랑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고 믿었던 칼의 모습**이다. 어쩌면 칼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아론을 이기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아들이 되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다른 누군가와 똑같아지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나는 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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