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딘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1955년에 나온 **〈이유 없는 반항〉**이다. 처음에는 나도 짐 스타크의 반항적인 모습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플라토가 더 기억에 남았다. 짐은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집을 나갈 수 있었지만 플라토에게는 돌아갈 곳 자체가 없어 보였다. 세 사람 모두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의 모양은 꽤 달랐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단순히 ‘반항하는 청소년의 영화’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 경찰서에서 만난 짐과 주디, 그리고 플라토
**이유 없는 반항**은 세 청춘이 경찰서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짐은 술에 취해 경찰서에 왔고, 주디와 플라토도 각각 다른 이유로 붙잡혀 있다. 처음에는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아이들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세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어른과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짐은 아버지에게 실망한다. 특히 부모 앞에서 아버지가 제대로 자기편을 들어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짐은 더 화를 낸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짐의 말투보다 아버지가 허둥대는 모습이 더 답답했다. 짐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해결책이 아니라 아버지가 한 번쯤 자기편을 들어주는 일이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주디도 아버지와 부딪힌다. 예전처럼 딸을 어린아이로 대하는 아버지에게 주디는 반발하고, 그 반발은 점점 더 거칠어진다. 그런데 플라토는 조금 다르다. 그에게는 싸울 부모조차 제대로 곁에 없다. 집에 돌아가면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짐과 주디보다 플라토의 상황이 나는 훨씬 쓸쓸하게 느껴졌다. 세 사람이 나중에 가까워지는 것도 그래서 이해가 됐다. 서로 좋아서라기보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치키 런보다 내가 더 불편했던 것은 그 뒤였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치키 런**이다. 짐과 버즈는 훔친 자동차를 몰고 절벽을 향해 달린다. 자동차에서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겁쟁이가 되는 내기다. 짐은 처음부터 이 위험한 내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버즈가 계속 자극하자 물러서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짐이 멋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런 장면은 잘못 만들면 ‘위험하지만 멋있는 청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유 없는 반항〉은 그 순간을 그렇게만 보여주지 않는다. 버즈가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짐도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깨닫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짐이 처음으로 자기 행동의 결과를 제대로 마주한다고 느꼈다. 그 뒤 짐이 경찰에게 가려고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버즈의 죽음을 숨기고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부모는 다시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짐의 반항을 보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저럴까’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자기 마음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사람의 답답함**에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짐보다 플라토를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했다.
## 이유 없는 반항의 마지막, 플라토가 짐의 재킷을 입었을 때
**이유 없는 반항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 사람은 버려진 저택에 들어간다. 짐과 주디가 장난처럼 집 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플라토는 유난히 행복해한다. 짐이 아버지 역할을 하고 주디가 어머니 역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 사람은 잠시 가족처럼 행동한다. 나는 이 장면이 생각보다 슬펐다. 짐과 주디에게는 집이 답답한 곳이지만, 플라토에게는 이런 가짜 가족이라도 필요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플라토가 짐을 따르는 모습도 단순한 우정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짐에게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어른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특히 플라토가 짐의 빨간 재킷을 입고 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세 사람의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플라토가 짐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결국 경찰이 저택을 포위하고 플라토는 천문관으로 도망친다. 짐은 그를 설득하려고 들어가고, 플라토가 가진 총의 탄창을 몰래 빼낸다. 여기서 짐은 정말 플라토를 살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플라토는 밖의 경찰과 총구를 보고 다시 공포에 빠진다. 짐이 나오라고 설득하지만 플라토는 결국 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온다. 그리고 경찰의 총에 맞는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플라토가 단순히 ‘안타까운 문제아’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를 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끝내 배우지 못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플라토의 행동이 모두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총을 들고 경찰을 위협한 행동은 분명 위험했다. 하지만 영화가 그 행동만 보여줬다면 나는 플라토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전에 왜 그가 그렇게까지 짐에게 매달렸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에 마지막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마지막에 짐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이 앞으로는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겠다고 말하는 장면도 그래서 나는 마냥 따뜻하게 볼 수 없었다. **플라토가 죽고 나서야 어른들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청춘영화보다 더 씁쓸하다고 생각한다. 〈졸업〉의 벤저민처럼 기존 세대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청춘도 있지만, 짐과 플라토는 틀을 깨는 것보다 먼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을 찾고 있었다.**
## 마치며
나는 **〈이유 없는 반항〉**을 보고 나서 제임스 딘이 멋있다는 생각만 남지는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가장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플라토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짐은 부모에게 화를 낼 수 있었고 주디도 아버지에게 반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플라토는 자기 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조차 제대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제목에 있는 ‘이유 없는’이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정말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그 이유를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반항을 외로움이나 부모 탓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세 사람의 행동에는 분명 잘못도 있고, 그 결과는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반항하는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기가 조금 어려워진다. 나에게 〈이유 없는 반항〉은 결국 ‘반항하는 청춘’보다 **누군가에게 자기편이 되어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세 사람의 이야기**에 더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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