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창》을 봤을 때는 제프리스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그냥 재미있었다.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니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그런데 사진작가인 그는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름대로 추측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조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제프리스는 계속 남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창밖에서는 사람들이 연애를 하고, 싸우고, 이사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혼자 외로워한다. 제프리스는 그런 모습을 하나씩 지켜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프리스는 몸이 움직이지 못해서 창밖을 보기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동안 자신의 삶에서 결정해야 할 일도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창밖 사람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제프리스의 방에서 바라보는 이웃들의 모습은 아주 평범하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은 사람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여자, 피아노를 치는 남자, 막 결혼한 부부 등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사람들은 계속 움직인다. 물론 대단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밥을 먹고 누군가는 음악을 듣는다. 어떤 사람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생활 안에서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다. 반면 제프리스는 의자에 앉아 그들을 바라본다. 제프리스가 원래 사진작가였다는 사실이 여기서 묘하게 겹쳐 보였다. 그는 자동차 경주 현장처럼 위험한 장소에 직접 가서 사진을 찍던 사람이다. 하지만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에는 직접 세상으로 나갈 수 없게 됐다. 대신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이용해 눈앞의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것은 제프리스의 몸이 아니라 시선이다.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옮겨가고, 한 사람을 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돌린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한 심심풀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으면 조금 이상해진다. **남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제프리스는 그 삶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 결혼 이야기를 피하던 사람이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제프리스에게는 리사가 있다. 리사는 제프리스를 좋아하고 결혼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제프리스는 그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는 자신이 계속 여행하고 위험한 곳을 돌아다니는 사진작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하면 한곳에 묶이고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될 것처럼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제프리스의 상황이 조금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그가 그렇게 피하고 싶어 했던 ‘한곳에 갇힌 생활’을 사고 때문에 실제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리사에게 결혼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휠체어에 앉아 하루 종일 한곳에서 지낸다. 그러면서 창밖의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연애와 결혼, 외로움과 갈등을 구경한다. 이웃들의 삶은 제프리스에게 꽤 좋은 구경거리다. 미스 론리하츠가 외로워하는 모습도 보고, 미스 토르소가 사랑을 기다리는 모습도 본다. 신혼부부가 처음에는 행복해하다가 점점 다투는 모습도 본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자기 이야기를 잠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제프리스가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사람은 자기 문제보다 남의 문제가 더 쉽게 보일 때가 있다. 남의 연애나 결혼을 보고 있으면 어떤 것이 잘못됐는지 말하기도 쉽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제프리스도 비슷해 보였다. 창밖에는 볼 것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리사가 계속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 창밖의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아내는 일이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른다.
### 리사는 제프리스가 하지 못했던 일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리사의 행동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제프리스는 멀리서 상황을 관찰한다. 망원렌즈로 쏜월드의 집을 바라보고, 그가 수상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나씩 확인한다. 리사는 다르다. 결국 직접 쏜월드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제프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보고 판단하는 일이지만, 리사는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인다. 특히 리사가 아파트 안에서 단서를 찾고 있을 때 제프리스는 방 안에서 그것을 지켜본다. 이 장면에서는 그동안의 관계가 조금 뒤집혀 보인다. 창밖을 바라보던 제프리스가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때 제프리스가 얼마나 답답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동안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핑계 삼아 많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리사가 위험해지자 제프리스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느낀다. 그리고 리사를 보면서 나도 처음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리사가 제프리스의 생활방식과 맞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제프리스는 리사가 자신의 여행과 사진 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위험한 순간에 행동하는 쪽은 리사다. 제프리스가 창밖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리사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니 조금 웃겼다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제프리스의 다리는 여전히 낫지 않았다. 오히려 양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 영화 초반보다 상황이 좋아졌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마지막에 리사가 제프리스 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져 있다. 리사는 제프리스가 좋아할 만한 모험 여행책을 읽는 척한다. 그러다가 제프리스가 잠들자 책을 내려놓고 《Harper's Bazaar》를 펼친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농담처럼 보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장면이 꽤 마음에 남았다. 제프리스가 리사를 자기 방식대로 살게 만들 필요도 없고, 리사가 제프리스처럼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리사는 제프리스가 좋아하는 세계에 잠시 맞춰주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책을 읽는다. 어쩌면 제프리스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그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과 다른 사람을 꼭 자기 기준에 맞춰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 영화가 끝날 때 제프리스는 여전히 창밖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처음과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창밖에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생활이 있고, 앞으로도 아마 그는 그것을 볼 것이다. 다만 나는 이번에는 그 창문보다 제프리스의 방 안이 더 신경 쓰였다. 사건이 해결됐다고 해서 제프리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친 다리는 언젠가 나을 것이고 다시 사진을 찍으러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리사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창밖을 바라보는 일은 계속할 수 있다. 그것은 제프리스에게 아주 익숙한 일이니까. 그런데 결국 어느 순간에는 **창밖의 사람들을 보는 것보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과 자신의 삶을 바라봐야 할 때가 온다.** 나는 《이창》을 다시 보고 나서 오히려 그 부분이 조금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온통 창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궁금했는데,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제프리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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