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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속 서문국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은 물론 조선 궁중에서도 조차도 성행했던 조선시대 무속의 세계에 대해 살펴보자.   1. 무격신앙의 성행 풍농을 기원하던 고대의 제천의식은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산천제·기우제 등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는 음사를 배척하던 유교주의국가였음에도 이러한 공동제의 만은 그대로 허용됐다. 특히, 고려 중엽부터 산신제의 일부였던 서낭제는 조선시대에는 국행관제(國行官祭)나 일반 민중의 촌락제로도 받아들여져 성행했다. 반면 무격은 속된 것으로 여겨 금하는 법령을 내리고 이를 성 밖으로 내몰았지만 고려시대 중엽부터 성행하던 무격신앙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널리 퍼지게 된다.  결국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무격신앙이 성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자면 15, 16세기 임진왜란 전에는 .. 2024. 5. 3.
조선시대의 민간신앙과 개화기 이후 서문조선시대는 무속신앙과 민간신앙이 서로 얽혀 그 시대의 화려한 영적 풍경을 형성했다. 반면 개화기 이후에는 서구문물의 유입과 일본의 탄압으로 우리 고유의 신앙이 크게 위축된 시기였다. 1. 조선시대의 민간신앙 1) 무속신앙의 번조선시대에는 불교는 억압했지만 무속신앙은 계속 번창했다. 하지만 금무(禁巫)라는 국가정책에 따라서 무속이 지나치게 표면에 드러나고 지나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소 제한되었다. 사제무가 기우 · 기은 · 기자 · 산천제 · 성황제 등을 지냈으며, 성수청과 활인서 같은 국가기관에 국무(國巫) 또는 무녀를 두어 국민의 질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그 외에도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는 점복무(占卜巫)가 크게 성행하였다. 2) 여러신에 대한 민간신앙또한, 고려시대 못지않게 여러 신에 대한 민.. 2024. 5. 3.
풍수 서문풍수의 유형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도읍이나, 주나 면 같은 큰 단위 면적의 풍수를 보는 양기 풍수와 개인의 주택과 관련한 양택풍수, 묘지 자리를 보는 음택 풍수가 그것이다. 현대에도 집안팎의 에너지 흐름과 공간 배치를 중시하듯이 이와 관련해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만나보자. 1. 양택풍수와 음택풍수도읍이나 지방 행정 단위인 주, 부, 군, 현, 혹은 마을과 같이 단위가 큰 취락풍수의 경우에는 양기풍수라는 말을 쓴다. 개인의 주택과 관련된 풍수는 양택풍수라고 하며, 산소의 자리와 같은 묘지풍수는 음택풍수라 한다. 하지만 위의 세 가지 풍수 종류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설심부』에 “양택은 음택과 달리 그 땅의 면적이 넓어야 한다. 양택은 좁으면 안 된다”는 부분이 있는데, .. 2024. 5. 3.
놀이 - 아이들의 놀이와 아낙네들의 놀이 서문놀이란 인간의 생존과 관련이 있는 활동과 일이 아닌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행해지는 활동을 뜻한다. 옛 선조들도 일정한 육체적 · 정신적인 활동을 통하여 정서적 공감과 정신적 만족감을 얻으려 했다. 오늘은 아이들의 놀이와 아낙네들의 놀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아이들의 놀이아이들의 놀이도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의 놀이가 각기 다르다. 성적 특징에 따라 놀잇감과 놀이양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1)  사내아이들의 놀이사내아이들의 놀이로는 고누 · 땅재먹기 · 자치기 · 제기차기 · 장치기 · 깡통차기 · 딱지치기 · 돌치기 · 말타기 · 군사놀이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놀이는 놀잇감이 필요 없거나 필요로 하는 경우에도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단순하고 간단한 것들이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2024.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