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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Blow-Up, 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본 이미지의 허구성

서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 영화가 아니다. 패션 사진가 토마스는 런던의 공원에서 한 남녀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처음에는 그 사진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인화하고 확대하면서 평범했던 장면이 조금씩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의 작은 모습과 남자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고, 토마스는 사진 속에 사건의 흔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진에 무엇이 찍혔는가'보다 '나는 왜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1. 사진을 확대할수록 오히려 확실하지 않아 진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토마스가 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스튜디오에서 하나씩 살펴보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

시네마 클래식 2026.09.14

페르소나 (1966), 말을 멈춘 사람이 오히려 상대의 진짜 모습을 끌어냈다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1966)는 시작부터 관객이 이야기에 편하게 들어가도록 만들지 않는다. 영사기와 필름이 돌아가는 모습, 짧게 이어지는 이미지들이 먼저 나오고 나서야 배우 엘리자베트와 간호사 알마가 등장한다. 엘리자베트는 무대에서 갑자기 말을 멈춘 뒤 침묵을 선택한 배우이고, 알마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 함께 외딴 별장으로 간다. 처음에는 역할이 아주 분명하다. 환자는 말을 하지 않고 간호사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 관계가 어느 순간 거꾸로 보이기 시작한다. 엘리자베트가 침묵할수록 알마가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그것도 남들에게 쉽게 하지 않을 이야기까지 꺼낸다. 나는 《페르소나》의 무서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도 나는 계속..

시네마 클래식 2026.09.13

남과 여 (1966), 새로운 사랑은 빈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클로드 를루슈의 《남과 여》(1966)는 겉으로 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다. 배우자를 잃은 남자와 여자가 아이들을 통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순간보다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안에게는 죽은 남편의 기억이 있고, 장 루이에게도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새로운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이미 한 번 사랑을 경험했고, 그 사랑을 잃어본 사람들이다. 내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만 보면 평범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과거의 기억이 계속 끼어든다. ##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시네마 클래식 2026.09.12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1966), 이 부부의 싸움에는 늘 관객이 필요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조지와 마사가 정말 서로를 싫어하는 부부처럼 보인다. 만나자마자 빈정거리고,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고,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도 상대를 망신시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두 사람은 싸우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누군가 보고 있을 때 싸움은 더 거칠어지고, 하나의 놀이처럼 변한다. 마사가 대학 파티가 끝난 뒤 새로 온 교수 닉과 그의 아내 허니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에서 두 부부가 벌이는 긴 밤의 말싸움은 단순한 부부싸움이라기보다 서로의 약점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여러 게임의 연속에 가깝다. 실제로 영화는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이야기는 술에 취한 하룻밤 동안 이 네 사람 사이에서 진행된..

시네마 클래식 2026.09.11

닥터 지바고 (1965), 마지막의 발랄라이카를 보고 나서야 처음 장면이 달라진다

영화가 거의 끝났는데도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은 장면이 있다.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딸일지도 모르는 타냐가 공사 현장을 걸어간다. 그녀가 어깨에 발랄라이카를 메고 있는 것을 본 예브그라프가 묻는다. 타냐가 발랄라이카를 잘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짧게 말한다. “그렇다면 재능이군.” 이 마지막 장면은 처음 보면 조금 이상하다. 정말 이것만으로 타냐가 유리와 라라의 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그런데 《닥터 지바고》(1965)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관객이 앞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가 처음으로 돌아가면 어린 유리가 어머니가 남긴 발랄라이카를 물려받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는 발랄라이카를 잘 연주했고, 그녀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TCM은 영화 초반 ..

시네마 클래식 2026.09.10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노래가 시작되면 사람과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들에게 음계를 가르치는데 굳이 산과 거리까지 돌아다녀야 할까.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Do-Re-Mi’를 보면 정말 그렇게 한다. 마리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가고, 계단을 오르고, 잘츠부르크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그냥 밝고 즐거운 음악 장면처럼 보인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조금씩 다른 점이 보인다. 노래가 끝날 때쯤 아이들은 처음과 같은 아이들이 아니다. 마리아와도 가까워져 있고, 집 안에서만 지내던 모습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 영화를 음악을 중심으로 보면 이런 장면들이 꽤 재미있다. 노래가 단순히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까지 바꿔놓기 때문이다. ## 1. ‘Do-Re-Mi’는 음악 수업인데, 아이들은 자꾸 집 ..

시네마 클래식 2026.09.09

황야의 무법자 (1964), 이름 없는 총잡이는 왜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될까

산미겔에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남자는 자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어디에서 왔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점점 더 선명해진다. 대사 때문은 아니다. 판초를 걸치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는 눈, 걸음걸이, 그리고 등장할 때 들리는 음악 같은 것들이 자꾸 쌓인다. 나는 이게 《황야의 무법자》(1964)의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를 자세히 설명해서 그를 유명한 총잡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보이고 들리는 것만으로 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 1.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말을 줄였는데, 인물은 더 또렷해졌다이름 없는 남자는 정말 말..

시네마 클래식 2026.09.08

쉘부르의 우산 (1964), 색과 멜로디가 사랑의 시간을 바꾸는 방법

분홍색 벽 앞에 같은 계열의 옷을 입은 인물이 서 있고, 가게 안쪽까지 비슷한 색으로 이어진다. 《쉘부르의 우산》(1964)을 보다 보면 이런 장면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만 예쁘게 찍은 것이 아니라 벽과 가구, 옷까지 서로 맞물려 있다. 처음에는 그냥 화려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조금 오래 보고 있으면 이 색이 단순한 장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노래가 중요한 장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평범한 이야기를 할 때도 계속 음악이 흐른다. 실제로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되는 이른바 sung-through 방식이고,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사랑 이야기와 일상적인 대화를 같은 음악적 세계 안에 넣어버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영화를 **색과 음악이 시간의 흐름..

시네마 클래식 2026.09.07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64),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재앙을 만들어낸다

. “물에 불소를 넣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핵전쟁으로 이어진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황당하다. 그런데 잭 리퍼 장군은 농담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고, 그 믿음 때문에 소련에 대한 핵공격까지 명령한다. 이상한 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펜타곤의 워룸에 모인 사람들은 리퍼와 전혀 다르다. 한쪽에서는 공격을 막으려고 머리를 맞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폭격기를 탄 군인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세 곳의 분위기도 다르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다. 그런데 결국 세 방향이 한곳으로 모인다. 나는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한 명이 특별히 괴상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는 나름대로 ..

시네마 클래식 2026.09.06

클레오파트라 (1963), 거대한 역사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선택이다

《클레오파트라》(1963)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큰 장면이다. 사람도 많고, 의상도 화려하고, 궁전이며 배며 행렬이며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다. 영화 자체가 워낙 커서 처음 볼 때는 화면의 크기에 먼저 압도되기 쉽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으면 묘한 점이 보인다. 막상 이야기를 움직이는 순간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수천 명 나오는 장면보다 몇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중요한 일이 결정되고, 거대한 전쟁도 결국은 몇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규모가 큰 장면과 중요한 장면이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융단 하나에서 시작된 만남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를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그렇다. 이집트의 왕위를 둘러싼 상황은 복..

시네마 클래식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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