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컬럼

[우리 민속의 인문학] 갓난아기에게 던져진 '짚신'과 이름의 유래: 고대인이 설계한 생명 보호 전략

infodon44 2026. 1. 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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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여러분은 혹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짚신을 던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면 자칫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섬뜩한 행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기이한 풍습 속에는 고대인의 깊은 생명관과 자식을 향한 눈물겨운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아기 이름의 유래와도 놀랍게 연결되는 이 민속적 관습을 통해,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시대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연약한 생명을 지키려 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과 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1. 아기 이름과 짚신의 상관관계: 액막이와 장수 기원을 위한 속임수 주술 구글

한국 민속에서 아이에게 천한 이름을 지어주고 짚신을 던지는 행위는 질병과 악귀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려는 고도의 기만 주술적 방어 체계입니다. 저도 어릴 적 옛 어른들이 이름을 천하게 지어야 오래 산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실제로 우리 반에 '개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아이가 있었는데, 이 한글 이름을 호적에 올릴 수 없어 굳이 맞는 한자를 찾아 '개덕'이라고 올렸다고 했습니다. 이런 '막대 이름' 풍습이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아이의 장수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주술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합니다. 또한, 어릴 적 저희 어머니도 제가 학교에 갈 때면 꼭 주머니에 작은 콩 두어 알을 넣어주시곤 했습니다. 시험 잘 보라고, 혹은 길 가다 나쁜 일을 당하지 말라고 하셨죠. 저는 그것이 일종의 '수호물'이라고 믿으며 지니고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콩이라는 하찮은 것이 나를 지켜줄 리 없지만, 그때의 어머니도 제게 짚신을 던지던 고대인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부터 자식을 지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셨던 것 같아요.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정의하는 **기만주술(欺瞞呪術)**의 핵심은 '가치 전도를 통한 보호'입니다. 이를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희생양 메커니즘'**과 연결하면 매우 강력한 논리가 형성됩니다. 지라르에 따르면 공동체는 파멸적 폭력(재앙)을 피하기 위해 실제 대상 대신 '대체 희생물'을 내세워 분노를 잠재웁니다. 여기서 **'개똥이'라는 천한 이름은 아이의 고귀한 실체를 감추기 위한 학술적 의미의 '기표적 희생'**이 됩니다. 죽음의 신이라는 초자연적 폭력 앞에서, 부모는 아이의 진짜 이름을 지우고 '천한 이름'이라는 가짜 정체성을 씌웁니다.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의 대체 가능성'이 민속적으로 발현된 것이죠. 즉, 짚신을 던지는 행위는 짚신이라는 물질적 희생양을 물리적으로 축출하는 것이고, 천한 이름을 짓는 것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회적으로 가치 없는 것으로 위장하여 재앙의 타깃에서 벗어나게 하는 존재론적 희생양 전략인 것입니다. 결국 천한 이름은 아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신을 속여 아이를 살려내는 가장 정교한 인문학적 방패입니다.

 

2. 취약한 생명 보호를 위한 의례: 위험 전가와 심리적 안정의 메커니즘 구글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사회에서 짚신 던지기는 불안을 외부 대상으로 옮겨 부모의 심리적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인류학적 적응 기제입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하여 큰 수술을 기다릴 때가 있었습니다. 의사도 수술 부위를 열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말을 하던 긴박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병실에서 신에게 저를 버리시지 말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 수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이 절대적인 두려움 앞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짚신을 던지던 고대인들의 마음도 이처럼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싶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인간이 혼돈(Chaos)을 극복하고 코스모스(Cosmos)를 세우기 위해 '신성한 경계'를 설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저서 **『성과 속』**의 관점에서 볼 때, 아기의 탄생은 성스러운 세계에서 세속의 세계로 진입하는 가장 위험한 '경계적 사건'입니다. 이때 '이름'은 한 인간이 사회적 질서(Cosmos) 안에서 좌표를 얻는 성소(Sanctuary)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정식 이름을 갖기 전의 영아는 아직 질서 밖에 머물고 있기에 악귀라는 '혼돈'에 노출됩니다. 짚신을 던지는 행위는 엘리아데가 강조한 **'공간의 정화'**와 일맥상통합니다. 부정한 기운을 짚신에 담아 질서 밖으로 추방함으로써, 아이가 머무는 공간을 신성한 영역으로 유지하려는 의지입니다. 이는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피투성' 개념인 '세상에 내던져진 불안'을, '짚신을 던지는 의례'라는 능동적 행위로 치환하여 심리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고도의 실존적 방어 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이름과 생명의 가치: 고대적 기원에서 현대적 책임으로의 전이 구글

천한 이름으로 액운을 속이던 과거의 지혜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아동의 고유한 존엄성을 지키는 보편적 인권과 사회적 시스템의 확충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저는 길을 가다가 아동 학대 관련 공익 광고를 볼 때면, 순간 과거 짚신을 던지며 아이의 액운을 막으려 했던 고대인들의 간절함이 떠오르곤 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이렇게 귀하고 존엄하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름 모를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현실을 볼 때마다, 현대 사회는 고대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작은 행동이지만, 아동 보호 관련 시민 단체를 후원하고, 주변에서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을 목격하면 주저 없이 신고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현대판 짚신 던지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명명한 『액체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단단했던 공동체적 안전망이 녹아내리고 개인은 고립된 위험에 처합니다. 과거의 '짚신 던지기'가 마을 전체가 참여하여 한 아이의 이름을 지켜주던 공동체적 의례였다면, 오늘날의 위기는 시스템의 부재가 아닌 '연대의 부재'에서 옵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사회적 자본' 개념을 빌려오면, 오늘날 아이의 이름을 존엄하게 지켜주는 것은 더 이상 주술적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와 시스템의 영역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민속 기록을 통해 보존하고자 하는 정신은 바로 이러한 '생명 공동체'의 복원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짚신 던지기는 소외된 생명들을 위해 사회적 자본을 재배치하고, 모든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존엄하게 꽃피울 수 있도록 제도적 방어막을 형성하는 윤리적 실천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마치며

갓난아기에게 던져진 '짚신'은 단순히 기이한 옛 풍습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시대 속에서 연약한 생명을 지키려 했던 고대인의 간절한 생명 존중 의지이자, 희망을 담은 아기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 주는 깊은 민속적 지혜였습니다. 보잘것없는 짚신 하나에도 아이의 장수와 행복을 기원했던 조상들의 마음은, 우리에게 삶의 취약성에 대한 겸손한 인식과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일깨웁니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민음사, 2004. 

미르치아 엘리아데, 『성과 속』, 학고재, 1998. 

지그문트 바우만, 『액체 현대』, 강,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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