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컬럼

[시공간의 인류학] 어둑시니는 왜 어두울 때만 나타날까? 빛과 어둠의 민속학적 의미

infodon44 2026. 1. 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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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시야의 끝에서 자라나는 무의식의 괴물 해 질 녘, 볕이 들지 않는 골목 어귀나 컴컴한 방 안에서 문득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혹시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묘한 압박감을 경험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우리 민속 설화 속에는 어둠이 깔려야만 비로소 활동을 시작하는 신비로운 존재, 바로 '어둑시니'가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민속 연구 자료에 따르면, 어둑시니는 단순한 요괴를 넘어 인간의 인지 체계와 두려움의 역학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해 그 본질을 탐색해 보겠습니다.

 

1. 빛과 어둠의 민속학적 의미와 신성한 경계: 어둑시니와 고대인의 우주론

민속학적 관점에서 '빛'은 질서와 양(陽)의 기운을, '어둠'은 혼돈과 음(陰)의 기운을 상징하며, 어둑시니는 인간이 침범해서는 안 될 신성한 경계를 수호하는 상징적 장치였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 살던 동네 꼭대기에 성황당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나무에 여러 헝겊이 묶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낮에도 어쩐지 으스스하고, 어른들은 '밤에는 절대 근처에도 가지 마라. 섣불리 기웃대면 큰일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곳은 저에게 단순히 어두운 장소가 아니라,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경계'이자 '무언가 미지의 힘이 있는 신성한 금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둑시니가 밤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 성황당 또한 어둠이 깔리면 더 강렬한 두려움을 주며 '지켜야 할 규칙'을 강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세계를 '성(聖, 신성함)'과 '속(俗, 세속적임)'으로 구분하며, 성황당과 같은 공간을 두 세계가 만나는 **'히에로파니(Hierophany, 성스러움의 현현)'**의 장소로 보았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한국 민속 신앙 연구에 따르면, 어둑시니가 어둠 속에서만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밤이라는 시간이 인간의 영역(속)이 아닌 신령과 미지의 존재들의 영역(성)으로 치환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느끼셨던 성황당의 공포는 단순히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질서가 사라진 혼돈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집단적 무의식의 경고'**였습니다. 즉, 어둑시니는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겸손해야 함을 일깨우는 존재론적 경계선이었던 셈입니다.

 

2. 미지와 불안이 투영한 존재: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비추는 심리적 거울

어둑시니가 시선에 반응해 커지는 현상은 인간의 공포가 대상을 비대하게 만드는 **투사(Projection)**의 심리 기제를 상징하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곧 자아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예전에 제가 아주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잠을 설친 적이 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실수하면 어쩌지?', '말을 더듬으면 어떻게 하지?', '이야기의 맥락을 잊어버리면 어쩌지?' 같은 불확실한 미래가 마치 어둠 속의 존재처럼 저를 집어삼킬 듯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결국 이것은 실체가 없는 내가 만들어낸 공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 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은 내용을 완벽하게 암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프레젠테이션 대본을 완전히 외우고 나니, 불안감은 마법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때 저는 '지식과 준비'가 미지의 공포를 잠재우는 가장 강력한 '빛'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은 의식에 의해 거부된 부정적 측면을 **'그림자(Shadow)'**라고 불렀습니다. 어둑시니는 바로 이 심리적 그림자가 외부에 형상화된 존재입니다. 쳐다볼수록 커진다는 설정은 심리학의 **'인지적 편향'**과 일치하는데, 우리가 공포의 대상에 과도하게 집중할수록 뇌는 위협 정보를 증폭시켜 실제보다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제가 프레젠테이션 전의 불안을 '완벽한 숙지'라는 지식의 빛으로 소거한 과정은, 융이 강조한 '그림자의 의식화(Shadow Integration)' 즉, 무지의 영역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와 통제권을 회복하는 철학적 승리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설화 분석에서도 어둑시니를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이 '관심을 끄거나 빛을 비추는 것'인 이유는, 이성이 작동하는 순간 실체 없는 공포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현대 사회의 어둠과 그림자: 정보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

오늘날의 어둠은 물리적 암흑이 아닌 익명성과 가짜 뉴스라는 정보의 불확실성으로 존재하며, 타인의 삶을 추종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현대판 어둑시니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환상 방망이'는 바로 'SNS 속 타인의 완벽한 삶'을 따라가려는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좋아 보이는 사진, 더 화려한 경험, 더 멋진 소유물을 전시하고, 이를 통해 '좋아요'와 '팔로워'를 얻으려 합니다. 저 역시 한때 타인의 완벽한 일상을 보며 상대적 결핍감에 시달리고, 나도 저런 삶을 소유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욕망은 따라갈수록 채워지기는커녕 더 큰 결핍감을 낳았고, 결국 고유한 나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만족을 향해가는 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이 환상 방망이가 주는 환상처럼, SNS 속 타인의 삶은 실체가 없는 소유욕만을 부추긴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 사회를 확실성이 결여된 **'액체 현대(Liquid Modernity)'**로 정의했습니다. SNS상의 화려한 이미지들은 실체가 없는 **시뮬라크르(환상)**이며, 이를 맹목적으로 쳐다볼수록 제가 느꼈던 '결핍의 어둑시니'는 기괴할 정도로 몸집을 불려 나갑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현대 민속 고찰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환경의 익명성은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어두운 숲'이 되었습니다. 이 가상공간에서 타인의 시선에 종속되는 것은 곧 어둑시니에게 자아를 먹히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타인의 빛을 쫓는 것이 아니라,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성찰의 등불'**을 켜고, 고유한 삶의 서사를 긍정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입니다.

 

마치며

어둑시니 설화는 단순히 오래된 괴담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라는 우주적 질서 속에서 인간 내면을 이해하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유산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보존해 온 이러한 지혜의 기록들은 우리가 마주한 불안과 공포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시선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물리적인 전등을 넘어 비판적 사고와 자아 성찰이라는 '마음의 빛'을 밝힐 때, 우리는 비로소 어둠을 헤쳐 나갈 진정한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전체 출처 및 참고문헌

 

미르치아 엘리아데, 『성과 속』, 이은봉 역, 학고재, 1998.

칼 융, 『인간과 무의식』, 이부영 역, 집문당, 1995.

지그문트 바우만, 『액체 현대』, 이일수 역, 강, 2009.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 민속 대백과사전: 한국의 요괴와 정령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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