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컬럼

['씨족 공동체' 해체 이후: 현대인의 '소속감' 갈망, 그 새로운 형태를 탐색하다]

infodon44 2026. 1. 2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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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인류 역사에서 '소속감'은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는 감정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원초적인 욕구였습니다. 고대의 씨족 공동체는 혈연을 기반으로 한 끈끈한 유대로 개인에게 정체성, 안정감, 그리고 명확한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와 개인주의의 확산은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를 가져왔고, 오늘날 우리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사료를 바탕으로 전통적 씨족 공동체가 제공했던 소속감의 본질을 재조명하고, 현대 사회의 소속감 결핍이 초래하는 존재론적 위기, 그리고 사람들이 취향과 가치를 중심으로 '신인류적 부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1. 씨족 공동체의 시대, '나'는 곧 '우리'였다: 강제적 결속이 주는 안온함

씨족 공동체 시대에 개인은 집단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는 일체화된 구조 속에 놓여 있었으며, 이는 현대인이 상실한 강력한 심리적 안전망이었습니다.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Ferdinand Tönnies)**는 저서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를 통해 혈연과 감정, 전통에 기반한 본능적 결합 형태를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라고 정의했습니다. 퇴니에스의 핵심 논리는 이 공동체가 개인의 선택이 아닌 '본질의지'에 의한 유기적 결합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 안에서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존재를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하며 강력한 소속감을 형성합니다. 또한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저서 **『사회분업론』**에서 이를 '기계적 연대'로 보충 설명하며, 유사한 노동과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의식이 개인을 완벽히 보호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한국의 무형유산: 구비전승·전통지식』**의 집성촌 조사 사료는 이러한 게마인샤프트적 결속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마을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생존 단위로 묶어왔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릴 적 제 기억 속의 동네는 문턱이 낮았습니다. 다들 문을 열어놓고 살며 이웃이 곧 가족이었죠. 골목만 나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긴밀했습니다. 물론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시절 우리가 느꼈던 '기댈 곳이 있다는 감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재난 같은 위기 상황에서 마을 어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은,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된 '상호 부조'의 본능이 혈연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 확장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2. '원자화된 개인'의 고독: 액체 현대가 남긴 존재론적 불안

현대 사회로 이행하며 가속화된 '원자화'는 전통적 유대가 사라진 자리에 자유와 맞바꾼 깊은 심리적 공허함을 남겼습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저서 **『액체 현대(Liquid Modernity)』**에서 현대 사회를 모든 관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액체'의 상태로 규정하고, 개인이 겪는 존재론적 불안을 경고했습니다. 바우만의 핵심 근거는 현대의 인간관계가 '헌신'보다 '연결'에 치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가 논문 **「약한 유대의 힘」**에서 언급한 정보 효율적 연결조차 정서적 결핍을 채워주기에는 지나치게 기능적이고 휘발적이라는 것이 바우만의 논지입니다.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개인은 독립적인 주체가 되었으나,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견고한 사회적 지지망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사는 삶이 주는 자유가 좋을 때도 있지만 문득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고독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주말 저녁 창밖의 불 켜진 아파트들을 보며 느끼는 씁쓸함은 단순히 옆에 누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딘가의 일부'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의 연구에 따르면, 부유한 상류층보다 사회적 지지망이 탄탄한 저소득층의 행복도가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는 인간이 경제적 풍요보다 '정서적 지지'를 통해 생존 의미를 찾는 존재임을 방증합니다. 저는 이 고독을 회피하기보다 마주하려 합니다. 음악에 몰입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심사를 나누며, 현대적인 방식으로 나만의 '심리적 영토'를 구축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3. '자발적 연결'의 시대: 취향과 가치로 뭉치는 '신부족주의'의 등장

전통적 혈연 구조를 대체하여 나타난 '자발적 연결'의 시대에는 강제적 굴레가 아닌 개인의 선호에 기반한 유연하고 강력한 새로운 연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는 저서 **『부족의 시대』**를 통해 현대인들이 감성과 취향을 중심으로 재결합하는 '신부족주의(Neo-tribalism)' 현상을 통찰했습니다. 마페졸리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이성 중심의 대형 조직에서 감성 중심의 소규모 공동체들로 파편화되면서도, 그 안에서 더욱 강렬한 소속감을 발현합니다. 또한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제3의 장소』**에서 강조했듯, 가정과 직장 이외의 심리적 도피처가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현대인의 소속감은 가치 공유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현대 생활 문화 조사 자료는 이러한 자발적 연대가 과거의 '두레'나 '계'와 같은 상호 부조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게는 온라인 독서 동아리가 현대판 '씨족'입니다. 이곳 사람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는 깊은 유대감을 느낍니다. 현실의 지인들에게는 오히려 꺼내기 힘든 고민을 취향을 공유하는 이방인들에게는 더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죠. 이는 고립된 자아들이 서로의 '취향'이라는 주파수를 맞추어 형성한 새로운 안식처입니다. 비록 혈연은 아니지만, 지적·정서적 교감을 통해 맺어진 이 관계는 바쁜 일상 속에서 제가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마치며: 진화하는 공동체,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향하여 씨족 공동체의 붕괴는 공동체의 소멸이 아니라 '진화'를 의미합니다. 강제된 혈연의 울타리를 넘어, 이제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된 소속감'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기록들이 증명하는 과거의 결속력은 현대의 유연한 연대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개인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하는 이 '새로운 부족적 연대'야말로 초연결 사회의 고독을 치유할 진정한 사회적 계약이 될 것입니다.

 

전체 출처 및 참고문헌 

Ferdinand Tönnies (1887), 『공동사회와 이익사회 (Gemeinschaft und Gesellschaft)』.

Émile Durkheim (1893), 『사회분업론 (The Division of Labour in Society)』.

Zygmunt Bauman (2000), 『액체 현대 (Liquid Modernity)』.

Mark Granovetter (1973), 「약한 유대의 힘 (The Strength of Weak Ties)」.

Michel Maffesoli (1988), 『부족의 시대 (The Time of the Tribes)』.

Ray Oldenburg (1989), 『제3의 장소 (The Great Good Place)』.

국립문화재연구원, 『무형유산 조사보고서: 사회적 관습 편』.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의 무형유산: 구비전승·전통지식』,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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