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1951년에 만들어진 찰스 크라이튼 감독의 **〈라벤더 힐 몹〉**은 알렉 기네스가 주연을 맡은 영국 코미디 영화다. 처음에는 평범한 은행원처럼 보이던 헨리 홀랜드가 어느 순간 금괴를 훔칠 계획을 세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범죄 자체보다도 헨리가 범죄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습에 있다. 헨리는 무섭거나 거친 범죄자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점잖고 신중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금괴를 훔치는 장면에서도 긴장감보다는 묘한 웃음이 먼저 나온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됐다. 그리고 바로 그 어색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라고 느꼈다.
1. 평범한 은행원이 금괴를 훔치기로 결심하는 순간
헨리 홀랜드는 매일 정해진 일을 반복하는 평범한 은행원이다. 특히 금괴를 운반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가까이에서 접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금괴를 훔칠 계획을 세운다는 점이 재미있다. 헨리는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는 인물이 아니다. 오랫동안 금괴가 움직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자신이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을지 계산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이상하다. 평소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보이는 사람이 범죄를 계획하고 있으니, 그의 진지한 태도 자체가 웃음을 만든다. 특히 계획을 이야기할 때 헨리의 모습은 일반적인 범죄 영화의 악당과는 상당히 다르다. 목소리를 크게 높이거나 상대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세운 계획을 아주 당연한 일처럼 설명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헨리가 자신을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단순히 오랫동안 자신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헨리의 행동을 옳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결국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잘못을 무겁게만 보여주지 않는다. 헨리가 너무 평범하고 어딘가 어설퍼 보이기 때문에 관객은 그를 완전히 미워하기도 어렵다.
2. 금괴를 에펠탑 모형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이렇게 웃길 줄은 몰랐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훔친 금괴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헨리 일행은 금괴를 그대로 가지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금을 녹여서 작은 에펠탑 기념품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상황이 본격적으로 우스워진다. 거대한 금괴와 관광객들이 사 가는 작은 에펠탑 기념품 사이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헨리는 이 황당한 계획을 꽤 진지하게 추진한다. 금괴가 작은 기념품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이 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계획이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꽤 치밀해 보였던 범죄가 점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헨리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은 문제 하나가 생길 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특히 금괴를 둘러싼 상황이 꼬이면서 헨리의 표정과 행동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는 자신 있게 계획을 설명하던 사람이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자 점점 불안해진다. 나는 이 부분이 단순한 추격 장면보다 더 재미있었다. 거창한 악당이 실패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자기 머릿속에서는 완벽했던 계획 때문에 점점 곤란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작은 에펠탑 모형들이 오히려 헨리 일행을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범죄를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계속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하나의 아이디어가 계속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이 영화의 코미디를 살려준다고 생각한다.
3. 알렉 기네스의 표정 때문에 헨리가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됐다
이 영화에서 헨리를 이야기하면서 알렉 기네스를 빼놓기는 어렵다. 알렉 기네스는 헨리를 과장된 코미디 캐릭터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진지하게 연기하기 때문에 더 웃긴다. 헨리가 범죄 계획을 설명할 때도 마치 평소 은행 업무를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차분하다. 그런데 일이 조금씩 틀어지면 얼굴과 행동에서 당황한 기색이 나타난다. 큰 동작을 하지 않아도 관객은 헨리가 속으로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연기가 이 영화의 분위기와 아주 잘 맞는다고 느꼈다. 만약 헨리가 처음부터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게 행동했다면 영화의 재미가 오히려 줄었을 것 같다. 특히 헨리가 자신은 모든 것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상황은 계속 엉켜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기도 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니 동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이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이제 어떻게 하려고 하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게 된다. 이 점에서 헨리는 전형적인 악당과 다르다. 나쁜 일을 계획했지만 카리스마 있는 범죄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능한 사람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욕심을 내면서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큰 일을 벌인 것에 가깝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헨리를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사람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마치며
**〈라벤더 힐 몹〉**은 거대한 범죄를 다루는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헨리의 어색한 표정과 자꾸만 꼬여가는 상황이다. 특히 금괴를 작은 에펠탑 기념품으로 바꾼다는 발상은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엉뚱하다. 그런데 그 엉뚱한 계획을 헨리가 너무 진지하게 실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다. 무엇보다 알렉 기네스가 헨리를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연기한 점이 좋았다. 평범한 사람이 욕심을 내면서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빠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범죄 영화에서 꼭 거대한 악당이나 치밀한 천재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어설프게 큰일을 벌였을 때 생기는 어긋남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벤더 힐 몹〉은 금괴를 훔치는 범죄 이야기라기보다, 자신의 계획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 사람이 얼마나 우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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