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드레스와 긴 진주 목걸이를 한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매장 앞에서 아침을 먹는 장면은 이제 영화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조금 재미있는 점이 있다. 홀리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보다 그녀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훨씬 강하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티파니에서 보석을 사는 부유한 고객이 아니다. 쇼윈도 밖에서 보석을 바라볼 뿐이고,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 행동만 놓고 보면 반드시 호감이 가는 인물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홀리를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가 단순히 캐릭터 설정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드리 헵번이 홀리를 연기하면서 원작 속 인물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는 홀리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영화가 어떻게 홀리를 이렇게 사랑스러운 인물로 만들어 놓았는지를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
1. 티파니 앞의 홀리는 행동보다 이미지가 먼저 기억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홀리는 이른 아침 뉴욕의 거리를 지나 티파니 앞에 도착한다. 검은 드레스와 커다란 선글라스,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 손에 든 간단한 아침 식사. 그녀는 쇼윈도 안을 바라보다가 다시 길을 걸어간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홀리가 티파니에서 무엇을 하는가 보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인지도 모른다. 홀리는 티파니의 물건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영화는 이 장면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뉴욕의 새벽 거리와 헵번의 움직임을 하나의 세련된 이미지처럼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은 ‘보석을 살 수 없는 여자’보다 ‘티파니 앞에서도 우아한 여자’를 먼저 보게 된다. 나는 이것이 영화가 홀리를 만들어내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물의 현실보다 인물의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방식은 영화 전체에서도 계속된다. 홀리는 남자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공간에도 거리낌 없이 들어간다. 하지만 헵번의 표정과 말투, 가벼운 몸짓이 더해지면 그런 행동이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헵번은 홀리를 무겁게 연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거나 말을 바꾸고, 엉뚱한 행동을 할 때도 그 행동에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을 붙이지 않는다. 그 결과 홀리의 불안정한 생활은 하나의 결점으로만 보이지 않고 영화가 만든 독특한 매력으로 바뀐다.
2. 오드리 헵번은 홀리의 까다로운 면까지 사랑스럽게 보이게 만든다
홀리가 매력적인 이유를 단순히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이 영화의 재미를 놓치게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헵번이 홀리의 행동을 어떤 온도로 연기하는가라고 생각한다. 홀리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폴의 아파트에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자기 것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면서 사람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헵번은 이런 행동을 악의적으로 연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홀리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듯 행동하면서도, 동시에 그 행동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말할 때의 가벼운 표정과 빠른 움직임 때문에 관객은 홀리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녀를 따라가게 된다. 이것은 캐릭터를 단순히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인물인데도 관객이 계속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것. 나는 오드리 헵번의 연기가 바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원작과 영화의 차이가 중요해진다. 트루먼 카포티의 원작 속 홀리는 영화에서 만나는 홀리보다 거칠고 복잡한 면이 강하다. 영화는 그 인물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헵번이 가진 우아함과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캐릭터 안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영화 속 홀리는 원작의 홀리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관객에게 전달되는 인상은 상당히 달라졌다.
3. ‘이름 없는 고양이’는 헵번이 만든 홀리에게 작은 균열을 낸다
그렇다고 영화가 홀리를 끝까지 매력적인 이미지로만 남겨두는 것은 아니다.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고양이라고 생각한다. 홀리는 자신의 고양이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고양이에게도 누군가에게 속한다는 표현을 거부한다. 이 설정은 영화 속 홀리를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에 홀리가 고양이를 찾아 나서는 순간, 그 태도가 흔들린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양이를 찾아 헤매는 홀리의 모습에는 처음 티파니 앞에서 보였던 완벽하게 정돈된 이미지가 없다. 옷은 젖고, 표정도 흐트러지고, 더 이상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습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홀리가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영화가 처음부터 만들어온 홀리의 이미지에 현실적인 틈이 생긴다. 티파니 앞에서는 홀리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홀리를 단순히 ‘자유로운 여성’이나 ‘사랑을 두려워하는 여성’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그 두 모습이 한 인물 안에서 동시에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헵번의 존재감이 다시 작용한다. 그녀가 비에 젖은 채 고양이를 찾는 모습은 거창한 감정의 연설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홀리의 변화를 보여준다.
4. 우리가 기억하는 홀리는 카포티의 홀리와 헵번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이렇게 생각하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홀리의 성격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홀리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더 흥미롭다. 원작에는 거칠고 복잡한 홀리가 있었다. 영화에는 그 인물을 연기하는 오드리 헵번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헵번의 외모와 몸짓, 말투와 화면 속 존재감을 이용해 원작의 인물을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홀리는 카포티가 만든 인물이면서 동시에 헵번이 다시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티파니 앞의 검은 드레스와 선글라스가 홀리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면, 마지막의 젖은 모습과 고양이는 그 아이콘을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는다. 나는 이 두 장면을 함께 놓고 볼 때 이 영화가 가장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한다. 처음의 홀리는 보여지는 인물이다. 마지막의 홀리는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드리 헵번은 홀리의 까다롭고 불안정한 면까지 관객이 계속 바라볼 수 있는 매력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단순히 ‘오드리 헵번이 아름다운 영화’라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조금 아쉽다. 이 영화에서 정말 흥미로운 것은 한 배우가 원작의 복잡한 인물을 자신의 이미지와 연기로 다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티파니 앞에서 아침을 먹던 홀리와 마지막에 비를 맞으며 고양이를 찾던 홀리는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두 장면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이유는 영화가 그 사이에서 홀리를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홀리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는가가 아니었다. 우리가 사랑스럽다고 기억하는 홀리 고라이틀리라는 인물 자체가 오드리 헵번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적 창조물이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티파니 앞에 서 있는 홀리의 모습도 조금 달라 보인다. 그 장면은 단순히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배우의 이미지가 한 캐릭터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의 출발점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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