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로코와 그 형제들>(1960)의 파론디 가족이 밀라노에 도착하는 기차역 장면
로코가 복싱 경기에서 이기는 장면만 놓고 보면 아주 전형적인 승리의 순간처럼 보인다. 경기장에서는 관중의 환호가 터지고, 가족은 로코의 승리를 기다린다. 그런데 비슷한 시간에 전혀 다른 곳에서는 나디아가 시모네에게 쫓기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두 장면이 번갈아 나오는 방식이었다. 비스콘티는 로코의 경기와 나디아에게 벌어지는 비극을 따로 보여주지 않는다. 한쪽에서 로코가 싸우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시모네가 나디아를 찾아간다. 그리고 편집이 두 사건을 계속 오가면서 관객은 두 장면을 하나의 사건처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보고 나면 이 장면은 단순히 ‘로코는 이겼고 나디아는 죽었다’는 비극적인 대비보다 훨씬 이상하게 느껴진다. 로코의 승리가 기쁜 일이기만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경기장에서 들리는 환호가 다른 장소의 비극과 겹친다
로코의 경기는 가족을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시모네가 무너진 뒤 로코는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복싱에 뛰어든다. 그래서 경기에서 이기는 순간은 겉으로는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로코가 승리한 뒤 가족은 그의 성공을 축하한다. 그런데 비스콘티는 그 승리를 온전히 즐길 시간을 주지 않는다. 로코가 링에서 상대와 싸우는 장면 사이로 시모네와 나디아의 장면이 끼어든다. 로코가 상대에게 주먹을 맞는 순간과 나디아가 시모네에게 위협받는 순간이 이어지고, 로코가 상대를 쓰러뜨리는 순간에는 나디아에게 벌어지는 폭력이 더욱 심각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건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다. **편집 때문에 관객의 감정이 한쪽에 머물 수 없다는 점**이다. 로코의 승리를 보고 환호하려는 순간 나디아의 장면이 끼어든다. 다시 나디아의 위험을 보고 긴장하면 곧 경기장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이 장면에서는 링의 주먹 소리와 군중의 함성, 나디아가 있는 장소의 비명과 소리가 교차하면서 두 사건의 감정이 서로 침투하도록 만들어진다. 그래서 관객은 로코의 승리를 보면서도 마음껏 기뻐하기 어렵다.
### 로코가 이기는 순간에도 가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사건의 결과가 정반대라는 점이다. 로코는 이긴다. 하지만 나디아는 죽는다. 한쪽에서는 가족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승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가족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보통 영화라면 이 두 사건을 각각 보여주고 나중에 연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스콘티는 굳이 두 사건을 같은 시간 안에서 겹쳐 놓는다. 그래서 로코의 승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로코가 승리하는 바로 그 순간, 가족이 해결하려 했던 문제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음을 관객은 알고 있다.** 나는 이 때문에 로코의 승리가 오히려 씁쓸하게 느껴졌다. 로코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가 링에서 아무리 잘 싸워도 시모네의 행동까지 막을 수는 없다. 로코가 얻은 승리와 시모네가 만든 비극은 같은 시간에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로코가 가족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설명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영화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가족 안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편집 자체로 보여준다.** 그래서 경기의 승리가 클수록 그 뒤의 비극도 더 크게 느껴진다.
### 축하하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영화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다
경기가 끝난 뒤 가족은 로코의 승리를 축하한다. 로코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어머니 역시 가족이 모두 함께 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분위기는 시모네가 피 묻은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완전히 뒤집힌다. 그는 나디아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여기에서도 앞의 교차 편집이 중요한 의미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디아의 죽음이 경기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면, 이후의 가족 축하 장면은 단순한 반전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로코가 승리하고 가족이 기뻐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는 나디아가 죽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웃고 있는 장면도 관객에게는 처음부터 불안하게 보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비극이 갑자기 가족의 평화를 깨뜨린다는 사실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모른 채 기뻐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서늘하다. 마지막에 어린 루카가 시로와 이야기를 나눈 뒤 혼자 도시를 걸어가는 장면도 그래서 의미가 남는다. 가족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도시의 시간은 계속된다. 루카는 신문 가판대에서 로코의 사진을 보게 되고 다시 길을 걸어간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서야 앞의 복싱 장면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로코의 승리는 가족에게 좋은 소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 가족의 비극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비스콘티는 그 두 사실을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한쪽의 승리와 다른 쪽의 죽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편집으로 관객에게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로코와 그 형제들〉의 복싱 경기는 단순히 로코가 성공하는 장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승리와 비극이 서로 완전히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같은 시간 안에서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로코가 이겼기 때문에 가족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로코가 이기는 순간에도 가족의 비극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 두 장면을 함께 보여준 선택 때문에 로코의 승리는 처음보다 훨씬 복잡한 장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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