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를 훔친 미셸은 경찰에게 쫓기다가 총을 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장면에는 우리가 범죄영화에서 기대하는 무거움이 별로 없다. 미셸은 담배를 피우고, 거울을 바라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흉내 내듯 행동한다. 방금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데도 화면 속 미셸은 지나치게 태연하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가 지금까지도 독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장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셸은 위험한 행동을 하지만 영화는 그를 전형적인 악당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와 자동차, 담배와 선글라스 같은 이미지가 그의 행동에 묘한 멋을 더한다. 그래서 관객은 미셸에게 끌리면서도 그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는 이 영화에서 미셸이라는 인물 자체보다 **고다르가 관객에게 미셸을 바라보게 만드는 방법**이 더 흥미로웠다. 미셸은 멋있는 사람이라서 멋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그를 바라보는 방식 때문에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 1.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에도 미셸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행동한다
자동차를 훔친 뒤 경찰관을 쏘는 장면에서 미셸은 전형적인 범죄영화의 주인공과 다르게 움직인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보다, 지금 자신의 모습과 행동에 신경 쓰는 듯한 태도가 먼저 보인다. 특히 담배를 피우고 거울을 바라보는 행동은 미셸을 현실의 범죄자라기보다 영화 속 인물처럼 보이게 한다. 그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보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고다르가 이 모습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셸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해설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몸짓과 표정을 화면에 놓아둔다. 관객은 그 모습을 보고 미셸을 멋있다고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바로 이 거리감이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미셸을 좋아하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를 쉽게 미워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관객이 미셸의 매력과 위험성을 동시에 바라보도록 만든다.** 그래서 미셸의 ‘멋’은 단순히 그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고다르는 그의 행동, 표정, 거리에서의 움직임을 하나의 스타일처럼 보여준다.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그대로인데 화면 속 인물의 모습은 가볍고 자유롭다. 두 가지가 한 장면 안에서 겹쳐지는 것이다.
### 2. 파트리샤와 마주 앉으면 미셸의 자유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파트리샤의 방에 들어가면 영화의 속도와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미셸은 파트리샤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하고, 두 사람은 방 안에서 사랑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 미셸을 보고 있으면 거리에서 보았던 자유로운 모습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거리에서는 미셸이 혼자 움직이기 때문에 그의 태도가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파트리샤와 함께 있을 때는 그 자유가 상대방의 선택과 부딪힌다. 미셸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계속 이야기한다. 반면 파트리샤는 자신의 생활과 앞으로의 선택을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미래를 보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고다르가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고 정리하지도 않는다. 대화와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관객이 두 사람의 차이를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파트리샤를 통해 미셸을 새롭게 보게 됐다. 거리에서 혼자 움직일 때는 그의 자유가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다른 사람의 삶이 함께 놓이는 순간 그 자유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셸의 행동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조건이 달라진 것이다.** 고다르는 이 차이를 설명하기보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만든다.
### 3. 마지막 순간에도 미셸은 처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미셸은 결국 경찰에게 쫓기다가 총에 맞는다. 그는 길 위에서 힘겹게 달리고 쓰러진다. 일반적인 범죄영화라면 이 순간을 주인공의 비극적인 마지막으로 크게 강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의 미셸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보여주었던 특유의 표정과 몸짓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 인간이 극적인 변화를 맞는 순간이라기보다, **영화가 처음부터 만들어온 미셸이라는 이미지가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파트리샤가 미셸의 위치를 경찰에게 알려준 뒤 그의 몸짓을 따라 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욱 묘하다. 그녀가 미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인지,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자신의 행동에 흔적을 남겼다는 뜻인지는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장면 때문에 미셸의 존재는 죽음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몸짓 하나가 파트리샤에게 남아 있다. 관객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미셸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 나는 이 결말이 미셸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서가 아니라, **관객이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고 느꼈다.**
### 이 영화에서 가장 낯선 것은 미셸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이다
〈네 멋대로 해라〉에는 멋있어 보이는 장면이 많다. 파리의 거리에서 미셸과 파트리샤가 움직이는 모습, 미셸의 담배와 선글라스,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 몸짓은 지금 보아도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그 이미지 뒤에는 경찰을 쏜 남자가 있다. 파트리샤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고다르는 이 두 모습을 하나로 정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미셸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계속 조절하게 된다. 멋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행동을 생각하게 되고, 불편하다고 느끼면서도 다시 그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나는 그래서 〈네 멋대로 해라〉를 단순히 자유로운 청춘의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쉽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더 흥미로운 이유는 **한 인물을 멋있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판단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셸이 옳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영화가 대신 판단해주지 않는다. 관객은 그를 멋있다고 느낀 자신의 시선과, 그의 행동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자신의 판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현대적인 부분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미셸의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관객의 판단은 끝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준 것은 한 남자의 자유로운 모습이지만, 영화가 남긴 것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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