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것이 좋아〉를 다시 보면 처음 봤을 때와 조금 다르게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조와 제리가 여성으로 변장했다는 사실은 관객에게 처음부터 숨겨져 있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두 사람이 남자라는 것을 관객에게 먼저 알려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것을 알고 나면 여장을 한 장면이 단순히 ‘남자가 여자로 변장했다’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에게는 대프니와 조세핀이 실제 여성처럼 보이지만, 관객에게는 그 모습 뒤에 있는 제리와 조까지 동시에 보인다. 나는 이 차이가 이 영화의 코미디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관객에게는 한 사람의 모습이 두 겹으로 보인다
제리가 대프니로 행동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프니라는 여성을 보고 반응한다. 하지만 관객은 그 사람이 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제리가 여성다운 행동을 할수록 오히려 그 행동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관객에게는 ‘대프니가 이렇게 행동한다’는 모습과 동시에 ‘제리가 대프니로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모습이 겹쳐서 보이기 때문이다. 조의 경우에는 이 효과가 더욱 복잡해진다. 조는 조세핀으로 변장한 뒤 슈거에게 접근하기 위해 다시 주니어라는 남성 인물을 만들어 낸다. 슈거에게는 조세핀과 주니어가 서로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관객은 두 사람이 모두 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조가 조세핀에서 주니어로 바뀌는 장면은 단순한 변장이 아니다. 관객은 한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동시에, 그 사람이 영화 안에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보고 있다. 여기서 웃음이 생긴다. 영화 속 인물에게는 하나의 상황이지만 관객에게는 그 상황과 그 뒤에 감춰진 또 하나의 상황이 함께 보이는 것이다.
### 그래서 배우의 연기가 단순한 ‘여장 연기’가 아니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 잭 레먼의 연기가 재미있는 이유도 조금 달라진다. 제리가 대프니가 된 뒤에는 옷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대프니라는 인물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행동해야 한다. 관객은 그 모습을 보면서 대프니라는 가상의 인물을 보는 동시에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제리도 보고 있다. 토니 커티스 역시 조세핀과 주니어를 오가면서 같은 사람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낸다. 특히 관객은 두 역할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이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배우가 관객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객에게 사실을 먼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의 오해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서 관객은 등장인물보다 한발 앞서 영화를 보게 된다. 어떤 인물이 대프니에게 말을 걸 때 관객은 ‘저 사람은 지금 제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슈거가 주니어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관객은 그 남자가 조세핀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하나의 장면 안에 두 개의 시선이 생긴다. 영화 속 인물이 보는 장면과 관객이 알고 보는 장면이 서로 다르다.
### 마지막에 웃음이 끝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이 먼저 알고 있던 사실이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유지되던 두 개의 시선이 하나로 합쳐진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영화의 마지막을 이해하는 데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의 웃음은 단순히 숨겨졌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관객과 등장인물 사이에 존재했던 정보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영화가 유지해 온 코미디의 구조도 함께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뜨거운 것이 좋아〉를 단순히 ‘남자들이 여장을 해서 웃긴 영화’라고만 보면 이 영화가 만들어 내는 재미의 일부를 놓치게 된다. 빌리 와일더는 관객에게 조와 제리의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 상태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계속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 결과 관객은 같은 장면을 두 겹으로 보게 된다. 화면에는 대프니가 있지만 그 안에는 제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화면에는 주니어가 있지만 그 사람이 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한 변장 코미디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시 보면 영화가 웃음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변장 그 자체보다 **한 장면을 등장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저 사람이 여자처럼 보이는가?’보다 ‘나는 지금 저 장면을 등장인물과 다르게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바로 그 차이가 〈뜨거운 것이 좋아〉의 오래된 장면들을 지금 다시 봐도 웃기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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