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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1959), 복수에 성공한 뒤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이유

infodon44 2026. 4. 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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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벤허 원형 경기장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고대 투기장 의 잔해 속에 벤허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1959년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를 다시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전차 경주가 아니었다. 물론 경기 장면은 여전히 엄청나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다 벤허가 오랫동안 품었던 복수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더 궁금했다. 처음에는 나도 유다가 메살라에게 복수하기를 바랐다. 가족을 잃고 노예가 된 사람이니 그 정도의 분노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유다가 메살라를 쓰러뜨리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 이 영화가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1. 노예선에서 버틴 벤허를 보며 나는 메살라보다 유다가 더 걱정됐다

**벤허**가 노예선의 노잡이로 끌려가는 장면은 전차 경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렬하다. 유다는 쇠사슬에 묶인 채 다른 노예들과 함께 계속 노를 저어야 한다. 햇빛은 뜨겁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 한때 자신의 집에서 가족과 살던 사람이 순식간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유다가 왜 메살라를 증오하게 되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내가 의외라고 느낀 것은 유다가 그렇게 처참한 상황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로마 함대가 전투에 휘말리고 배가 침몰했을 때 유다는 자신을 묶어 놓았던 쇠사슬에서 풀려난다. 그리고 로마의 사령관 아리우스가 바다에 빠지자 그를 구한다. 나는 이 장면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다는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과 다른 사람을 구분할 줄도 안다. 그래서 오히려 메살라에 대한 분노가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친구였던 메살라는 유다에게 로마의 질서에 따르라고 요구하고, 유다가 거절하자 둘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다. 이후 유다의 집에서 기와가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메살라는 유다의 가족까지 처벌받게 만든다. 나는 이 부분에서 유다가 자신의 인생을 메살라에게 너무 많이 빼앗겼다고 느꼈다. 집도 빼앗겼고 가족도 빼앗겼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생각과 시간까지 메살라에게 빼앗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2. 전차 경주에서 이긴 순간, 정말 복수가 끝난 것일까

**전차 경주**는 〈벤허〉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유다와 메살라가 경기장에 들어서고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경기는 다른 참가자들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메살라는 유다를 이기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를 쓰러뜨리려고 한다. 전차가 서로 가까워질 때마다 바퀴가 부딪히고 말들이 흔들린다. 메살라가 유다의 전차를 공격하면서 두 전차가 거의 엉켜버리는 순간에는 경주라기보다 오래된 원한을 직접 부딪치는 싸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메살라의 전차가 망가지고 그는 말에 끌려가며 크게 다친다. 유다는 이긴다. 이 장면은 흔히 영화사의 위대한 액션 장면으로 평가되지만, 나는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기술적으로 대단한 장면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유다가 이겼는데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사실 유다가 이길 때 통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메살라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생각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메살라가 사라졌다고 해서 유다의 가족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노예선에서 보낸 시간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벤허〉의 복수가 조금 허무하다고 느꼈다. 비슷하게 복수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원수를 쓰러뜨리는 순간 관객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벤허〉는 그 순간에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그 사람을 쓰러뜨리면 정말 내가 잃어버린 것까지 되찾을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 때문에 전차 경주가 단순한 승리의 장면으로 보이지 않았다.

 

## 3.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유다가 메살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벤허의 마지막 장면**은 앞의 전차 경주와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간다. 유다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하게 되고, 자신이 과거에 물을 건네받았던 그 사람이 다시 등장한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 유다는 그를 알아본다. 영화 초반, 노예가 되어 목이 말라 쓰러져가던 자신에게 물을 건네주었던 사람이 바로 그 예수였다는 것이 다시 연결된다. 나는 이 장면이 꽤 오래 남았다. 유다는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대부분 힘과 복수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메살라에게 당한 일을 갚아야 했고, 가족을 되찾아야 했고, 자신이 빼앗긴 것을 되찾아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면 전혀 다른 방식의 힘을 마주하게 된다. 메살라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다 자신이 품고 있던 증오가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십자가 사건 이후 그의 어머니 미리암과 여동생 티르자가 나병에서 회복되고, 유다 역시 변화된 사람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 결말을 단순히 “기독교적 기적을 보여주는 장면”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다가 마지막에 얻은 것은 메살라를 이긴 승리가 아니라 **메살라에게 붙잡혀 있던 자신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차 경주보다 마지막 장면이 오히려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전차 경주에서는 유다가 메살라를 이겼다. 하지만 마지막에서는 유다가 자기 안에 남아 있던 증오와 복수심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두 승리는 전혀 다르다. 나는 그래서 〈벤허〉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쓸쓸한 영화라고 느꼈다. 복수에 성공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죽은 사람도 살아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유다에게 필요한 것은 메살라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의 남은 삶까지 망가뜨리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 마치며

〈벤허〉를 처음 생각했을 때 나는 전차 경주와 거대한 규모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다시 보고 나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히려 마지막의 조용한 변화였다. 유다는 오랫동안 복수를 위해 살아왔지만, 결국 그 복수가 자신의 삶을 완성해 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메살라에게 복수한 유다보다, 마지막에 증오를 내려놓기 시작한 유다가 더 강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진짜 승리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빼앗겼던 내 삶을 다시 가져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벤허〉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전차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오랫동안 품었던 분노를 조금씩 놓아버리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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