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쉽게 따라가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히로시마에서 만난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현재의 장면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프랑스 네베르에서 있었던 여자의 과거가 끼어든다. 그런데 그 과거가 단순한 회상 장면처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히로시마의 현재를 보고 있던 관객이 갑자기 네베르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히로시마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나도 이 방식이 조금 답답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영화는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회상 장면을 넣은 것이 아니라, **기억이 현재 속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모습을 영화의 편집 자체로 만들어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사람의 사랑보다 현재와 과거가 화면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더 유심히 보게 됐다.
### 1. 히로시마를 ‘보는 장면’부터 이미 영화의 질문이 시작된다
영화 초반에는 히로시마의 모습이 이어진다. 여자는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히로시마에 와 있고 병원과 박물관을 찾아간다. 원폭의 흔적과 사진, 자료들을 바라본다. 관객인 나도 그녀가 히로시마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일본인 남자는 그녀에게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냉정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여자는 박물관도 보고 병원도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장면을 영화 전체의 편집 방식과 함께 생각해 보니 다른 의미가 보였다. 여자가 보고 있는 것은 **현재의 히로시마에 남아 있는 흔적**이다. 사진과 건물, 병원과 박물관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남자에게 히로시마는 자료를 통해 바라보는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연결된 장소다. 그래서 영화는 처음부터 **‘보는 것’과 ‘기억하는 것’이 같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이 질문을 대사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히로시마의 거리와 원폭의 흔적을 보여주던 영화가 이후 여자의 네베르 기억으로 들어가면서, 관객 역시 다른 종류의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초반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말을 단순히 여자가 히로시마의 비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으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관객에게도 ‘네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그 사람의 기억과 같은 것인가?’라고 묻고 있었던 것이다.**
### 2. 네베르의 기억은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히로시마의 현재에 끼어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현재와 과거를 나누는 방식이다. 보통 영화에서 주인공이 과거를 떠올리면 관객에게 회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현재의 이야기가 끝나고 과거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식이다. 그래서 관객은 지금 어느 시간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히로시마 내 사랑〉은 그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다. 히로시마에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의 현재 사이로 네베르의 기억이 들어온다. 독일군 병사와 사랑했던 시간, 그의 죽음,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에게 머리를 깎인 일, 지하실에 갇혀 있던 기억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히로시마의 현재로 돌아온다. 나는 이 부분을 처음에는 영화의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의 이미지와 과거의 이미지가 서로를 불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특히 히로시마의 현재를 보고 난 뒤 네베르의 기억이 이어지는 구조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히로시마와 네베르는 전혀 다른 장소지만 둘 다 전쟁의 기억을 품고 있다. 한쪽은 원폭 이후의 도시이고, 다른 한쪽은 여자가 전쟁의 끝에서 사랑했던 독일군 병사에 대한 기억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두 장소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장소의 이미지가 다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도록 만든다.** 이렇게 보니 영화가 왜 현재와 과거를 깔끔하게 분리하지 않았는지도 조금 이해됐다. 기억 속에서는 장소와 시간이 그렇게 정확하게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에서 만난 사람이 네베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현재의 대화가 과거의 장면을 불러낸다. 영화는 이것을 설명하는 대신 **편집으로 관객에게 직접 경험시키고 있었다.**
### 3. 마지막에 두 사람이 서로의 도시가 되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지막 장면도 처음과 다르게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름 대신 ‘히로시마’와 ‘네베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시 이름을 붙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두 도시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이 장면이 조금 달라진다. 히로시마는 남자에게 전쟁과 자신의 기억이 쌓여 있는 장소다. 네베르는 여자에게 독일군 병사와 사랑했던 과거가 남아 있는 장소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과거를 완전히 가질 수는 없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대방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마지막의 호칭은 단순히 “당신은 히로시마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장소가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의 제목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히로시마는 단순히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눈 장소가 아니다. 원폭의 기억과 남자의 개인적인 기억, 여자의 네베르에 대한 기억,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한 현재가 모두 겹쳐지는 장소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두 사람의 사랑 자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랑과 기억과 장소가 편집을 통해 서로 겹쳐지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는 것이 영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바로 그 혼란이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연결하고 있었다. 기억을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기억하는 방식을 영화로 만들어낸 작품**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나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정리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갈 때 어떤 이미지가 이어지고, 현재의 어떤 순간이 과거의 어떤 기억을 불러내는지를 살펴볼 것 같다. 내게 〈히로시마 내 사랑〉의 가장 인상적인 발견은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는 기억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이 기억하는 것처럼 영화를 경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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