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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1958), 스코티가 사랑한 것은 사람이었을까, 기억이었을까

infodon44 2026. 4. 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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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기증(Vertigo) 속 고소공포증을 시각화한 나선형 계단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앵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현기증(Vertigo)에서 사용한 트랙 아웃 줌 인 기법을 연상시키는 비정상적인 원근감의 나선형 구조물

 

 

영화 《현기증》(1958)을 다시 생각하면서 가장 불편하게 남은 장면은 의외로 주디가 메들린의 모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회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다시 올린 주디가 초록빛을 등지고 나타나자 스코티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메들린을 되찾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이 아름다운 재회의 장면이라기보다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주디는 눈앞에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인데, 스코티가 바라보는 것은 주디가 아니다. 그가 보고 싶었던 모습에 가까워진 주디다. 이 장면을 중심에 놓고 다시 영화를 보니, 스코티의 집착은 마지막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영화 초반부터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 주디가 메들린이 되는 순간, 사람 하나가 사라진다

주디는 처음부터 메들린이 아니었다. 그녀는 개빈 엘스터의 계획에 따라 메들린을 연기했던 사람이다. 스코티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메들린을 사랑하게 된다. 문제는 진실을 알게 된 뒤에도 스코티가 주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디는 자신의 모습으로 스코티 앞에 나타났지만, 스코티는 그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머리 모양을 바꾸고 옷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결국 주디가 다시 메들린의 모습에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스코티는 만족한다. 여기서 나는 스코티의 행동이 단순한 그리움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니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스코티는 기억 속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을 기억 속의 모습으로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초록빛 속에서 메들린의 모습으로 나타난 주디가 오히려 유령처럼 보인다. 스코티에게는 되살아난 사랑처럼 보이지만, 주디에게는 자신의 원래 모습이 지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 스코티는 처음부터 메들린보다 ‘이미지’를 보고 있었다

이 장면을 알고 나서 영화 앞부분을 다시 떠올리면 스코티가 메들린에게 끌리는 방식도 다르게 보인다. 그는 꽃가게에서 메들린을 바라보고, 그녀가 박물관에서 카를로타 발데스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본다. 묘한 것은 스코티가 메들린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오래 바라보는 것은 메들린의 행동과 그 뒤에 있는 이미지다. 특히 초상화 속 카를로타와 메들린의 모습이 겹쳐지는 장면에서는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스코티는 메들린을 한 사람으로 알아가기보다 자신 앞에 나타난 신비로운 모습 자체에 매혹된다. 그렇다고 스코티의 감정이 가짜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실제로 메들린을 사랑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사랑 안에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격으로 바라보는 시선보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대한 집착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반부의 주디는 단순히 스코티를 속였던 여자로만 보이지 않는다. 관객은 주디가 메들린을 연기했다는 사실을 스코티보다 먼저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주디가 스코티의 요구에 따라 다시 메들린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볼 때, 그녀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만큼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보인다.

 

### 마지막 종탑에서는 스코티의 ‘사랑’이 완성되는 동시에 무너진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다시 종탑으로 향하면서 스코티는 마침내 과거의 사건과 주디의 정체를 연결한다. 이때 스코티가 원하는 것은 더 이상 단순히 진실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메들린을 다시 눈앞에서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메들린은 처음부터 스코티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가 사랑했던 모습에는 엘스터의 계획과 주디의 연기가 섞여 있었다. 스코티가 되살리려고 했던 메들린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 자신이 기억하고 붙잡은 이미지에 가까웠던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비극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또 한 번 잃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코티는 메들린을 잃은 뒤 주디를 만났지만, 주디를 만난 것이 아니라 다시 메들린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디라는 사람도 잃어버린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스코티가 참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높은 곳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통받고,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그 여자를 닮은 사람을 다시 만났지만 또다시 잃는다. 그러나 주디의 입장에서 장면들을 다시 연결해 보니 영화의 비극이 조금 달라 보였다. 스코티에게 메들린은 잃어버린 사람이었지만, 주디에게 메들린은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연기해야 했던 모습이었다. 결국 스코티가 마지막까지 붙잡으려 했던 것은 한 사람이라기보다 자신이 잃고 싶지 않았던 이미지였던 것 같다. 《현기증》을 보고 난 뒤 내게 남은 질문도 그래서 처음과 달라졌다. 스코티가 왜 사랑을 잃었는지가 아니라,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에게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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