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1957)에서 이상했던 것은 이삭 보리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방식이었다. 보통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 이삭의 과거는 그렇게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아름다운 순간이 나타났다가도 곧 불편한 장면으로 바뀌고, 꿈인지 기억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면이 현재의 여행 사이로 끼어든다. 처음에는 나도 이삭을 외로운 노인으로 보았다. 명예학위를 받으러 가는 유명한 교수지만 가족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고 혼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이삭은 외로운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번에는 **“이삭이 무엇을 깨닫는가”보다 “여행하는 동안 이삭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따라가며 보게 됐다.
### 첫 번째로 이상했던 것은 이삭의 여행에 과거의 사람들이 계속 끼어든다는 것이었다
이삭은 명예학위를 받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이 여행은 단순히 현재의 장소를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옛 여름 별장에 들르고, 젊은 시절의 사라를 떠올리고, 꿈속에서 과거의 장면들을 다시 만난다. 특히 산딸기밭에서 젊은 사라를 보는 장면은 처음에는 아름다운 추억처럼 보인다. 햇빛이 비치는 여름날, 젊은 사라가 있고 이삭의 어린 시절이 함께 떠오른다. 제목인 ‘산딸기’도 그래서 처음에는 지나간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베리만은 그 기억을 오래 아름답게 놔두지 않는다. 젊은 사라는 이삭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기울고, 이삭은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과거의 기억 속에 들어간 것 같았던 이삭이 어느 순간 다시 그 기억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밀려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삭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거를 다시 보고 있지만, **그때 자신이 가졌던 감정까지 그대로 되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산딸기밭은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소처럼 보였다.
### 그런데 이삭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 것은 오히려 낯선 사람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삭이 과거의 사람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동차 여행 중 이삭 일행은 젊은 히치하이커들을 태운다. 그들 사이에는 사라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있고, 그녀는 이삭이 젊은 시절 사랑했던 사라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두 사라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사랑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삭이 지나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 과거의 이삭에게도 지금 저 젊은이들과 비슷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이삭은 그들의 바깥에 있다. 여기에 부부 알만과 베라의 싸움이 끼어든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 공격하는 두 사람을 이삭은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나는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이삭은 자신의 과거를 꿈속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삶을 간접적으로 다시 보고 있다.** 젊은 연인들을 보면 자신이 잃어버린 젊음이 떠오르고, 서로 상처를 주는 부부를 보면 자신의 가족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여행은 이삭 혼자 과거를 회상하는 여행이라기보다,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기 삶을 비교하게 되는 여행**처럼 보였다.
### 첫 악몽은 죽음보다 이상한 것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 이삭이 꾸는 악몽은 〈산딸기〉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텅 빈 거리, 숫자가 표시되지 않은 시계, 움직이지 않는 마차, 그리고 관 속에 누워 있는 자기 자신. 처음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 악몽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다시 생각하면 조금 달라진다. 이삭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죽음 자체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이루었다. 학문적인 명예도 얻었고 사회적인 위치도 갖고 있다. 그런데 정작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관 속의 자기 모습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특히 영화가 진행될수록 처음의 악몽과 현실의 여행이 서로 겹쳐 보인다. 이삭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삭에게 간단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젊은 시절의 사라를 다시 만났다고 해서 과거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의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 그래서 마지막에 부모를 바라보는 장면이 처음과 다르게 보였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이삭은 어린 시절의 부모를 바라보는 꿈을 꾼다. 부모는 호숫가에 있고, 이삭은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처음 이 장면을 보면 마치 따뜻한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는 이삭이 그곳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에 더 눈이 갔다. 이 차이가 묘하게 중요해 보였다. 산딸기밭에서 이삭은 과거의 자신이 가질 수 있었던 것을 바라본다. 젊은 사라와의 관계, 선택하지 못했던 삶이 그 앞에 다시 나타난다. 반면 마지막에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다고 과거가 아름답게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이삭은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다만 처음의 이삭과 비교하면 한 가지가 달라져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외로움을 단순히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삭이 마지막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과의 문제도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잘못도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마음에 남는다. 이삭이 얻은 것은 행복한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한쪽 면만 골라서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산딸기〉에서 내가 처음 보았던 것은 외로운 노인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따라가며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삭은 외로운 사람이었지만, 그 외로움을 만든 과정에서도 완전히 무관한 사람은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죽음을 앞두고 갑자기 모든 잘못을 깨닫는 인물도 아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 반복해서 나타나는 기억과 꿈, 젊은 시절의 사라와 부모의 모습이 차례로 겹치면서 이삭이 자기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산딸기〉를 단순히 **늙어가는 사람이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과거를 다시 보는 순간, 과거의 모습뿐 아니라 그때의 나 자신까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딸기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젊은 사라를 다시 만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때의 자신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은 달라질 수 있다. 아마 이삭의 여행에서 정말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자동차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과거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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