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컬럼

[인류학적 고찰] 망자에게 바치는 생명의 양식, '메':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심리적 의례

infodon44 2026. 1. 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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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의례를 '지각된 세계'와 '실제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 체계라고 정의했습니다. 한국 민속에서 죽은 자에게 올리는 밥인 '메'는 단순히 사후 세계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을 넘어, 죽음으로 인한 물리적 단절을 심리적 연속성으로 전환하려는 고도의 정신적 기제입니다. 본고에서는 이 단순한 밥 한 그릇이 살아있는 이들의 상실감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학술적으로 분석합니다.

 

1. '메'와 계속되는 유대: 사회적 생명의 연장

민속학적 관점에서 '식사'는 생명력의 공유를 의미합니다.  "한국의 ‘메’ 문화는 망자를 사회적 관계망 안에 여전히 머물게 하려는 **'사회적 생명 연장'**의 의례"라고 분석합니다.  특히 계속되는 유대(Continuing Bonds, 고인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재정립하여 상실의 충격을 완화하는 과정) 이론을 강조합니다. 그는 유족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신체적 노동'을 통해 상실로 인한 무기력증을 효과적으로 제어한다는 임상적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즉, '메'를 차리는 행위는 망자를 위한 대접인 동시에, 남겨진 이들이 슬픔에 잠식되지 않도록 돕는 능동적인 애도 활동인 셈입니다.  가장 친하던 베스트 프렌드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매주 친구의 납골당을 찾아가 친구가 좋아했던 다크 초콜릿을 친구의 사진 앞에 놓아놓곤 했습니다. 물론 친구가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초콜릿을 사러 다니는 동안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친구가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깊은 상실감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초콜릿을 사러 다니는 행위 자체가 친구와 다시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제가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입니다.

 

2. 애도의 질서화: 리미널리티(Liminality)의 단계별 극복

인류학자 아르놀트 반 헤네프는 죽음을 망자와 생존자 모두가 겪는 '전이'의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유족들이 겪는 리미널리티(Liminality, 일상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 서서 정체성이 모호해진 불안정한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메'라는 정형화된 형식이 단계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우선 분리 단계에서 '메'는 현실을 부정하며 방황하는 유족들에게 제사라는 고정된 시간과 장소를 설정해 줌으로써 슬픔의 경계를 만들어줍니다. 이어지는 전이 단계에서는 극심한 상실감과 무기력에 빠진 유족들이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마지막 통합 단계에서는 함께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 제사 음식을 나누며 복을 빌고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하는 행위)을 통해 죽음을 수용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게 됩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정형화된 의례가 무질서한 슬픔에 '질서'라는 방어막을 쳐주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릴 때 저를 무척 예뻐해 주시고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족들이 모여서 매년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돌아가신 분에게 밥을 올리고 절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제사가 온 가족이 모여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슬픔을 나누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나누는 행위 자체가 가족들에게는 할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우리 가족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3. 현대적 변용: '디지털 메'와 공동체의 회복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장례 문화가 간소화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온라인 추모관이나 SNS를 통한 추모 활동 등 '디지털 메'의 형식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매체는 변해도 망자를 기억하고 먹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는 변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집단적 추모가 개인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근력)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분석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슬픔을 나누는 행위는 유족이 겪는 고립된 고통을 '공유된 서사'로 전환하며, 이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상실감을 사회적으로 분산시켜 치유하는 효과를 냅니다. 저는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었을 때, 처음에는 도저히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가족과 교회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고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매일 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밥은 먹었는지 기분은 어떤지 확인을 하며 적극적으로 저를 케어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옆에 없었다면 저는 아마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던 아픔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것이 저만의 고통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그 압도적인 상실감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며

'메' 한 그릇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따뜻한 철학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가 여전히 밥을 지어 올리는 이유는, 그것이 망자를 향한 '기억의 의무'인 동시에 우리 내면의 상처를 봉합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래된 지혜는 현대인들에게도 상실의 강을 건너 일상으로 돌아오는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전체 출처 및 참고문헌

 

클리퍼드 기어츠 (Clifford Geertz), 『문화의 해석』 (상징 인류학의 기초).

아르놀트 반 헤네프 (Arnold van Gennep), 『통과의례』 (전이와 리미널리티 이론).

데니스 클라스 (Dennis Klass), 『계속되는 유대: 상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 1996.

빅토르 터너 (Victor Turner), 『제의의 과정』 (공동체적 유대감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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