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의 언덕》(1939)의 마지막 장면에는 묘한 변화가 있다. 캐서린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히스클리프 역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두 사람의 죽음으로 끝내지 않는다. 마지막 화면에서 두 사람은 유령의 모습으로 황야를 함께 걸어간다.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이 죽음 이후에는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결말이다.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영화가 원작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영화가 생략한 이야기
에밀리 브론테의 원작은 캐서린이 죽은 뒤에도 상당한 분량이 이어진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려 하고, 그 과정에서 다음 세대의 인물들까지 그의 복수에 휘말린다. 캐서린의 딸과 히스클리프의 아들, 그리고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1939년 영화는 이 후반부를 대부분 생략한다. 어린 세대가 겪는 일과 히스클리프의 복수가 남기는 결과 대신,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긴 소설을 짧은 영화로 줄인 결과만은 아니다. 원작에서는 캐서린이 죽은 뒤에도 히스클리프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가 이어진다. 반면 영화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거의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의 관심이 두 사람의 사랑과 상실에 집중된다. 원작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복수의 결과가 화면 밖으로 밀려나면서, 히스클리프라는 인물도 상대적으로 비극적인 연인의 모습으로 기억되기 쉬워진다.
## 죽음으로 끝내지 않은 결말
영화의 마지막은 이러한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캐서린이 죽은 뒤에도 히스클리프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그가 죽은 후에는 두 사람이 황야를 함께 걷는 모습이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남이 유령의 모습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제작 과정에서의 흥미로운 사정도 있다. 미국영화협회(AF I)의 영화 자료에 따르면,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은 두 주인공이 모두 죽는 결말에 만족하지 않았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반대했음에도 두 사람이 천국에서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을 추가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 나타나며 함께 황야로 향하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결말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은 이야기의 필연적인 결과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 제작자가 원한 결말과 감독이 처음부터 받아들이려 했던 결말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는 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뿐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관객에게 남길 것인가를 둘러싼 제작상의 선택과도 연결돼 있다.
## 재회가 바꾸는 히스클리프의 모습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모습은 앞선 비극을 다른 방향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관객은 두 사람이 현실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마지막에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함으로써, 그들의 관계가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는 인상을 남긴다. 물론 이 장면이 앞선 갈등을 실제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살아 있을 때 겪었던 신분의 차이와 선택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도 마지막 재회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그 이후의 결과를 길게 보여주는 대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마지막 이미지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기억하는 것은 히스클리프의 복수가 남긴 피해보다 두 연인의 재회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원작의 후반부를 생략한 선택과 마지막 장면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 마치며
《폭풍의 언덕》(1939)은 원작의 모든 이야기를 옮기지 않았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를 중심에 두기 위해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덜어냈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함께 걷는 이미지를 남겼다. 그 결과 복수와 파괴가 이어지는 이야기보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라는 인상이 강해졌다. 이 영화를 볼 때는 마지막 재회 장면만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장면이 가능해지기까지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생략했는지도 함께 살펴볼 만하다.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결말이지만, 동시에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끄는 영화의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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