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외로움의 역사성 인간은 본래 특정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장소적 존재'입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주의 역사는 **'타향살이의 고독'**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민속 사료와 현대 사회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외로움의 본질을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1. 민속 신앙과 구비 전승에 나타난 '타향살이의 고독': 기록되지 않은 민초의 서사
전통 사회에서 타향살이의 고독은 공동체적 보호막인 '고향'으로부터 분리된 개인이 겪는 실존적 불안이며, 이는 민요와 구비 전승을 통해 **'사회적 죽음'**에 대한 공포로 형상화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 공부를 위해 도시로 와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창 시절 내내 눈칫밥을 먹어야 하셨는데, 그때 외로움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영상 통화 같은 건 상상도 못 할 때라, 집에 편지를 보내도 한참 후에나 답장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시골에서 올라오다 보니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많지 않아, 매일 밤 혼자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당시 할아버지의 외로움은 물리적인 단절에서 오는 오롯이 혼자라는 서러움이었다면, 요즘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외부적으로는 많은 연결을 갖고 있음에도 사실은 혼자라는 식의 외로움 느낌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속학자들은 전통 사회의 외로움을 단순히 '심심함'이 아닌 **'우주적 소외'**로 규정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민속 연구에 따르면, 과거 한국인들에게 고향은 조상신과 가신(家神)의 보호를 받는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타향살이는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주던 영적 방어막을 잃고 악귀와 부정이 득실거리는 '무방비한 공간'으로 노출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이를 **'장소 상실(Placelessness)'**이라 설명하며,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장소로부터 분리될 때 겪는 고통은 자아의 붕괴와 맞먹는다고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느끼신 눈칫밥과 눈물은 단순한 서러움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해 줄 공동체적 배경이 사라진 상태에서 겪는 '사회적 유령'으로서의 존재론적 위기였던 것입니다.
2. 초연결 사회의 역설: 디지털 유목민이 마주한 '현대인의 외로움'과 연결의 질적 저하
현대의 군중 속의 고독은 관계의 깊이가 얕아지는 유동적 현대성의 결과이며, 초연결 사회에서의 현대인의 외로움은 전시된 삶과 실제 삶의 간극에서 깊어집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직장에서 사람들과 북적일 때는 그나마 외로움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외롭다고 느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피드를 보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기웃거리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참 밝고 화려한 삶을 살아가며 수백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몇 명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없이 외롭고 초라해집니다. 그나마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웃고 수다를 떨다 보면 외로움이 해소되기도 하지만, 점점 그럴 수 있는 친구의 수도 줄어들고 또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커집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 사회의 관계를 '연결(Connection)'은 있으되 '유대(Relationship)'는 없는 상태로 진단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의 관계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 '삭제'할 수 있는 유동적인 형태를 띠는데, 이것이 바로 **'유동적 현대성(Liquid Modernity)'**의 핵심입니다. 과거에는 공동체가 개인을 구속하는 대신 '안전'을 보장했다면, 현대 사회는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준 대신 '고립'을 남겼습니다. SNS의 화려한 피드를 기웃거리며 느끼는 초라함은 심리학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타인의 시선에 의해 정의되는 '타자 지향적 자아'가 겪는 필연적인 공허함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현대 민속 보고서에서도 지적하듯, 물리적 거리는 좁아졌으나 서로의 고통에 응답할 의무가 사라진 '방관자들의 도시'에서 현대인은 군중 속에 섞여 있을수록 더 깊은 소외를 경험하게 됩니다.
3.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고독의 가치: 수용과 공존을 위한 성찰
진화심리학은 외로움을 생존을 위한 사회적 통증 신호로 보며, 하이데거의 철학적 관점은 이를 본래적 자아를 찾는 **고독(Solitude)**으로 승화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저는 외로움을 느낄 때 주로 저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려 합니다. 외로움이 무엇인가 그 실체를 들여다보려 노력하는데, 어느 정신과 선생님의 말씀처럼, 인간은 원래 원시시대 때부터 집단생활을 해온 사회적 동물이기에 홀로 있으면 당장 맹수의 위험조차 피할 수 없는 존재였고, 그렇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감정 기제였다는 것이 떠오릅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이 수많은 네트워크에 싸여 있으려 하는 이유도 이 본질적인 외로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꼭 필요한 감정이면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도 하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 외로움 자체를 뿌리 뽑아 완전히 없애버리는 식으로의 해결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외로움이 올라오면 애써 억누르지 않고 그 감정을 충분히 느껴주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해야 할 일을 하려 합니다. 외롭지만 이 외로움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냥 제가 할 일은 하면서 이 외로움과 함께 내가 당장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외로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심리학자 **존 카시오포(John Cacioppo)**는 외로움을 신체가 배고픔을 통해 영양분을 요구하듯, 마음이 '타인과의 연결'을 요구하는 **'생물학적 경고 신호'**라고 분석했습니다. 원시 인류에게 무리로부터의 이탈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우리 뇌는 혼자 있을 때 강력한 통증 신호를 보내어 다시 무리로 돌아가게끔 진화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에게 휩쓸려 사는 '세인(Das Man)'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본래적 고독(Solitude)'**을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외로움을 억누르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과정은, 하이데거가 말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향한 결단'과 일치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지혜가 담긴 민속적 수용 방식은 외로움을 제거 대상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인정하며, 그 에너지를 내면의 성찰로 돌릴 때 고통스러운 외로움(Loneliness)이 창조적인 고독(Solitude)으로 치환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치며
과거 머슴들의 고독이나 현대인의 디지털 고립이나, 그 본질은 '연결되고 싶다는 갈망'에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보존해 온 수많은 정서적 기록들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절실한 존재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외로움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신호이며, 더 깊은 사랑과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이정표입니다.
전체 출처 및 참고문헌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유동적 현대 (Liquid Modernity)』, 이학사, 2009. (현대인의 취약한 유대와 소외 분석) 에드워드 렐프 (Edward Relph), 『장소와 장소 상실 (Place and Placelessness)』, 논형, 2005.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의 존재론적 위기 분석)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 까치글방, 1998. (본래적 고독과 실존적 결단론)
존 카시오포 (John Cacioppo), 『외로움 (Loneliness: Human Nature and the Need for Social Connection)』, 민음사, 2013. (진화심리학적 관점의 외로움 메커니즘)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 민속 대백과사전: 한국 민속의 정서와 심리 편』.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 구비전승 민요 사료집: 타향살이와 향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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