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컬럼

[현대 민속학 비평] 잔치의 잔혹한 다정함: 외로움이라는 질병을 치유하는 집단적 ‘엑스태시(Ecstasy)’

infodon44 2026. 1. 1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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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민속학적 관점에서 외로움은 단순한 심리적 위축이나 정서적 결핍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신성한 보호막(Sacred Shield)에서 이탈하여 온갖 재액과 부정한 기운에 노출된 '사회적 부정(不淨)' 상태로 간주되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고립을 방치할 경우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영적·물적 토대가 무너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고립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인위적인 광기이자 정화 의례로서 '마을 잔치'를 고안했습니다. 잔치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다정한 여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흩어지면 소멸한다'는 존재론적 공포를 집단적 신명과 열광으로 억누르고, 개별화된 자아를 공동체의 용광로에 녹여내는 치열한 생존의 굿판이었습니다.

 

1. ‘커뮤니타스’와 육체적 동기화: 에밀 뒤르켐의 실존적 처방

사회학의 거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저서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인간이 평범한 일상의 자아(Profane)를 벗어나 거대한 사회적 에너지에 합류하는 상태를 **'집단적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 명명했습니다. 뒤르켐의 핵심 논지는 사람들이 동일한 리듬에 몸을 맞추고 에너지를 동기화할 때, 개별적인 '나'의 고통이 집단적인 '우리'의 신성함으로 승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학자 **빅토르 터너(Victor Turner)**가 제시한 '커뮤니타스(Communitas)'—일상의 모든 사회적 지위와 위계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채 겪는 강렬한 수평적 유대감—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민속 연구에 따르면, 마을 잔치에서 행해지는 농악이나 집단 무용은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라 참가자들의 심박수와 호흡을 일치시켜 개별적 고독을 말살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걷기 동호회에 가입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수십 킬로미터의 먼 거리를 땀 흘리며 걸은 적이 있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공유하며 묵묵히 걷다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해 다 같이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을 때의 그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별로 깊은 대화를 섞지도 않았는데, 같은 리듬으로 걸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깊이 신뢰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옛날 마을 잔치도 이렇게 함께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밥을 나누며, 외로움이 틈탈 수 없게 억지로라도 서로의 삶을 엮어버렸던 것 같아요. 요즘 우리가 등산이나 크로스핏 같은 격렬한 취미 활동을 찾는 것도, 결국은 내면의 고독을 집단적인 에너지로 해소하려는 무의식적인 생존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2. ‘만두레’와 ‘머슴 잔치’: 조르주 바타유의 일반경제학과 계급 역전의 공학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세시풍속 보고서와 농경 의례 사료를 심층 분석하면, 우리 민족의 잔치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긴장 해소의 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핵심 기제는 음력 7월 백중(百中) 무렵 행해지는 **'만두레'**와 그 직후의 **'머슴 잔치(호미씻이)'**입니다. 만두레는 논농사에서 마지막 김매기를 뜻하는 용어로, 한 해 농사의 가장 고된 노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입니다. 이때 공동체는 '호미씻이'라는 의례를 통해 농기구를 씻어 갈무리하고 집단적인 축제를 벌입니다. 학술적으로 이 축제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가 저서 **『저주받은 몫』**에서 주창한 **'일반경제학(General Economy)'**의 실천적 모델입니다. 바타유는 모든 유기체와 사회는 필연적으로 잉여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이를 생산적으로만 재투자할 경우 사회적 압력이 임계치를 넘어 폭발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이 **'저주받은 몫(잉여)'**을 축제나 제의를 통해 완전히 '탕진'함으로써 체제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사료에 기록된 머슴 잔치는 상전이 머슴에게 술을 권하고, 가장 노동력이 뛰어난 머슴을 소에 태워 마을을 돌게 하는 '장원례(壯元禮)'를 포함합니다. 이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고대 로마의 '사투르날리아(Saturnalia)'와 같이 권위의 상징적 파괴를 통해 계급적 울분과 고립감을 정화하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었습니다. 머슴은 이 잔치를 통해 단순한 노동 도구가 아닌 공동체의 '영웅'으로 재정의되며, 그 과정에서 소외라는 질병은 집단적 신명 속에 사멸합니다. 재작년에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일을 겪으며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참여하던 독서 모임 사람들이 참 고마웠어요. 제가 왜 힘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묻지도 않으면서 그저 묵묵히 제 안부를 물어봐 주고, 소소한 선물과 응원을 보내주곤 했습니다. 특별한 조언보다도 그저 누군가 내 옆에 존재한다는 그 연대감이, 벼랑 끝에 서 있던 제 외로움을 덜어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옛날 마을 잔치에서도 아마 누군가 깊은 슬픔에 빠져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잔치를 벌여 그 사람을 삶의 현장으로 억지로라도 끌어당기며 공동체를 지켜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3. ‘신부족주의’와 가상의 멍석: 미셸 마페졸리의 탈근대적 연대

탈근대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Michel Maffesoli)**는 현대인이 거창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대신, 취향과 감성, 정서적 공명을 공유하는 **‘신부족주의(Neo-Tribalism)’**로 회귀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사회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이 경고한 '함께 홀로(Alone Together)'—디지털 기기로는 24시간 연결되어 있으나 정서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된 상태—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입니다. 오늘날 가상 공간에서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은 거세된 잔치의 야성을 가상 세계에서나마 재현하려는 처절한 정서적 생존 투쟁입니다. 사람들은 '멍석'이 깔린 온라인 공간에서 익명의 부족원이 되어 집단적 성취감을 맛보고, 이를 통해 현실의 고독을 상쇄하려 합니다. 저도 요즘 온라인 게임 속 길드 활동에 푹 빠져 있습니다. 길드원들과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강력한 레이드 보스를 마침내 잡았을 때의 그 짜릿함은 이루 말로 다 못합니다. 현실에서는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가상의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고 승리하니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매일 밤 접속해서 시시콜콜한 일상을 수다로 풀고 고민 상담을 하는 과정이, 옛날 동네 어귀의 잔치처럼 완벽한 신체적 온기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저를 고립으로부터 버티게 해 줍니다. 이것이야말로 0과 1로 지어진 현대판 디지털 부족 사회의 '멍석'이 아닐까요?

 

마치며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사료들이 전하는 고대의 지혜는 서늘할 만큼 명확합니다. 외로움은 골방에 앉아 홀로 명상하거나 접속의 편리함 뒤에 숨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타인의 무질서함과 시끄러움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함께 망가지고 에너지를 충돌시키는 '난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편리하지만 차가운 접속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조금은 불편하고 시끄럽더라도 서로의 체온이 느껴지는 진짜 잔치의 멍석을 깔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류가 수만 년간 '외로움'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에 맞서 싸우며 다듬어온 가장 잔혹하고도 다정한 유일한 처방전이기 때문입니다. 

 

전체 출처 및 참고문헌 

Emile Durkheim,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Les Formes élé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1912.

Georges Bataille, 『저주받은 몫 (La Part maudite)』, 1949. (탕진과 소비의 일반경제학)

Victor Turner, 『의례의 과정 (The Ritual Process)』, 1969. (커뮤니타스 이론)

Michel Maffesoli, 『부족의 시대 (Le Temps des tribus)』, 1988.

Sherry Turkle, 『외로워지는 사람들 (Alone Together)』, 2011.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세시풍속 및 마을 공동체 의례 조사 보고서』 (충청·전라·경상권역 만두레 및 호미씻이 기록).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의 농경세시와 무형유산적 가치』 (계급 역전과 집단적 열광의 기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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