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는 흔히 조선 시대를 '억압의 시대'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그 안의 청춘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위험한 '썸'을 즐겼습니다. 현대의 썸이 '메시지 답장 시간'을 재는 심리전이라면, 조선의 썸은 '가문의 명예'와 '생존'을 건 실전에 가까웠죠. '썸 탄다'는 현대적 표현이 주는 가벼움 뒤에 숨겨진, 관계의 불확실성과 그 안에서 피어난 처절한 탐색의 과정을 민속학적 시선으로 다시 읽어봅니다. 단순히 설렘을 넘어서, 사회적 금기를 깨부수려 했던 선조들의 '발칙한 연애사'를 들여다보면 오늘날 우리의 고민이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1. '내외'라는 장벽이 만든 고도의 심리전: '눈치'의 민속학
현대 사회에서 '썸'은 '밀고 당기기', '연락의 빈도'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불확실한 관계의 탐색 단계입니다. 얼핏 보면 지극히 현대적인 현상 같지만, 옛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에도 이러한 관계의 '불확실성'과 '탐색' 과정은 존재했습니다. 민속학적으로 볼 때, 중매결혼이 주류였던 시절에도 선(先)이나 중매(仲媒)를 통해 상대의 가풍을 살피고 간접적으로 마음을 전하는 행위는 현대의 '디지털 탐색'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춘향전의 이몽룡과 성춘향이 첫눈에 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벽이라는 사회적 제약 때문에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기까지 겪었던 심리적 갈등은 현대의 '정서적 불안'과 그 결이 같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은 결국 시대를 초월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생각나네요. 저는 이러한 관계의 불확실성과 탐색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경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를 탐색하는 시기에는 사실상 상대의 마음도 알 듯 말 듯하고,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저 같은 경우에는 설렘보다는 조심스러움과 불안함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혹시라도 저의 말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나의 마음이 상대에게 너무도 확연하게 읽히지는 않을까 등 걱정스럽고 재는 식의 생각이 너무도 많아지더라고요. 그 정도가 심지어 상대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순간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수시로 변하는 속성을 갖는다는 생각에 바로 다음 순간에 변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순간순간 들어오면서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미래를 예측해 나가는 과정이 마치 살얼음판을 딛는 듯한 아슬아슬한 기분이었습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기술'로 보았습니다. 프롬의 관점에서 볼 때, 사용자님께서 겪으신 '상대의 마음을 재고 불안해하는 과정'은 사랑이라는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력 투쟁의 일종입니다. 조선시대의 연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의 연애는 직접적인 표현이 금지되었기에 오히려 상대의 사소한 몸짓 하나를 해석하는 '기호학적 탐색'이 극도로 발달했습니다. 이는 프롬이 말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회적 제약과 만나 발현된 독특한 형태의 심리적 연대였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한국 구비문학 대계』**는 정사(正史)에 기록되지 않은 민초들의 적나라한 연애 담론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흔히 '야합'으로 치부되던 설화 속 남녀의 만남이, 사실은 엄격한 내외법(男女內外法)을 무력화시키려는 민중의 능동적인 사랑법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사료에 따르면, 성춘향이 이몽룡에게 내건 조건들은 단순한 '썸'을 넘어 자신의 신분을 보장받으려는 치밀한 '계약적 탐색'의 성격이 강했음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합니다.
2. 가문의 결속과 개인의 욕망: '매파'는 알고리즘이었다?
옛사람들의 사랑과 결혼은 개개인의 감정보다는 공동체의 가치와 가문의 존속에 훨씬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과 같은 유교적 도덕규범은 현대의 자유로운 연애관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습니다. 당시의 결혼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가문 간의 결합이자 사회적 통과의례(Rite of Passage)로서의 성격이 매우 강했습니다. 반면 현대의 '썸'은 개인의 정서적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며, 주관적인 설렘이 관계의 핵심 동력이 됩니다. 이는 우리 민속의 근간이었던 공동체 중심의 삶이 개인 중심의 현대적 삶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개인의 감정보다는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하던 시대가 왠지 낯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정감을 주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개인의 감정과 주변의 기대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한창 결혼 적령기였을 때, 저희 집에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두 사람 관계 서로 간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문제로 부모님과 자주 부딪혔던 기억이 나네요. 또한 저희 어머니는 결혼은 인생에서 선택이 아닌 꼭 해야 하는 거라는 신념이 강한 분이라 이 부분에서도 부딪혔지요. 하지만 결혼은 내가 하는 거고 나의 행복과 선택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저의 선택을 따르는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의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잣대가 아닌,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 사회로 올수록 개인은 전통적인 공동체(가족, 종교 등)의 보호에서 벗어나 모든 선택의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의 결혼이 가문의 책임이었다면, 현대의 썸은 사용자님의 경험처럼 오롯이 '나의 선택'이자 '나의 책임'이 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 전시 사료에 따르면, 과거의 '매파(중매쟁이)'는 가문 간의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매칭을 제공하는 일종의 '인간 알고리즘'이었습니다. 이는 개인에게는 억압이었으나, 가문 전체로 볼 때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안정적인 시스템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한국의 일생의례: 혼례 편』**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여성들이 혼례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려 했던 흔적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단순히 부모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주단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를 치밀하게 계산했던 여성들의 주체적인 모습을 민속학적으로 재조명합니다. 이는 공동체의 가치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의 행복'을 찾으려 했던 사용자님의 가치관이 우리 민족의 DNA 속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증명하는 사료입니다.
3. '느림'의 미학과 '읽씹'의 공포: 매체의 민속학
옛사람들과 현대인의 사랑은 소통의 매체와 속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과거의 소통은 서신(書信)이나 인편(人便) 같은 간접적 매개를 통해 느리게 진행되었으나, 현대의 '썸'은 디지털 기기를 통한 즉각적 반응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관계 발전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지만, 동시에 '어장 관리'와 같은 현대적 민속 현상을 낳기도 했습니다. 과거 민속 사회에서 사랑이 '은유와 상징'의 미학이었다면, 현대의 사랑은 '직설과 속도'의 미학입니다. 하지만 소통 방식이 변했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진심의 무게까지 변한 것은 아닙니다. 문득, 서신 교환의 낭만이 그리워지는 건 저뿐만은 아닐 것 같아요. 물론 '읽씹'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평화로워집니다. 저는 현대의 썸 방식과 저의 경험을 비교해 보자면, 현대의 SNS를 통한 남녀의 교류 속에서는 빠르고도 잦게 썸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반면 앞서서도 이야기했듯이 저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과거 시대의 썸은 간접적이고 느린 소통 방식을 통해 관계가 발전되어 나갔습니다. 제가 요즘 젊은이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현재의 썸은 나름 시간 절약 혹은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면 저만의 썸 방식이었는지, 그 당시의 썸 방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썸은 적절한 시간적 거리와 수줍은 기다림 속에서 나름의 낭만적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의 사랑을 '액체처럼 흐르는 가변적인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현대의 디지털 소통은 언제든 연결을 끊을 수 있는 편리함을 주었지만, 그만큼 관계의 밀도를 낮추어 '어장 관리'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과거의 서신 정치는 '물리적 거리'가 주는 고통을 '정서적 깊이'로 승화시킨 결과물입니다. '읽씹'이 없던 시절의 평화로움은 매체의 느림이 인간에게 부여한 '사유의 시간' 덕분이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조선시대 연애 서신과 정표 연구』**에 따르면, 선조들은 편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을 땋아 보내거나(할발), 직접 수놓은 주머니를 건네는 등 강력한 '물적 증거'를 선호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이러한 정표 문화가 현대의 이모티콘보다 훨씬 더 무거운 '사회적 약속'의 의미를 지녔음을 강조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가벼운 썸이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몸의 언어'와 '기다림의 숭고함'임을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유물 데이터들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치며
옛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와 현대의 '썸'은 겉보기에 너무나 달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관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탐색하는 인간 본연의 보편적인 정서가 존재합니다. 공동체의 예(禮)에서 개인의 정(情)으로 소통의 중심이 이동했을 뿐입니다. 결국 민속학적 관점에서 사랑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의미를 더 깊이 성찰하게 하는 소중한 지혜가 됩니다. 사랑의 형태는 변해도 그 설렘의 본질은 영원하니까요.
참고문헌 및 사료 (확장판)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1956.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2003.
울리히 벡 (Ulrich Beck): 『위험사회』에서 개인화 이론을 정립한 거장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 구비문학 대계』
국립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일생의례 조사보고서: 혼례 편』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민속 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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