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장승과 솟대, 왜 마을 어귀를 지켰을까? '경계'와 '수호'의 민속적 의미 재조명

infodon44 2025. 12. 2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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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마을 어귀에 우뚝 서서 때로는 무서운 표정으로, 때로는 하늘을 향해 힘껏 뻗은 모습으로 오가는 이들을 맞이하고 배웅했던 장승과 솟대. 이들은 단순히 조형물을 넘어,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 염원이 깃든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자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도심 속 빌딩 숲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시골길을 걷다 보면 여전히 위엄을 뽐내는 장승과 솟대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왜 마을의 가장자리에 서서, 때로는 인자한, 때로는 엄격한 모습으로 마을을 지켰을까요? 본 글에서는 민속학적 관점에서 장승과 솟대가 가졌던 '경계'와 '수호'의 다층적인 의미를 깊이 탐구하고자 합니다. 마을과 바깥세상의 물리적·영적 경계를 나누고, 온갖 재앙과 질병으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간절한 소망과 지혜를 재조명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연과의 조화, 공동체의 안정,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깊은 세계관을 이해하고,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여전히 유효한 '안전과 평안'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될 것입니다.

 

1. 세속과 신성,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의 수호자

장승과 솟대가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계(境界)'를 명확히 표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을의 입구나 주요 길목, 고갯마루 등은 단순히 물리적인 지점을 넘어, 마을이라는 '안전한 우리'의 공간과 바깥세상이라는 '미지의 외부'를 나누는 상징적인 선이었습니다. 장승은 주로 이러한 길의 표지나 이정표 역할도 하였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세속적인 공간과 신성한 공간, 인간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솟대 역시 마을 어귀에 세워져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비는 신앙의 대상물로서, 마을의 경계를 알리는 동시에 마을의 신성함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장승은 보통 남녀 한 쌍으로 세워지거나, 다섯 방위에 맞춰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마을의 들머리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의 글씨가 새겨진 장승이 서 있는 모습은 외부의 잡귀나 액운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영적인 울타리이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세우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장승은 이정표처럼 10리, 30리마다 세워져 거리를 알려주기도 하는 등 물리적인 경계를 알려주는 기능도 겸했습니다. 이처럼 장승과 솟대는 단순히 '여기부터가 우리 마을'이라고 알리는 지표를 넘어, **외부의 부정적인 기운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신성한 경계 표시'**였습니다. 외부에서 유입될 수 있는 질병, 액운, 전쟁의 위협 등을 차단하고, 마을 내부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려는 선조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경우, 한때 저는 저의 영역을 침범하고 선을 넘어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대인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면서도 부딪히고 싶지 않아 부당하다 싶은 타인의 요구까지도 다 들어주는 식이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살짝 착한 여자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는지 이런 저 자신에 대해 '나는 그런대로 선량하다'는 생각으로 저를 위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한번 선을 넘은 사람은 그 선을 넘어 마구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건 그 사람들의 문제도 있었지만 저 자신의 문제가 더 컸습니다. 이렇게 저만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보니 이로 인해 지쳐가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영국 왕실 심리 상담사인 안젤라 센의 강의를 보게 되었어요. '건강한 소통'이라는 주제의 강의였는데, 바로 저를 위한 강의인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당황하지 말고 나의 생각과 감정과 요구에 집중하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서 우선 나의 의견을 전달하라고 말이죠. 그렇다고 무조건 내 말만 하는 것은 아니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과 요구도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또 조율이라고 하니까 상대의 요구를 다 들어주라는 뜻이 아니라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타인의 일방적인 감정이나 말에 쏠리거나 밀리지 말고 나의 의견을 제시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건강한 소통이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고 함께 협력하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제가 일단 상대와 의견이 다르거나 부당하다 싶은 요구를 들었을 때는 지레 겁부터 먹었던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 자신의 원래 성향도 있지만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고, 한 번도 연습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저는 일단 이런 상황이 되면 마음속으로 '아무도 나를 해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제 쪽 의견과 입장을 말하는 훈련을 해나갔습니다. 그 과정이 저로서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조금씩 용기를 갖고 길을 찾아나가는 저 자신에 칭찬을 해주면서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는 마치 마을 어귀의 장승이 외부의 나쁜 기운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듯, 제가 저의 소중한 내면을 지켜내는 중요한 방어막이자 경계선이 되어주었습니다.

 

2. 온갖 재앙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의 염원

장승과 솟대는 단순히 경계를 나누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수호(守護)'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강인한 모습의 장승은 귀신을 물리치는 강력한 존재로, 솟대 위에 앉은 새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 마을에 좋은 기운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장승의 몸체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과 같은 글씨뿐만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송곳니를 드러낸 무서운 얼굴을 조각하여 잡귀를 쫓고 재앙을 막아내는 주술적인 힘을 부여했습니다. 또한 전염병(두창)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두창 장승', 서쪽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 '진서장군(鎭西將軍)' 등 특정 목적을 가진 비보(裨補) 장승도 세워졌습니다. 목장승은 비바람에 부식되기 때문에 매년 또는 2, 3년마다 새로 만들어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는 장승의 물리적 수명을 넘어, 마을 공동체가 끊임없이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의지를 담은 반복적인 수호 의례였음을 보여줍니다. 솟대 위에 앉은 오리나 새 역시 하늘에 제를 올리는 상징물로, 마을의 풍년과 풍어, 자녀의 순산과 건강을 기원하는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농사가 주를 이루던 사회에서 솟대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동시에,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수호신 역할을 했습니다. 오리가 불을 막아주는 새로 여겨져 마을의 화재를 막아달라는 의미로 솟대에 오리를 얹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장승과 솟대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와 미지의 질병으로부터 나약한 인간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선조들의 강렬한 생존 의지와 염원이 응축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혼자만의 시간에 재즈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루틴이 저의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저는 원래 조용한 ADHD라 스스로 말할 정도로 워낙 생각이 많고, 또 어제의 기분 상했던 일로 갔다가 미래의 불안으로 갔다가 널을 뜁니다. 이런 저에게 명상은 그 어느 곳도 아닌 '지금 이 순간 현재'로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져오는 작업입니다. 이 아침 루틴은 마치 솟대처럼 제가 외부의 부정적인 기운으로부터 저의 내면을 보호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음악이 주는 안정감과 함께 명상적인 시간은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긍정적인 에너지원이 되어, 설령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제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저를 지지하는 강력한 보호막이 되어주었습니다.

 

3. '경계'와 '수호' 너머: 공동체의 결속과 인간의 염원이 담긴 민속

장승과 솟대는 단순히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고 수호하는 기능을 넘어,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인간의 근원적인 염원을 담아내는 중요한 민속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장승과 솟대를 세우는 과정 자체가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중요한 의례이자 축제였습니다. 마을의 산에서 장승목을 베어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장을 치고 제사를 지내며 장승과 솟대를 세우는 '장승제'와 '솟대제'는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하고, 같은 신념을 공유하며 '우리'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이들을 세움으로써 주민들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함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공동체의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목장승처럼 수명이 짧은 장승을 정기적으로 새로 만들어 세우는 것은, 단순히 조형물을 교체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염원을 매년 새롭게 다지고, 지속적으로 자연과 신에게 자신들의 소망을 전달하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 운명 앞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고, 스스로에게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의지였던 것입니다. 장승과 솟대에 나타난 조형미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단순하면서도 투박하지만,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그 모습은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민족 특유의 미감을 담고 있습니다. 무뚝뚝한 듯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듯 위엄 있는 장승의 표정은 희로애락을 모두 포용한 우리 선조들의 삶의 태도를 반영합니다. 이처럼 장승과 솟대는 단순한 민속 유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명력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자연과 교감하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살아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장승과 솟대는 단순한 나무나 돌덩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을 어귀에 우뚝 서서 **마을의 물리적·영적 '경계'를 명확히 하고, 온갖 부정적인 기운과 재앙으로부터 공동체를 '수호'**했던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이자 삶의 지혜가 응축된 상징이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이들은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고,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며,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25년 현대 사회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경계와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장승과 솟대는 사라졌을지라도, 우리 내면의 평화를 지키고 외부의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수호하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염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장승과 솟대의 민속적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삶의 진정한 '경계'와 '수호'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자기 정체성일 수도 있고, 나를 지탱해 주는 공동체적 유대감일 수도 있으며, 혹은 내면의 평화를 지키려는 꾸준한 노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나만의 장승과 솟대를 세워,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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