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컬럼

[고전 비평] 장화홍련전의 '두꺼비', 복수의 심판자인가 아니면 자연의 대변자인가?

infodon44 2025. 12.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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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장화홍련전』은 가부장제의 비극과 인간의 잔혹성을 파헤친 수작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비극의 결말을 맺는 결정적 열쇠가 인간이 아닌 ‘미물’ 두꺼비의 입에 물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작가는 인간의 법정 대신 두꺼비를 선택했을까요? 본 글에서는 두꺼비의 등장을 초월적 심판과 관계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 봅니다.

 

1. [복수의 심판자] '원혼'의 외침에 응답한 초월적 존재인가?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따르면, 영웅의 고난이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초자연적 조력자’는 뒤틀린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합니다. 조선 시대라는 엄격한 윤리 체계 안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대항하는 것은 금기였기에, 작가는 두꺼비라는 외부 존재를 빌려 악인을 처벌하는 ‘신의 대리자’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장화홍련전의 줄거리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자매가 얼마나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계모 허 씨는 장화를 모함하여 죽음으로 내몰고, 홍련마저 언니를 따라 목숨을 끊습니다. 마침내 이인이라는 부사가 부임하자 장화의 원혼이 나타나 억울함을 토로하는데, 이때 장화의 시체를 가리키며 나타난 존재가 바로 두꺼비입니다. 두꺼비는 장화의 배를 가리키며 범인의 악행을 묵인할 수 없다는 듯 울부짖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연물이 아니라 초월적인 힘으로 심판을 집행하는 대리자처럼 보입니다. 마치 하늘이 미물인 두꺼비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 한 것처럼 말이죠.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복수의 심판자'로서 두꺼비는 약하고 억울한 자들의 마지막 희망을 상징합니다. 저는 장화의 상황을 보면서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왜 도망가거나 아버지께 알리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당시 조선시대는 효와 순종이 절대적 가치였고 여성이 자립할 시스템이 전무했습니다. 저 역시 취업이 안 되어 백수로 지내던 시절, 내 힘으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막막함과 무력감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장화 역시 그런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제가 만약 장화였다면 혼령이 되어 복수만을 꿈꿨을 텐데, 이인 부사 앞에서 울부짖던 두꺼비를 보았을 때 하늘이 나의 한을 들으시고 도우러 오셨다고 확신했을 겁니다. 그 울부짖음은 비극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마지막 희망이자 **하늘이 내린 '복수의 심판자'**임을 한순간에 알아보았을 것 같습니다.

 

2. [자연의 대변자] 침묵하는 세상에 던지는 '자연의 경고'인가?

두꺼비는 생태 비평적 관점에서 인간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자연의 응답입니다. 우리 전통 사상에서 자연은 인간의 도덕과 교감하는 유기체였습니다. 자매가 유기된 연못은 생명의 근원이며, 두꺼비는 그곳의 질서를 가장 먼저 감지한 목격자입니다. 이는 인간의 위선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경고이자, 생명의 질서는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두꺼비의 역할은 단순히 복수 대행자를 넘어,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악행에 반응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자매의 비극적 죽음의 현장이자 시체가 은폐된 곳은 다름 아닌 '자연'(연못)입니다. 계모의 범죄는 인간의 윤리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할 자연의 질서마저 파괴한 행위입니다. 두꺼비는 이러한 잔인함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자연 스스로가 경고를 던지는 대변자로 나선 것입니다. 제가 만약 장화였다면, 인간 세상의 무관심과 불의에 좌절했겠지만 저를 둘러싼 연못의 물결과 숲의 풀벌레 소리만은 저의 비극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작은 두꺼비가 나의 시신을 가리키며 울부짖던 그 순간, 저는 그것이 온 산천초목이 나의 억울함을 알고 던지는 준엄한 '자연의 경고'라고 느꼈을 것 같아요.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괴된 질서가 더 이상 악행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미물을 통해 전달한 것이지요. 인간의 법과 윤리가 무너진 세상에서 자연의 목소리에 기대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 희망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3. [심판과 치유] 두꺼비가 제시하는 '진실'의 가치: 관계의 회복

두꺼비는 파괴된 공동체를 복구하는 사회적 치유자입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두꺼비가 장화의 배를 가리키는 행위는 거짓된 상징(가짜 임신)을 해체하고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가족 내의 독소적 관계를 도려내는 정화의 과정입니다. 이 정화가 끝난 후에야 자매는 명예를 회복하고 아버지는 참회하며, 환생이라는 새로운 서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두꺼비의 등장은 이야기 전체의 '치유와 회복'을 완성하는 전환점입니다. 두꺼비가 시체를 가리키는 순간 진실은 더 이상 은폐될 수 없게 되고, 계모의 악행이 드러나 처벌을 받으며 억울한 자매는 명예를 되찾습니다. 비록 비극적인 시작이었지만, 두꺼비의 개입을 통해 무너졌던 사회적 정의가 다시 세워지고 깨어졌던 인간관계마저 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제가 장화였다면 두꺼비의 울부짖음을 통해 한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의 억울함을 아시고 진심으로 슬퍼하시며 명예를 회복시켜 주셨을 때, 저의 고통은 치유되었겠지만 살아계신 아버지가 그런 한을 안고 살아가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였을 것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행복한 마음으로 그 생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라면 반드시 그 두꺼비를 찾아 목숨을 다할 때까지 보은하며 섬겼을 것 같습니다.

 

마치며

장화홍련전 속 '두꺼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점에서 정의를 외쳤던 존재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억울한 사연 속에서 예상치 못한 '두꺼비'와 같은 존재가 나타나 진실을 밝혀내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을 이 설화는 담고 있습니다. 두꺼비는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며, 그를 통해 얻은 진실은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 학술적 근거

김열규, 『한국 신화의 미학』 (동물 상징성 분석)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고전 소설 구조 연구) Joseph Campbell,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초자연적 조력자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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