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처용의 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그가 춤춘 진짜 이유는 '초연'일까, '체념'일까?

infodon44 2025. 12. 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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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오래된 우리 설화 속에서 처용은 밤늦게 집에 돌아와 아내와 역신(疫神)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도 노여워하지 않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 기이하면서도 신비로운 행동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깊은 의문을 던져왔죠. 과연 그는 상황을 달관하여 받아들이는 '초연'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 '체념'의 몸짓이었을까요? 처용의 춤에 담긴 다층적인 의미를 분석하며, 그가 보여준 인간을 초월한 듯한 행동의 진짜 이유를 탐구해 봅니다.

 

1. 복합적인 감정의 발현: 인간적 고통인가, 신적 관용인가?

처용이 아내와 역신이 동침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그는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다만 내 아내였거늘 빼앗겼으니 어찌하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지극한 슬픔과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체념'의 표현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격렬한 분노나 배신감에 사로잡혀 격정을 토했거나, 혹은 한없이 좌절하고 무너졌을 테니까요. 하지만 처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이러한 비범한 반응은 처용이 단순히 한 인간이 아닌, 신적 또는 주술적 권능을 지닌 특별한 존재였음을 암시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처용은 용왕의 아들이거나 혹은 동해 용왕의 감화를 받아 신라 경문왕을 도운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배경은 그가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더 큰 존재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그의 춤은 단순한 '체념'을 넘어선 **인간적인 고통을 관용으로 승화시키는 '신적 초연(超然)'**의 몸짓일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배신을 넘어, 자신이 다스려야 할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지의 발현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의 행동은 분노 대신 이해를, 복수 대신 관용을 선택함으로써 역신마저 감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용의 상황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요? 내가 만약 그 순간의 처용이었다면, 감히 이런 비범함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저는 다음과 같은 감정에 휩싸였을 겁니다. 제가 처용의 상황이었다면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 제 눈을 의심하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배신감과 모욕감, 분노 등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휩싸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마치 죽음의 순간 제가 살아온 파노라마가 지나간다는 말처럼, 그와 제가 만났던 순간부터 이후 서로 좋았던 몇 가지 장면이 순간 스치듯 지나쳐 갈 것도 같아요. 오래전 TV에서 한 개그맨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나네요. 결혼을 한지 불과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내가 예사 사이가 아닌듯한 다른 남성과 진하게 통화를 하는 것을 우연히 자기 방에 있는 전화기를 통해 듣게 되었지만,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그냥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게 되더라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그가 몹시 측은하게 느껴지면서 그의 말에 공감이 되더군요. 저 역시도 그런 광경을 목격을 했어도 "뭐 하는 짓이야!"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주장을 하기는커녕 기운이 쭉 빠지고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아요. 하지만 처용은 그 앞에서 춤을 췄다는 것은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고, 분명 처용은 『삼국유사』에서의 기록처럼 신적 주술적 권능을 지닌 자였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2. '역신'에 대한 최후의 경고: 신성한 주술적 행위

처용의 춤을 단순히 아내의 외도에 대한 개인적인 반응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이야기의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처용 설화의 중심 인물이 아내가 아닌 **'역신(疫神)'**에 있다고 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외도'는 실제 외도가 아닌 '질병(得病)'에 대한 비유이며, 처용의 춤은 '역신'을 향한 경고이자 강력한 주술적 행위입니다. 처용의 특별한 얼굴 생김새(붉은 얼굴, 흰 이빨)는 일반인과 다르며, 이는 페르시아에서 온 전염병 전문가였을 가능성 등 서역인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의 붉은 얼굴은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으로도 해석됩니다. 처용은 역신을 힘으로 제압하기보다는, 그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나의 상황을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압도적인 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역신 스스로 물러나게 합니다. 실제로 역신은 처용의 대범함에 감동하여 처용의 얼굴이 있는 곳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이것은 처용이 이미 역신을 알아보고 그 정체를 간파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며, 주술적 능력으로 역신에게 '최후의 경고'를 보낸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춤은 개인적인 '체념'이나 단순히 담담한 '초연'이 아니라, 주술적 힘을 발휘하여 전염병을 쫓고 액운을 막으려는 '단호하고 신성한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궁중에서 연말에 처용 탈을 쓰고 추는 '처용무(處容舞)'가 나쁜 기운을 막고 전염병을 쫓는 나례(儺禮)로 행해진 것은 이러한 해석에 더욱 힘을 실어줍니다. 이처럼 처용의 춤이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면, 만약 나에게 처용과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저 역시 제가 처용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였다면 당연히 인간적인 고통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을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초연할 수도 있었겠지요. 나아가 이는 내가 이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더 이상 악이 이대로 머무를 수는 없다는 의식을 담은 춤을 춤으로써 내가 직접적으로 물리치지 않고도 악이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지혜롭고도 여유 있는 방법을 택했을 것 같습니다.

 

3. 시간을 초월한 상징: 전설이 예술이 되어 전해지다

처용의 춤은 아내의 외도 목격이라는 개인적인 사건, 그리고 역신 퇴치라는 주술적 행위의 범주를 넘어, 수많은 시대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재해석되며 살아 숨 쉬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행위는 한 번의 춤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후대 사람들의 삶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처용이 보여준 관용과 포용의 정신은 벽사(辟邪)와 축귀(逐鬼)의 의미를 넘어,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진화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궁중에서 행해진 **'처용무(處容舞)'**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궁중 나례(儺禮)의 주요 부분으로 전승되며, 단순히 악귀를 쫓는 것을 넘어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종합 예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현재 처용무는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이자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처용의 모습은 민간에서 부적으로 활용되거나, 다양한 문학 작품과 현대 예술에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처용의 춤은 한 시대의 사건을 넘어, 예술적 형태로 변모하고 사회적 의식으로 확장되며 **인류 보편의 지혜와 관용을 담은 '살아있는 전설'**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의 춤은 과거의 한 순간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 시대와 함께 춤추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처용의 춤이 이렇게까지 시대를 초월한 상징이 될 줄, 그가 과연 알았을까요? 제가 만약 처용이었다면 아무리 신적인 기운을 가졌던 존재라 하더라도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역신에게 경고를 보내려는 목적이었을 나의 춤이 시대를 거듭하며 궁중 무용으로 계승되고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들에게까지 그 의미가 전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겪은 아픔이 후대 사람들에게 질병을 이겨내고 화합을 이루는 지혜로운 정신의 상징이 된 것을 보았다면, 나의 춤이 가진 힘과 의미에 다시금 놀랐을 것 같습니다. 나의 춤이 이토록 긴 생명력을 가지고 시대와 함께 춤추며,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아무리 신적인 요소를 가진 존재라 하더라도 굳이 내가 겪은 개인적 아픔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도 같습니다.

 

마치며

처용의 춤은 아내의 외도라는 단순한 사건에 대한 반응을 넘어, 인간적인 고뇌와 신적인 관용, 주술적 경고, 그리고 더 큰 사회적 의미까지 내포한 복합적인 행위였습니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단순한 '체념'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달관하고(超然), 그것을 통해 불행을 극복하며(超然),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수호하려는(超然) 강력하고 지혜로운 의지의 발현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처용의 춤은 천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위기 속에서도 지혜와 포용으로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위대한 문화적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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