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인류는 문명의 시작과 함께 질병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에 끊임없이 맞서 싸워왔습니다. 특히 팬데믹을 겪으며 현대인들은 지금처럼 과학적 방역 체계가 전무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역병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 백성들은 오랜 세월 전승된 민속적 예방과 치유 방식을 동원하여 절망적인 상황을 헤쳐나가려 노력했고, 이는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위기에 대응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조선시대 역병에 대한 민속적 이해와 대응을 현대 팬데믹 상황과 비교하며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1. '하늘의 벌'인가 '사회 문제'인가: 역병에 대한 민속적 이해와 인식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역병은 단순한 질병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성종 때 의서인 『구급간이방』 서문에는 "괴질은 하늘의 경책"이라 하여, 왕의 부덕이나 인간의 죄업이 전염병을 불러온다는 사상적 배경이 널리 퍼져 있었죠. 백성들은 역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역신(疫신)'의 존재에서 찾기도 했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공포 앞에서 미지의 대상을 신격화하여 심리적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팽배했던 사회에서 역병은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깊은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며 공동체 질서마저 흔들리게 했습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인식은 현대 팬데믹 상황에서 드러난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현대에는 바이러스라는 과학적 원인이 명확하지만, 팬데믹 초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사람이 괴담이나 음모론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알 수 없는 위협 앞에서 초자연적 존재나 인과응보적 관점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인간 본연의 심리가 시대를 초월하여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옛사람들이 역신을 두려워했듯, 현대인 역시 미지의 바이러스와 사회적 혼란을 두려워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팬데믹 초기, 많이 불안하고 우왕좌왕할 때 어디선가 흘러나온 가짜뉴스에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백신을 맞으면 치매에 걸린다', 심지어 '폐가 망가진다'는 루머도 있었죠. 당시 공교롭게도 아는 지인 한 분이 안타깝게도 폐암으로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는데, 가족분 말씀이 '아무래도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폐가 망가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때는 그 말에 거의 확신을 가질 만큼 흔들렸죠. 하지만 후에 그것이 사실은 루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폐가 망가지는 주된 원인은 코로나 백신 후유증이 아니라, 바로 코로나19 감염 그 자체였다는 것을요. 실제로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심할 경우 폐렴이나 폐섬유화증과 같은 심각한 폐 손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백신의 역할은 오히려 이러한 폐 손상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상치도 못했던 팬데믹에 적응이 안 돼 힘들었던 상황에서는, 작은 가짜뉴스에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 '벽사'와 '소원', 간절함이 담긴 민속적 예방과 방역
현대 사회가 마스크,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 접종 등 과학적 방역 수칙에 집중한다면,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의 위협을 막기 위해 다양한 민속적인 예방과 벽사(辟邪) 의례가 동원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질병을 쫓고 복을 빌려는 간절한 소망이 담긴 집단적 행동 양식이었습니다. 첫째, 국가와 민간 모두에서 제사나 의례를 활발하게 행했습니다. 왕실에서는 역병이 돌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종묘사직에 고하는 의례를 통해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역병이 물러가기를 빌었습니다. 민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별신굿, 산제, 도당굿 등을 올리며 역귀를 물리치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이러한 굿판은 종교적 행위를 넘어, 역병으로 인한 공동체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심리적 방역 체계 역할을 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장승이나 솟대를 세워 잡귀와 역귀의 침범을 막거나, 재앙을 막아주는 서낭당을 정비하는 일도 흔했습니다. 둘째, 개인과 가정을 단위로 한 벽사 주술도 널리 행해졌습니다. 병마를 쫓는다고 믿는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집 문에 붙였고, 특정한 색깔(예: 붉은색)이나 식물(예: 복숭아나무 가지)이 역귀를 물리친다고 믿어 이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액운을 막는다는 '금줄'을 마을 입구에 치거나, 금기 사항을 정해놓고 이를 지킴으로써 질병을 피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현대의 개인위생 수칙처럼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지만, 미지의 질병 앞에서 최소한의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노력이자 심리적 방패막이였습니다. 셋째, 경험적인 자가 격리와 이동 제한도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두창 등 전염병이 창궐할 경우, 왕실에서도 왕이 보균 가능성이 있는 환자와의 접촉을 피하거나 조신들이 출입을 삼가는 등 고립 조치를 취했습니다. 마을 단위에서도 감염 환자를 분리하거나, 병이 돌 때는 타 지역으로의 이동을 자제하여 감염 확산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는 현대의 사회적 거리두기나 자가 격리와 유사하게, 정확한 감염 경로 이해는 부족했어도 경험적으로 접촉을 피하려는 중요한 대응책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민속적 예방 노력들은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한 대응이었으며, 역병의 공포 속에서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던 정신적 지지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민속적 대응은 비록 과학적 근거가 미약할지라도 불안에 떠는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했습니다. 저 또한 팬데믹 초기에 혹시 몰라 매일 비타민을 챙겨 먹고, 택배를 받을 때마다 소독제로 박스 전체를 닦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것이 크게 효과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뭔가라도 해야 안심이 된다'는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옛 선인들이 갑작스러운 역병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제사나 주술로 심리적 안정을 도모했듯이, 저 역시도 같은 심리가 작용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한 치 앞을 모르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이러한 일종의 천재지변 앞에서는 한없이 당황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3. '치유의 기록', 정부 주도와 민간 활용의 만남
현대에 팬데믹이 발생하면 전 세계가 협력하여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매진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유사하게 역병을 치유하고 예방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의학적 노력과 민간의 지혜가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문제에 대응하고 해결책을 찾아낸 역사적 증거들입니다. 첫째, 의서 편찬과 보급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역병에 대응했습니다. 조선 왕조는 질병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다양한 의학서 편찬에 힘썼습니다. 세종대에는 『향약집성방』(1433)과 『의방유취』(1455)가 편찬되었고, 특히 온역 치료법을 담은 『벽온방』도 전해집니다. 중종 때는 역병이 창궐하자 한글 풀이를 단 『간이벽온방언해』를 전국에 배포하여 의학 지식이 일반 백성에게까지 널리 전달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한글 의서 보급은 백성들이 스스로 질병에 대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하여 민속적인 치유 지식이 확장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둘째, 당대 명의들의 헌신과 민간요법의 활용이 두드러졌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1610)에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정약용은 홍역 치료 의서인 『마과회통』(1798)으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당시에는 두창, 당독역, 온역, 이질 등 다양한 전염병이 발생했는데, 전문 의서 처방 외에도 약초 달인 물이나 특정 음식 등 다양한 민간요법이 전승되며 질병 고통을 덜어주려 했습니다. 『벽역신방』(1613)에 기록된 성홍열의 증상과 치료법은 서양 의학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되며, 조선의 의학 수준이 결코 낮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셋째, 예방 접종 개념의 도입입니다. 19세기말 지석영 선생은 종두법(우두법)을 조선에 도입하여 치명적인 두창(천연두)을 예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근대적인 보건 정책의 시작이었으며, 백성들이 전염병에 대해 단순한 치유를 넘어 능동적인 예방 활동에 참여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민속적 대응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벌'이라 여겼던 전염병을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위기 대응 능력은 시대를 관통하는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을 시사합니다. 저는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 과학자들이 보여준 유례없는 '협력적 지식 공유'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국경과 경쟁을 넘어 연구 결과를 신속히 공유하고 백신을 개발해 낸 과정은, 단순히 과학적 성과를 넘어 인류가 집단 지성을 발휘했을 때 얼마나 경이로운 대응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팬데믹이라는 비일상적 위기가 각 개인에게 '일상의 소중함'과 '생존을 위한 능동적인 대처(예: 개인위생 강화)'를 깊이 각인시킨 점은, 마치 과거 역병이 인간에게 겸허함과 함께 생존을 위한 본질적 지혜를 깨우쳤던 것처럼, 시대를 초월한 인간 행동 양식의 연속성으로 보입니다. 이 경험은 미래의 어떤 위기에도 '고립된 전문가'가 아닌 '연결된 인류의 지혜'가 궁극적인 해결책임을 말해줍니다.
마치며
이 글을 통해 조선시대의 역병과 현대의 팬데믹이 수백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며 인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인간은 자연계의 일부분으로서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위협 속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여러 차례 목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존속하며, 심지어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은 바로 '생각하고 배우며, 합리적인 대응책을 찾아내는 지적 능력'에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과학적 한계 속에서도 의서를 편찬하고 민속적 지혜를 모으며 역병에 대처했던 사실은, '생각하는 인간'의 강력한 대응 능력을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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