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인물의 행동보다 그 행동을 스스로 설명하는 방식이 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잃어버린 주말》(1945)의 돈 버넘이 내게 그랬다. 돈은 자신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술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고, 돈을 잃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술을 마실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평소의 자신보다 더 자유롭고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술 자체보다 한 가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돈은 술을 마실 이유를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술을 마실 때마다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들은 각각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이유는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다시 술을 마시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잃어버린 주말》이 중독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를 때만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납득할 만한 이야기로 바꿀 수 있을 때 더 오래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다.
### 1. 돈에게는 술을 마시는 이유가 하나가 아니었다
돈 버넘은 술을 마시기 위해 단순히 “술이 좋으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는 작가로서의 좌절이 있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열등감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 술을 마시면 이런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더 자유롭고 능력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술은 돈에게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다. 어떤 순간에는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된다. 또 어떤 순간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 된다. 나는 여기에서 돈의 행동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가 매번 똑같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술을 마셔도 되는 새로운 이유를 찾아낸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돈이 “나는 술이 좋아서 마신다”고만 생각했다면 자신의 문제를 알아차리기도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술을 마실 때마다 그것을 다른 문제와 연결한다. 글을 쓰지 못해서 술이 필요하고, 마음이 힘들어서 술이 필요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술이 필요하다. 그렇게 보면 술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다. 술을 마시고, 잠시 편해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또 술을 찾는다. 나는 이 반복을 보면서 중독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것을 너무 많이 원하는 상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행동을 계속하기 위해 그때그때 다른 설명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그 일부처럼 보였다.
### 2. 타자기를 전당포에 맡기는 순간에도 돈은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이 자신의 타자기를 전당포에 맡기려 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타자기는 그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하고, 글을 쓰는 일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 그 물건을 술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한다. 겉으로 보면 아주 분명한 선택이다. 글을 쓰기 위한 물건을 포기하고 술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돈은 아마 자신이 작가로서의 미래까지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타자기를 맡기는 것이라고 스스로 설명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마음에 남았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한꺼번에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필요한 것을 위해 내일 필요한 것을 조금씩 내놓으면서도, 여전히 “나중에는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돈에게 타자기는 그런 물건처럼 보였다. 그가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은 단순히 술값을 마련하는 장면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과 실제 행동 사이의 차이가 벌어지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는 아직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술을 위해 내놓고 있다. 말로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행동은 조금씩 미래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 3. 그래서 나는 돈의 거짓말보다 ‘이유가 바뀌는 과정’을 보게 됐다
《잃어버린 주말》을 처음 보면 돈이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술을 구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기 위해 또 다른 설명을 한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서 거짓말 그 자체보다 그 전에 있는 과정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설명한다.** 자신이 왜 술을 마셔야 하는지 납득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의 거짓말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자기 안에서 이미 만들어진 설명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지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반드시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면 된다. 돈에게는 그 이유가 계속 생긴다. 그리고 이유가 바뀔 때마다 그는 잠시 자신의 행동을 정당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유가 아무리 달라져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다시 술을 찾게 된다. 나는 이 반복 때문에 《잃어버린 주말》이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시면 사람이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넘어선다고 느꼈다.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어떤 말로 설명하느냐가 행동 자체만큼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4.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왜 술을 마시는가’를 따라가 보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흔히 남는 질문은 “돈은 왜 술을 끊지 못했을까?”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질문으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돈은 이번에는 왜 술을 마셔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영화의 장면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술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단순히 술에 대한 욕망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위해 어떤 이유를 붙이는지를 볼 수 있다. 타자기를 맡기는 장면에서는 돈이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보다 그 말을 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돈의 중독은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자기 설명의 반복**으로 보인다. 나는 이것이 《잃어버린 주말》을 다시 볼 때 독자가 가져갈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술에 취한 돈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직전 돈이 자신에게 어떤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술과 거짓말, 타자기와 돈의 문제가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 마치며
《잃어버린 주말》은 알코올 중독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면서 오래 남은 것은 술에 취한 돈의 모습보다 그가 술을 마실 때마다 만들어내는 이유였다. 그 이유는 매번 조금씩 달랐다. 글을 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이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유가 달라져도 결과는 같았다. 다시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술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술병을 손에 들기 전에 그것을 들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현실을 한꺼번에 외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만 조금 미루고,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조금씩 현실과 멀어질 수도 있다. 돈 버넘도 그렇게 자신의 행동에 계속 이유를 붙인다. 그래서 《잃어버린 주말》을 보고 난 뒤 내게 남은 질문은 “왜 돈은 술을 끊지 못했을까?”가 아니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을 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 질문을 가지고 다시 영화를 보면 돈의 술병보다 그의 말과 행동 사이의 차이가 먼저 보일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가 오래된 알코올 중독 영화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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