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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1944), 우리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infodon44 2026. 2. 7.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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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실루엣
어두운 공간에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실루엣이 보이는 이미지

 

 

오래된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이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로라》(1944)는 조금 이상하다. 영화가 시작한 뒤 한참 동안 로라를 직접 볼 수 없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된다. 1944년 오토 프레밍거가 만든 《로라》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맥퍼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중심에는 죽은 로라가 점점 더 크게 자리 잡는다. 초상화가 나오고, 그녀의 집에 남겨진 물건들이 등장하고,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로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은 로라를 만나지 못했는데도 이미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영화의 재미가 단순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반전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로라가 나타나기 전에 관객이 먼저 그녀를 기다리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 1. 로라는 등장하기 전에 이미 영화의 중심에 있었다

보통 영화에서 주인공은 먼저 등장하고 관객은 그 사람을 보면서 성격이나 사연을 알아간다. 그런데 《로라》는 순서를 뒤집어 놓았다. 맥퍼슨이 로라의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 그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살아 있는 로라가 아니라 그녀의 초상화다. 방 안에는 로라가 사용했던 물건들이 있고,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관객은 로라를 직접 본 적이 없는데도 그녀가 어떤 여자였는지 조금씩 알아간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생긴다.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이라면 보통 죽은 사람은 사건의 출발점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로라》에서는 오히려 죽었다고 알려진 로라의 존재가 점점 커진다. 맥퍼슨이 그녀의 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객도 자연스럽게 로라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초상화가 단순한 소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관객에게 “이 사람이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첫 번째 장치처럼 느껴졌다.

 

### 2. 영화는 로라를 보여주는 대신 로라를 기다리게 한다

《로라》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맥퍼슨이 로라를 직접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알지 못하는 상태가 길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초상화를 바라보고 로라의 물건들을 살펴본다. 월도 리드밴들리와 셸비 카펜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짐작한다. 여기에 데이비드 랙신의 음악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로라는 화면에 없어도 계속 영화 안에 존재한다. 이때 관객은 맥퍼슨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다. 우리 역시 로라를 직접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점이 《로라》의 독특한 재미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로라를 충분히 설명해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로라의 부재를 오래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관객의 궁금증을 키운다.** 그래서 로라는 화면에 나오지 않는 동안에도 주인공 역할을 한다. 실제로 등장한 시간보다 등장하지 않은 시간이 그녀를 더 궁금한 인물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 3. 로라가 살아 돌아왔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다가 죽은 줄 알았던 로라가 집으로 돌아온다. 비에 젖은 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은 단순한 반전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장면을 앞의 과정과 이어서 보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동안 관객이 알고 있던 로라는 초상화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의 물건과 음악을 통해 만들어진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실제 로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짜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다. 이 순간 영화는 관객에게 처음으로 로라를 직접 확인할 기회를 준다. 그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거나 우리가 그 단서를 통해 상상한 것이었다. 그래서 로라가 살아 돌아오는 장면에서 내가 흥미롭게 느낀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보다 **이제야 주인공을 실제로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로라가 없는 상태에서 로라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관객이 충분히 그녀를 궁금해하게 만든 뒤에야 실제 로라를 보여준다. 이 순서 때문에 로라의 등장은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4. 그래서 나는 《로라》를 ‘로라가 등장하는 영화’보다 ‘로라를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로 보게 됐다

예전에는 이 영화를 보면 초상화 속 로라와 실제 로라의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보다 앞에 있는 장치가 있었다. **영화는 관객에게 로라를 만나게 하기 전에 먼저 로라를 기다리게 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영화가 로라를 한꺼번에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상화 하나를 보여주고,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려주고, 그녀의 집과 물건을 보여주고, 음악으로 그녀의 존재를 계속 이어간다. 그렇게 관객이 로라라는 인물을 궁금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실제 로라가 등장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나는 로라가 언제 처음 나오는지만 보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언제부터 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보게 될 것 같다. 《로라》의 미스터리는 범인이 누구인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아직 만나지도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는지도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 마치며

《로라》는 죽은 여자를 둘러싼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자리 잡는다. 초상화가 먼저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이야기하고, 그녀의 집과 물건이 등장한다. 그러는 동안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로라를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로라가 살아 돌아왔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그동안 이야기로만 존재했던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게 남은 질문은 “로라는 어떤 여자였을까?”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이었다. **“나는 로라를 만나기도 전에 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로라》는 그 질문을 관객에게 직접 던지지 않는다. 대신 영화의 순서를 통해 관객이 스스로 그 질문에 도달하게 만든다.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영화를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보다 더 흥미롭게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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