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텅 빈 캔버스 같은 공허함에서 시작되는 인연의 필연성 1944년 오토 프레밍거가 연출한 **<로라(Laura)>**는 필름 누아르 역사상 가장 우아하면서도 비정한 심리 수사극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맥퍼슨 형사가 대면하는 로라의 초상화는, 관객에게도 선입견 없는 '텅 빈 캔버스'와 같은 공허함을 선사한다. 사실 우리 삶에서 긴밀한 서사를 쓰게 될 인연을 처음 만나는 순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음엔 무색무취의 시작이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인연의 필연성을 깨닫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맥퍼슨은 그 공허한 신기루에 즉각적으로 매혹당하며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이 글에서는 <로라>의 탐미주의적 연출 기법과 데이비드 랙신의 음악적 구조, 그리고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영화학적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다.
1. 탐미주의적 연출이 직조해낸 공간과 오브제의 물신주의적(Fetishism) 시각화 기법
탐미주의적 연출은 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물에서 '시각적 심리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핵심 기법이다. 촬영 감독 조셉 라셸은 흑백 필름 특유의 명암 대비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활용하여 인물의 뒤틀린 내면을 물리적 공간에 투영했다. 특히 로라의 아파트는 그녀의 부재를 시각적으로 채우는 '물신주의적 공간'으로 기능하며, 카메라는 인물의 대사보다 앤틱 시계나 거울, 향수병 같은 사물을 집요하게 훑으며 로라라는 이미지를 박제한다. 프레밍거 감독은 인물을 거울에 비추거나 좁은 문틀 사이에 가두는 프레이밍을 통해 그들이 욕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음을 시각화했다. 이러한 연출적 장치들은 맥퍼슨 형사가 죽은 여인의 초상화에 매료되는 과정을 정당화하며, 처음 마주했던 그 공허함이 영화적 미학을 통해 어떻게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신기루로 변모하는지를 증명해 보인다.
2. 음악 분석을 통해 파헤친 데이비드 랙신의 'Laura'가 지닌 청각적 지배력과 모노 테마의 변주
영화 음악 분석에 있어 작곡가 데이비드 랙신이 탄생시킨 주제곡 'Laura'는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모노 테마(Mono-theme)의 사례다. 랙신은 아내와의 결별 위기에서 느낀 상실감을 이 선율에 투영했는데, 이는 부재하는 주인공을 청각적으로 실재하게 만드는 주술적 힘을 발휘한다. 이 음악을 들으면 난 아직도 마음이 아릿하다. 이 애잔한 선율은 내 오래전 기억, 즉 첫눈에 반했던 이상형 앞에서 내 실체가 탄로 날까 두려워 숨어버렸던 그 마법 같은 찰나의 기억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 속 맥퍼슨이 초상화 아래에서 잠들 때 흐르는 이 곡은 형사의 집착에 정서적 개연성을 부여하며, 비정한 수사극에 감미로운 로맨스라는 외피를 입힌다. 결국 랙신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을 넘어, 우리가 쫓는 것이 실체인지 아니면 박제된 기억의 파편인지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3. 영화 로라(1944)의 초상화가 비추는 나르시시즘과 환상이 실재를 만날 때의 비극적 붕괴
**영화 로라(1944)**의 핵심 메타포인 초상화는 실재하는 인간보다 더 완벽하게 정지된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영화 속 남성들의 뒤틀린 소유욕을 폭로하는 거울이 된다. 리포는 그녀를 자신의 지적 창조물로 가공하려 했고 맥퍼슨은 고독의 구원자로 소유하려 했으나, 그들이 진정 사랑한 것은 살아있는 인격체가 아니라 캔버스에 투영된 자신들의 나르시시즘이었다. 영화 중반, 죽었다고 믿었던 로라가 실물로 등장했을 때 관객이 느끼는 이질감은 '환상이 실재를 만날 때의 필연적 붕괴'를 의미한다.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기에, 차라리 그녀는 유령으로 남았어야 했다. 실제의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환상 뒤로 숨었던 나의 고립된 기억처럼, 영화 속 로라 역시 상상 속의 신기루로 머물렀을 때 가장 완전한 존재가 된다. 비가 올 것 같은 눅눅한 공기가 방 안을 채울 때면, 나는 습관적으로 <로라>를 꺼내 든다. 2026년의 선명한 화질로 마주하는 초상화 속 여인의 눈동자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처음엔 그저 텅 빈 캔버스 같았던 그 얼굴이 이제는 내가 잃어버린 그 남자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내가 그 앞에 내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것처럼, 로라도 차라리 유령으로 남았어야 했다. 맥퍼슨이 초상화 아래에서 고독하게 잔을 기울일 때, 나 역시 차가운 위스키 잔을 매만지며 내가 사랑했던 것이 그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멋대로 그려 넣은 환영이었는지 자문한다. 그 정체를 알아서 뭐 하겠나. 이미 다 지나가 버린 일인 것을. 나는 여전히 그 신기루 같은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마치며: 당신의 눈동자에 투영된 신기루에 건배를
<로라>는 개봉 후 8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어떻게 욕망할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답을 제시한다. 오토 프레밍거의 냉철한 연출과 데이비드 랙신의 기적 같은 선율은 이 영화를 단순한 미스터리 그 이상의 신화로 만들었다. 비정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품격과 집착을 잊지 않았던 릭 블레인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로라'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파리의 어느 오후일 수도 있고,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숨겨두었던 나의 진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맥퍼슨이 가르쳐주었듯, 그 아픈 환영들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당신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오늘 밤의 고독을 건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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