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사블랑카》(1942)를 떠올리면 릭과 일사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를 조금 다르게 보면 계속 눈에 들어오는 것은 ‘떠나는 사람들’이다.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은 카사블랑카에 정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통행증을 구하고, 사람을 찾아가고, 떠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그런데 릭은 그 도시에서 떠나려는 사람들을 매일 바라보면서도 자신은 그곳에 남아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세상과 거리를 두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카페에는 세상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온다는 점이다. 나는 이 모순이 《카사블랑카》를 단순한 사랑 이야기와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카사블랑카에 온 사람들은 왜 계속 떠날 방법을 찾는가
영화 속 카사블랑카는 평범한 생활을 시작하는 도시라기보다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장소에 가깝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다음 장소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영화에서 통행증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선택지가 달라진다. 그래서 여러 인물들이 통행증을 구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릭의 카페도 사건의 중심에 들어온다. 이렇게 보면 릭의 카페는 그냥 술을 마시는 장소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일종의 중간 지대다. 누군가는 돈을 벌려고 하고, 누군가는 정보를 찾고, 누군가는 떠날 방법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을 매일 보고 있으면서 릭은 자신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고 한다. 그는 세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정말 세상과 관계를 끊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정이 자신의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두고 있을까. 나는 여기서 릭의 ‘중립’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 그는 세상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직접 뛰어들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인다.
### 릭은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은 그의 카페로 들어왔다
릭의 태도를 단순히 냉정함으로만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상처를 입은 뒤 모든 일에 계속 관여하기보다 한동안 거리를 두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모든 일에 관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도 없고, 세상의 모든 일에 마음을 쏟다 보면 오히려 자신이 지칠 수도 있다. 그래서 릭이 한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느냐**이다. 그의 카페에는 계속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일사와 빅터 라즐로가 나타나면서 릭이 외면하고 있던 과거와 전쟁의 현실도 다시 그의 앞에 놓인다. 특히 빅터는 단순히 릭의 옛 연애와 관련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나치의 추적을 피해 떠나야 하는 사람이며, 일사 역시 그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다. 결국 릭이 피하고 있던 세계가 다시 그의 카페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그래서 나는 릭의 변화를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보는 것보다, **한동안 닫아두었던 자신의 한 부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에 움직인 것은 릭의 사랑만이 아니었다
영화의 마지막 공항 장면은 릭이 일사를 떠나보내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흔히 이 장면을 사랑을 포기한 남자의 선택으로 설명한다. 물론 그것도 맞는 해석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반복되었던 ‘떠남’이라는 흐름 속에서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일사와 빅터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 릭은 남는다. 그런데 릭 역시 마지막에는 더 이상 처음의 릭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일사를 붙잡는 대신 그녀가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공항을 떠난 뒤 르노와 함께 앞으로 걸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릭이 카사블랑카를 떠났느냐가 아니다. **오랫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던 사람이 다시 어떤 일에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단순히 ‘사랑을 포기한 순간’이라고만 보고 싶지 않다. 릭에게는 오히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에 가깝다.
### 사람은 완전히 변하기보다, 닫아두었던 모습을 다시 꺼내기도 한다
나는 릭이 마지막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처를 입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 안에는 여러 모습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적극적으로 세상에 관여하는 모습도 있고, 모든 것에서 한발 물러나고 싶은 모습도 있다. 어느 시기의 나는 그중 하나를 더 강하게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다. 릭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는 한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선택했다. 하지만 일사와 빅터를 다시 만나면서 자신 안에 남아 있던 다른 모습을 꺼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카사블랑카》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것은 릭이 사랑을 포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모두가 떠나려고 하는 도시에서 릭은 한동안 남아 있었고, 정작 마지막에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지를 다시 선택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언제나 세상 한가운데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물러나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움직여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에서 릭이 보여준 것도 어쩌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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