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민속학

고려시대의 민간신앙

by 하이델베르그 2024. 5. 3.

고려시대 민속신앙 관련 사진

 

서문

 

고려시대의 민간 신앙과 신화는 그 시대의 종교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려는 유교가 국교로 제정되었지만, 불교와 민간신앙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민간 신앙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사람들의 신앙심과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1. 생활로 파고든 민간신앙

고려시대는 민간신앙이 개인의 생활로까지 밀접하게 파고들었다. 병이 생기면 약물치료보다는 귀신에 의존했으며, 나아가 크게는 국가의 행사에 이르기까지 무격(巫覡)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기우제 · 기은제(祈恩祭)는 물론 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일에서부터 산신과 서낭에게 비는 의식에까지 무격이 침투하였다. 이러다 보니 때로는 무속에 의한 피해가 크다고 판단하여 이를 금하기도 하였다.

 

2. 불교와 혼합된 민간신앙

민간 신앙이 불교와 혼합된 형태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불교의식 중 연등회와 팔관회는 불교의식과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깊이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원래 불교행사였던 연등은 민간에 널리 알려짐에 따라 이전의 천신제와 혼합되어 토착화되었다. 연등회는 정월 15일 또는 2월에 행하여졌는데 이는 고려 초기부터 왕궁은 물론 향읍(鄕邑)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팔관회는 10월 망일(望日)에 성대히 치러지는데 이는 나라 동쪽의 혈(穴)에 있는 세신(歲神)을 위한 제사였다.

 

3. 산신사상의 전승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의 산신사상이 그대로 전승되어 산신을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 고려시대 때는 덕적산(德積山) · 백악산 · 송악산 · 목멱산(木覓山)의 4대 산이 있었다. 이들 산신에게 봄 ·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이때는 무녀가 의식을 행하였다. 특히, 송악산신은 거란족의 침공 당시 소나무로 변신해 수만 명이 떠들어 대는 소리를 내어 사전에 적을 물리쳤다는 고사도 전해진다.

 

4. 신령시 한 동물과 식물

고려시대 민간에서는 사슴 · 거북 · 까치 등의 동물을 신령하게 생각했다. 구해준 사슴이 보은을 해 자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서 재상을 지냈다는 설화나 잡은 거북을 놓아주어 그 보은을 받은 서신일(徐神逸)의 일화 등이 있다. 거미는 흉조로 보고 까치집은 길조로 해석하기도 했다. 단 거미도 아침 밥상에 내려오는 것은 길조이고, 저녁에 내려오는 것은 근심거리가 생길 흉조로 생각했는데 이는 현재의 민간에서도 그대로 믿어지고 있는 속신이다. 또한 거목 · 쑥 · 복숭아나무 등은 신성시 여긴 식물이었다. 마을에 있는 거목은 마을을 지켜주고 소원성취를 이뤄주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거목을 신수(神樹)로 받들었고, 그 신수를 함부로 베면 신벌의 벌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옷날 한낮에 뜯은 쑥잎을 병이 났을 때 쓰면 모든 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속신도 있었다. 복숭아나무의 가지나 잎은 귀신을 쫓는다는 속신도 고려시대에 이미 성행했다. 또한,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쫒기 위해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것과 세말에 잡귀를 물리치고 건강한 신년을 맞이하기 위한 구나의식(驅儺儀式)도 고려 때부터 이미 이루어졌다.

 

5. 고려왕실의 민간신앙

용산제는 고려왕실과 관련된 민간신앙이다. 해룡신의 후손 왕씨(王氏)들은 겨드랑이 밑에 용의 비늘이 있다고 전해지듯 용신에 대한 추앙이 컸다. 신상이 봉안돼 있는 급수문(急水門) 위의 합굴룡사(蛤窟龍祠)에는 주사(舟師)들이 작은 배로 영신(迎神)하여 제사를 지냈다. 또, 성종은 사직단을 처음으로 건립하였는데 이는 991년 윤 2월 길지를 택하여 지어졌다. 토지신과 곡식의 신을 사직신으로 모셨으며, 봄에는 풍년을 기원하고 가을에는 감사를 올리는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문종 때는 신성진(新城鎭)에 최초의 서낭당으로 보여지는 성황사(城隍祠)를 두었다. 이곳에서 전주성황에게 제사를 올렸으며 계속된 가뭄에 계양성황께 기우제를 올렸다는 등의 기록도 많다. 고려시대와 장승 고려시대에는 장승 또한 많이 세웠다. 국장생(國長生)이라고 하여 국명에 의해서 세운 바가 있다. 고려의 장승 또한 마을과 사찰의 입구에 세워졌고 액과 잡귀를 막는 수호신, 경계의 표시 등으로 이용되었으며, 서낭 · 소도 등과 함께 마을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1.  장승

장승은 보통 남녀로 한쌍이 마주보고 서 있는 형태이다. 나무기둥이나 돌기둥의 윗부분에 사람 또는 신장(神將)의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하고, 아래쪽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등의 한자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인간과는 다른 신적 대상물이다.

 

2.  서낭

서낭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동신(洞神)을 말한다. 선왕, 성황(城隍)이라고도 한다. 형태적으로는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신목(神木) 즉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과 함께 원추형으로 쌓아 올려진 돌무더기가 있는 형태이다. 서낭은 마을수호신, 풍요신, 조상숭배신앙을 함께 지닌 신앙의 형태이다.

 

3.  소도

삼한시대 때 천신에게 제사 지내는 장소를 ‘소도’라 하는데, 소도는 신성(神聖) 지역이므로 국법도 영향력을 미칠 수 없어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오더라도 잡아갈 수 없었다 한다. 이는 그리스·로마의 아실리(Asillie) 또는 아실럼(Asylum)과 공통점이 있다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주술적인 형태로 영고(鈴鼓)를 단 큰 나무에 제사를 올렸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솟대가 그것이다.

 

마치며

고려시대는 민간신앙이 실제 생활 속으로 깊게  침투하였으며 왕실에서도 민간신앙을 받아들인 시기로 이를 통해 고려시대의 문화와 종교적 풍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현대 한국의 문화와 신앙에서도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민속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속의 사고체계  (0) 2024.05.03
전통놀이 – 남자들의 놀이와 마을 전체의 놀이  (0) 2024.05.03
고대의 민간신앙  (0) 2024.05.03
고대의 무속  (0) 2024.05.03
설화  (0) 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