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장승, 마을의 수호신: 인간형 목주에 담긴 벽사(辟邪)와 풍자의 의미

infodon44 2025. 8. 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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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주 바람과 돌의 섬, 혹은 육지 마을 어귀에 듬직하게 서 있는 그 나무 혹은 돌기둥. 거칠고 익살스러운 얼굴에 한자는 가득하지만, 정작 그 모습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이 존재, 바로 장승(長栍)입니다. 단순한 이정표를 넘어, 밤에는 마을의 불청객을 경계하고 낮에는 지친 길손에게 넉살 좋은 미소를 건네던 장승. 오늘은 그들의 벽사(辟邪)와 풍자 속에 담긴, 우리네 삶의 지혜와 민초들의 유쾌한 저항 정신을 엿보고자 합니다.

 

1. 이계(異界)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 장승의 벽사(辟邪) 정신

장승은 마을의 경계에 홀로 우뚝 서서 안과 밖의 세계를 구분하고, 보이지 않는 악귀나 액운이 마을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최전방의 수호신이었습니다. 그들의 위압적인 외모와 강렬한 이름에는 부정(不淨)한 기운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화를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장승은 단순히 한 장소에만 세워진 것이 아니라, 마을의 사방을 지키는 방위신(方位神)으로서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사방신(四方神)의 이름이 부여된 장승들은 마을의 동서남북을 담당하며 각기 다른 형태와 색채로써 액운의 침범을 막았습니다. 예컨대, 동방청제장군(東方靑帝將軍), 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 북방흑제장군(北方黑帝將軍), 남방적제장군(南方赤帝將軍) 등의 이름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방위신장(方位神將)의 장승은 특정 방향에서 들어올 수 있다고 믿었던 재앙을 미리 차단하려는 고도의 주술적 장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의 동쪽에 유난히 역병이 자주 돌았다면, 그 동쪽에 세운 장승은 '동방청제장군'이라는 이름 외에 '두창장승(痘瘡長栍)'과 같은 명문을 새겨 역병을 물리치는 특수 기능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전염병에 취약했던 농경 사회에서, 의학적 방법 외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여 공동체의 안위를 지켜내려 했던 선조들의 절박한 지혜가 담긴 것입니다. 나아가, 장승은 마을의 불균형한 지형을 보완하고, 특정 재앙을 막기 위한 '비보(裨補) 장승'의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을의 서쪽이 허하다고 여겨지면 그곳에 '진서장군(鎭西將軍)'이나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과 같은 장승을 세워 부족한 기운을 채우려 했습니다. 이는 풍수지리 사상과 민간 신앙이 결합된 형태로,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기운을 장승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조절하여 마을의 평화와 풍요를 유지하려 했던 지혜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승이 마을의 우물을 지키는 '샘막이 장승'으로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물을 오염시키는 불순한 영혼이나 질병이 샘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치 눈을 부릅뜬 거인이 밤낮으로 우물가를 지키는 듯한 모습은, 물이라는 생명수를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의 발현이었습니다.

 

2. 통쾌한 해학과 뒤틀린 현실: 장승의 풍자 정신

장승의 얼굴은 때로 섬뜩할 만큼 기괴하지만, 때로는 파안대소할 정도로 익살스럽습니다. 이 독특한 얼굴 표현과 몸에 새겨진 글자 속에는,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감히 드러낼 수 없었던 민초들의 불만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가면 뒤에 숨어 세상을 향해 넉살 좋게 한 방 먹이는 민중 연희와도 닮아있습니다. 장승의 외모는 매우 다양하지만, 인면형(人面形) 중 남장승은 눈을 부릅뜨고 덧니나 송곳니를 드러내며, 여장승은 연지와 곤지를 찍은 익살스러운 모습이 많습니다. 특히 괴상한 표정의 귀면괴수형(鬼面怪獸形)은 험상궂은 인상 속에 어딘가 비틀린 웃음을 담고 있어 풍자의 기운을 물씬 풍깁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악귀를 물리치기 위함이 아니라, 당시 백성들을 억압하던 탐관오리나 무능한 양반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비틀어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경상북도 안동의 어느 마을에는 ‘욕쟁이 장승’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장승의 얼굴은 주변의 탐욕스러운 관리를 닮았고, 밤마다 인근의 지나가는 나그네나 백성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서워했지만, 나중에는 그 욕설 속에 담긴 관리의 부패상이나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알아차리고 오히려 통쾌해했다고 합니다. 이는 민중이 공식적인 저항 수단이 없던 시절, 자신들의 억울함과 불만을 '탈(脫)'을 쓴 장승의 입을 빌려 해학적으로 토해내며 간접적인 저항을 했던 소박하지만 통렬한 민속적 풍자였습니다. 또한, 장승에 새겨진 명문(銘文) 역시 단순한 이름을 넘어 풍자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처럼 위엄 있는 이름이 일반적이지만, 일부 장승에는 '음양 장승', '애(愛) 장승' 같은 파격적인 이름이나, 심지어 노골적인 성적 상징을 지닌 '남근형(男根形) 장승'도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장승은 단순한 수호신을 넘어, 번식과 풍요를 기원하는 고대의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유교적 권위와 억압 속에서 억눌렸던 민초들의 본능적인 욕구와 삶의 활력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남 영광의 불갑사 입구에는 남녀 한 쌍의 석장승이 서 있는데, 이들의 표정이 매우 해학적이며, 세월이 흘러 마모된 모습은 오히려 더욱 자유분방하고 원시적인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엄숙해야 할 종교적 공간의 입구에서조차 민초들의 꾸밈없는 삶의 정서와 유쾌한 생명력이 가감 없이 표출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민속적 유산입니다.

 

3. 삶과 죽음, 그리고 통과의례의 경계: 장승의 공간적 의미

장승은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 삶과 죽음, 익숙함과 미지함, 그리고 인간 세상과 초월적 세계의 통로를 상징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표지판이 아니라, 어떤 세계로 들어서기 위한 중요한 통과의례적 존재였습니다. 장승은 주로 마을의 입구나, 산을 넘는 고갯마루, 그리고 하천을 건너는 다리 어귀에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장소들은 모두 '경계'의 의미를 지닙니다. 마을의 안과 밖, 이승과 저승, 혹은 익숙한 길과 낯선 여정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러한 경계에 장승을 세움으로써, 사람들은 미지의 공간으로 나아갈 때 장승의 보호를 받기를 염원했으며, 동시에 그 장승을 통해 비로소 '세상이 달라지는' 지점을 인식했습니다. 특히, 망자와 관련된 상여가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오를 때, 고개 마루의 장승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제를 지내거나 넋을 위로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장승이 단순히 외부의 악귀를 막는 것을 넘어, 죽은 자의 영혼이 헤매지 않고 온전히 다음 세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영혼 인도자'이자 '관문'의 역할까지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즉, 장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흐릿하게 연결하며, 망자가 이승의 미련을 버리고 평안히 갈 수 있도록 배웅하는 민초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철학적 이해를 담고 있었습니다.

 

마치며

장승은 투박한 모습 속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벽사(辟邪)의 염원과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통쾌한 풍자를 동시에 담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민속문화 유산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서 있는 돌기둥이나 목상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던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강인한 정신이 고스란히 응축된, 살아있는 상징물입니다. 장승의 재발견은, 변화무쌍한 시대 속에서도 변치 않는 인간 본연의 소망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지를 되새기는 소중한 민속학적 탐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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