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

솟대, 하늘을 향한 염원: 기원과 예술이 만난 조형물의 상징성

infodon44 2025. 8. 1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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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고요한 논밭 옆, 혹은 마을 어귀에 홀로 우뚝 선 나무 장대. 그 끝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정겨운 조형물, 바로 솟대입니다. 솟대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과 깊은 우주관,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살아있는 상징입니다. 오늘은 그 솟대의 숨겨진 의미와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탐험하며, 고결한 기원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겨보고자 합니다.

 

1. 솟대, 하늘과 땅을 잇는 교감의 통로: 우주적 염원의 상징성

솟대는 땅과 하늘을 잇는 매개체로 여겨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고, 하늘의 축복을 땅으로 불러오는 통로 역할을 했죠. 특히 솟대 위에 앉은 새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영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솟대 꼭대기에 올려진 새는 대부분 오리나 기러기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새들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민속학적으로 오리는 물과 땅, 그리고 하늘을 모두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는 곧 현세와 내세, 인간과 신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믿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오리 솟대는 마을의 중요한 농경 의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거행되던 기우제에서 솟대는 중요한 제의적 장치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제주도 같은 지역에서는 솟대 위에 물과 관련된 새(오리, 왜가리 등)를 올리고, 솟대 주변에 물을 뿌리거나 맑은 샘물을 떠놓고 제를 지내, 하늘에서 비를 내려달라는 간절한 염원을 기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솟대 위의 새는 하늘의 용신(龍神)에게 마을의 고통을 전달하고 비를 청하는 전령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는 솟대가 단순한 지지물을 넘어, 하늘의 신과 직접 대화하려는 조상들의 간절한 믿음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응축된 신성한 표지였음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한 마을에 솟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장대가 함께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각 장대 위에 앉은 새의 모양이나 방향, 그리고 장대의 높낮이가 미묘하게 다르게 표현된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마을 공동체의 다양한 염원이 응축되어 표출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솟대에는 마을의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곡식을 물고 있는 듯한 새를, 다른 솟대에는 전염병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을 지켜달라는 비상을 묘사한 새를 올리는 등 각 장대마다 마을 사람들의 다면적인 소원을 담았습니다. 이러한 솟대 군(群)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사건과 염원들이 층층이 쌓여가는 상징적 기록물이 되었습니다. 솟대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기도문을 읊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마을 전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공동체적 노력과 염원이 응축된 구체적인 발현이었습니다.

 

2. 솟대, 마을의 표지이자 공동체 서사: 경계와 연대의 구현

솟대는 마을의 입구, 혹은 논밭 한가운데에 세워져 그 마을의 영역을 표시하는 표지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경계를 넘어, 외부의 악귀나 재앙을 막고 마을의 평화와 결속을 다지는 공동체 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솟대는 마을 공동체가 당면한 중요한 사건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역할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마을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때 솟대를 세워 그 마을의 자랑과 염원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거 급제 솟대, 즉 '화주(花柱)'입니다. 이는 과거에 급제한 인물을 배출한 가문이나 마을에서 특별히 세운 솟대를 의미합니다 . 이 화주는 단순히 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우리 마을에서 인재가 나왔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선포하는 공동체의 자부심과 명예의 상징이었습니다. 화주가 세워지면 마을 전체가 잔치를 벌이고, 주변 마을에서도 이 솟대를 보러 오기도 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성취가 마을 전체의 경사로 승화되는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발현된 형태이며, 솟대가 개인과 공동체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화주의 새는 종종 학처럼 고고한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이는 학문적 성취와 입신양명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염원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솟대는 마을의 지형적 결함을 보완하고 액운을 막기 위한 풍수지리적 비보(裨補)의 기능도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을 어귀나 특정한 방위에 솟대를 세워 바람이나 물살의 나쁜 기운을 누르고, 마을 전체의 기운을 조화롭게 이끌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솟대는 단순한 민간 신앙의 대상을 넘어,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집단적 염원이 형상화된 예술적 실천이었습니다. 특히 마을마다 솟대 위의 새 조각이 다른 특징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지역별 특성과 문화적 정체성이 반영된 것입니다. 어촌 마을의 솟대는 물고기를 물고 있는 새의 형상을 하거나, 물결 문양이 새겨진 장대에 바다새를 올려 풍어(豊魚)를 기원하는 등 지역의 주된 생업과 연결된 형태를 보였습니다. 반면 내륙의 농촌 마을 솟대에서는 주로 볍씨를 닮은 곡식 알갱이를 새가 물고 있거나, 우뚝 솟아오른 짚단을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솟대는 각 마을의 삶의 방식과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난 독특한 미의식을 보여주는 소중한 민속 유산입니다.

 

3. 솟대, 삶의 지표를 세우다: 시간과 전환의 상징, 그리고 움직이는 예술

솟대는 단순히 고정된 조형물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계절의 흐름, 공동체의 중요한 전환점을 알리는 살아있는 지표였으며, 때로는 민중 예술의 활기 넘치는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솟대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역동적인 존재였습니다.

 

솟대는 세시풍속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특정 시기에 그 의미가 극대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정월대보름과 같은 명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낡은 솟대를 내리고 새로운 솟대를 세우는 의례를 거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교체가 아니라, 묵은 해의 액운을 물리치고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통과의례였습니다. 솟대가 세워지는 과정은 마을 사람들의 공동 작업이었고, 이 과정 자체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공동체적 축제였습니다. 솟대를 세운 후 그 주변에서 농악을 치거나 춤을 추며 마을의 결속을 다지고 풍년을 기원하는 '솟대굿'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솟대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마을 사람들의 삶의 리듬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문화적 장치였음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마을의 염원과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시간의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솟대타기'와 같은 민속 연희는 솟대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움직이는 예술'의 한 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솟대타기란, 마을의 장승굿이나 별신굿 등 큰 굿판에서 줄타기나 곡예를 펼치는 광대가 솟대를 기둥 삼아 줄을 매달아 공연을 펼치던 전통 예능을 말합니다 . 이때 솟대는 신성한 상징인 동시에, 광대들이 하늘 높이 몸을 날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흥을 돋우는 무대 장치가 되었습니다. 광대는 솟대 위에서 재담을 늘어놓고, 세상사를 풍자하며, 때로는 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신성한' 솟대와 '천한' 광대의 만남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삶의 엄숙함과 유희가 한데 어우러지는 민초들의 다면적인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솟대는 하늘의 뜻을 묻는 신성한 지표인 동시에, 민중의 애환과 해학을 담아내는 자유로운 예술의 공간으로 활용된 것입니다.

 

마치며

솟대는 하늘을 향한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과 깊은 우주관, 마을 공동체의 삶과 예술적 감각이 조화롭게 응축된 고귀한 조형물입니다. 땅과 하늘을 잇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때로는 역동적인 민속 연희의 무대가 되었던 솟대는, 고정된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민속 문화의 표상입니다. 솟대의 재발견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잊고 지냈던 삶의 본질적인 소망과 자연, 그리고 공동체와의 조화로운 공존 방식을 다시금 되새기는 소중한 민속학적 탐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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