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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1969) — 범인을 알아보는 순간,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infodon44 2026. 10. 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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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흑백 신문으로 살펴보는 영화 제트의 정치적 사건과 수사 과정
오래된 신문에 담긴 기록을 통해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사진 속 얼굴을 알아봤다고 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다른 인물과 어떤 관계인지까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제트》(Z, 1969)는 이 간격을 수사 과정의 긴장으로 활용한다. 사진 한 장이 공격자를 가리키고, 한 인물의 말이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사건의 배후를 밝히려면 그 단서들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 영화는 1963년 그리스의 정치인 그레고리오스 람브라키스 암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인이 공개 집회 뒤 공격을 당해 사망하고, 당국은 사건을 교통사고로 처리하려 한다. 그러나 부검 결과와 목격자의 증언은 공식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다. 수사를 맡은 판사와 사건을 취재하는 사진기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 사진에 찍힌 얼굴은 누구의 기억과 만나는가

사진기자가 조직원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진을 보는 사람이다. 사진 속 얼굴만으로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공격을 당한 사람이 사진을 보고 자신을 때린 인물을 알아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카메라가 남긴 기록과 피해자의 기억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피루는 사진을 통해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알아본다. 이후 또 다른 피해자인 조르주도 사진 속에서 자신을 공격한 무화과 장수를 식별한다. 두 사람의 확인은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 별개의 폭행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이 차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기자가 확보한 자료는 하나의 범행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인물의 관계를 추적할 실마리가 된다. 사진이 증거로 쓰이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진 속에 누군가가 등장한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피해자의 기억과 사진이 일치하더라도, 그 인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추가적인 조사로 확인해야 한다. 영화는 사진 한 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처리하지 않는다. 인물을 알아보는 순간은 수사의 끝이 아니라 다음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장면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는 사건을 직접 해결하는 도구라기보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록 장치에 가깝다. 사진이 없었다면 피해자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그 사람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까지 설명할 수 없다. 사진의 역할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나는 셈이다.

 

## 신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내용을 아는 사람

무화과 장수와 판사의 대화는 사진을 확인하는 장면과 다른 방식으로 긴장을 만든다. 조르주가 자신을 공격한 사람으로 무화과 장수를 알아본 뒤, 무화과 장수는 병원에 찾아온다. 그는 자신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는 취지로 말하지만, 판사는 신문이 아직 도착할 수 없었던 사정을 지적한다. 판사가 주목하는 것은 무화과 장수의 표정이 아니다. 그가 실제로 알 수 있었던 정보와 그가 알고 있다고 말한 내용 사이의 차이다. 기사를 읽을 수 없었다면 어떻게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까? 이 질문은 그가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라는 설명을 흔든다. 결국 무화과 장수는 조르주를 공격한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인물의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사진을 확인하는 장면과 이 대화를 비교하면 영화가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의 차이가 보인다. 사진 장면에서는 피해자가 이미 기록된 얼굴을 알아보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병원 장면에서는 인물이 직접 한 말이 오히려 의심의 근거가 된다. 하나는 외부에 남아 있던 기록에서 단서를 얻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당사자의 설명에 생긴 틈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두 장면은 수사관이 모든 답을 알고 질문하는 인물일 필요가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사진을 확인하는 피해자의 기억이나 신문을 둘러싼 모순처럼, 처음에는 작은 정보에 불과했던 것이 다른 사실과 연결되면서 중요해진다. 관객 역시 판사가 질문하기 전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면, 새로 드러난 정보가 왜 의심스러운지 함께 판단할 수 있다. 《제트》가 단순한 범인 추적극보다 넓은 이야기가 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수사는 거리에서 직접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찾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사건을 감추려는 움직임이 있었는지까지 밝혀야 한다. 정치인의 죽음은 한 사람의 범행으로 정리되지 않고, 여러 인물의 행동과 권력의 관계를 조사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 마치며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는 사진기자가 촬영한 얼굴 자체보다, 그 사진을 본 사람이 무엇을 알아보는지 살펴보자. 피루와 조르주는 서로 다른 공격을 당했고, 사진을 통해 확인하는 인물도 다르다. 두 장면을 구분하면 사진기자의 취재가 어떤 방식으로 별개의 사건을 연결하는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무화과 장수가 신문 기사를 언급하는 순간에는 한 가지를 생각해 볼 만하다. 그가 알고 있다고 말한 정보는 정말 그가 알 수 있었던 정보였을까? 이 질문은 영화 속 판사가 발견한 모순을 관객도 직접 확인하게 해 준다. 사진 속 얼굴과 신문 기사를 둘러싼 대화는 모두 작은 단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하나는 피해자의 기억으로, 다른 하나는 인물의 말과 실제 상황의 차이로 이어진다. 《제트》의 수사 장면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단서의 크기가 아니라, 그 단서가 앞서 알려진 사실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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