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 케인》(1941)은 찰스 포스터 케인이 죽으면서 남긴 한마디, ‘Rosebud’에서 시작해 한 사람의 삶을 거꾸로 따라가는 영화다. 케인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고, 신문사까지 소유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죽기 직전 그가 남긴 말은 거대한 성공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단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Rosebud’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마치 그 의미를 알아내면 케인의 인생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Rosebud는 케인의 인생을 설명하는 정답이라기보다, 우리가 케인의 삶에서 아주 잠깐 들여다본 한 조각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 1. 어린 시절의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남기도 한다
영화에서 Rosebud의 정체는 케인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썰매였다는 사실로 밝혀진다. 케인은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새로운 환경으로 보내진다. 그에게는 단순히 썰매 하나를 잃어버린 것 이상의 상실이 있었던 셈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겪은 상실이나 상처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더라도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반드시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이 이후의 삶에서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그것을 채우려고 할 수도 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인이 이후 돈과 권력을 쌓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했던 모습과 어린 시절의 상실을 연결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케인의 삶 전체를 어린 시절의 상처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의 인생 전체가 상처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2. 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도 찾으려 했다
케인의 삶에서 내가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수전 알렉산더와의 관계다. 케인은 수전이 원하지 않는 오페라 가수의 길을 계속 밀어붙인다. 그는 수전에게 성공할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수전이 정말 그것을 원했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행동을 단순히 케인이 수전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내적 욕구를 상대에게도 전가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을까. 상대를 위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모습으로 상대를 만들려고 할 때가 있다.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나 성공을 상대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다. 케인 역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까지 다른 사람에게서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돈이나 권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케인의 외로움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는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정작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에는 서툴렀던 인물일 수도 있다.
### 3. 사람은 한 사람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 케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는 여러 사람이 기억하는 케인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케인은 위대한 사업가이고, 누군가에게는 야심가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통제하려 했던 인물이다. 어느 한 사람의 기억만 가지고는 케인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이 오히려 현실의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한 사람 안에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행동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게 행동할 수도 있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도 있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은 숨길 수도 있다. 상대방 역시 자신의 기준이나 바람을 가지고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고도 서로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아주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가 상대방의 모든 모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 있고, 서로가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 4. Rosebud를 알았다고 해서 케인을 모두 알게 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Rosebud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에도 나는 그것이 케인을 이해하기 위한 완전한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썰매는 분명 케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물건이었다. 그의 상실과 기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케인의 모든 삶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케인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려 했던 사람이었다. 사랑을 원하면서도 상대방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려고 했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지만 정작 그를 완전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만약 톰슨처럼 케인의 마지막 말을 알아냈다면 순간적으로 ‘이제 케인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사람은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면 그것으로 나머지까지 설명하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 인간의 한 가지 모습을 알아냈다는 것은 그 사람을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를 살짝 들여다본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시민 케인》의 마지막은 케인의 비밀을 완전히 풀어주는 결말이라기보다, 오히려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결말처럼 느껴진다. Rosebud는 케인의 인생을 설명하는 정답이 아니다. 그것은 케인의 수많은 모습 가운데 우리가 마지막에 발견한 하나의 조각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의 말이나 사건으로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부분까지 남겨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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