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는 겉으로 보면 상당히 화려한 영화다. 상류층 집안의 결혼을 앞두고 전 남편과 기자, 새로운 약혼자가 한자리에 모이면서 여러 관계가 얽힌다. 그래서 처음에는 트레이시가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에 관심이 가기 쉽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연애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트레이시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기준이다. 트레이시는 자신감 있고 빈틈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어쩌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완벽해지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트레이시는 단순히 오만하고 까다로운 여자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스스로 갇혀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 남이 만든 기준보다 무서운 것은 내가 만든 기준일 수 있다
트레이시에게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실수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되는 사람처럼 자신을 만들어온다. 그런데 이런 기준은 처음에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너무 높아졌을 때다. 누군가가 “너는 반드시 완벽해야 해”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그렇게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나는 트레이시를 보면서 이 부분이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의 기대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 때문에 더 힘들어질 때가 있다.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실수 하나도 크게 느껴지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도움을 받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결국 나를 지켜주려고 만든 기준이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는 것이다.
###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해서 이해받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트레이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전 남편 덱스터다. 그는 트레이시의 현재 모습만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까지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 사이에서는 솔직함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만이 언제나 옳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나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한 일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트레이시가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추려 하는 행동도 단순히 위선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나 역시 남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모든 모습을 다 보여주는 것이 언제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다만 그 선택이 지나쳐서 **아무에게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게 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트레이시에게도 바로 그런 지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 트레이시가 닮아 있는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트레이시 주변의 남자들도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조지 키트리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트레이시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트레이시라는 실제 사람을 바라본다기보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상형에 그녀를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트레이시 자신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지는 트레이시에게 이상적인 여성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트레이시는 스스로에게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를 요구한다. 결국 둘 다 실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셈이다. 나는 그래서 트레이시를 처음부터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모습이 나 자신과도 꽤 닮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괜찮은 나’의 모습을 만들어놓고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약해 보이고 싶지 않고, 실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실제의 나보다 **내가 만들어놓은 나의 모습**을 더 열심히 지키게 된다. 트레이시의 완벽함도 그런 모습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이 영화에서 트레이시의 변화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려지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나로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영화에서는 여러 사건과 관계를 거치면서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되지만, 현실의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오랫동안 자신을 억누르던 기준을 하루아침에 내려놓기 어렵다. “이제부터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살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실수하면 후회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다시 숨고 싶어진다. 그래서 트레이시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일보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모습까지 포함해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물론 영화가 결국 트레이시의 변화를 남녀 관계와 연결해서 보여준다는 점은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내적인 변화가 연애와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관계를 빼고 보더라도 트레이시라는 인물이 던지는 질문은 남는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해서 완벽해지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마치며
《필라델피아 스토리》의 트레이시는 처음부터 이해하기 쉬운 인물은 아닐 수 있다. 너무 자신만만하고, 까다롭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려는 행동을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감의 부족에서 나온 강박**으로 바라보면 그녀를 조금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남의 기준에 맞추는 것도 힘들지만, 내가 만든 기준에 나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것도 그만큼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너무 높아지면 완벽해지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나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트레이시에게 필요한 것은 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트레이시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이었고,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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