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수》를 다시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인물은 마이라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를 쉽게 비난할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로이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계속 숨기는 모습은 분명 답답하다.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다면 두 사람의 삶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마이라가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과정에는 전쟁과 가난, 그리고 자신이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삶이 겹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단순히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마이라는 시대의 희생자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선택 때문에 스스로 비극을 만들어간 것일까.
## 워털루역에서 시작된 사랑이 왜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을까
마이라와 로이의 첫 만남은 워털루역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고, 로이는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 처음 워털루역은 두 사람에게 사랑이 시작되는 장소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시 등장하는 워털루역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같은 장소가 시작과 끝에 반복되면서 마이라의 삶이 한 바퀴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이 점이 꽤 인상적이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마이라와 로이가 평범하게 살아갈 가능성도 있었다. 적어도 마이라가 이후에 겪게 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두 사람을 갈라놓았고, 마이라는 로이에게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아갈 기회까지 빼앗겼다. 특히 로이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마이라가 받아들이는 순간 이후의 변화는 단순한 연애의 실패와는 다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믿었고, 자신이 의지하던 미래도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이는 죽지 않았고 다시 돌아온다. 문제는 마이라의 삶이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는 것이다.
## 로이가 돌아왔는데도 마이라는 왜 사실을 말하지 못했을까
나는 이 부분이 《애수》에서 가장 답답하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마이라는 로이를 다시 만난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로이는 마이라가 여전히 자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마이라에게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전쟁 중에 발레단에서 쫓겨났고,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삶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했던 로이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이라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기쁨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두려움이었을 것 같다. 로이가 자신을 예전의 마이라로 보고 있는데, 자신은 이미 그때의 마이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진실을 숨기는 행동을 단순히 거짓말이라고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옳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로이가 진실을 알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이라는 로이와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도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지 않는다. 이 선택은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마이라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그녀는 로이를 잃을까 봐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로이를 잃지 않기 위해 숨긴 진실이 결국 두 사람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는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마이라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책임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느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 마이라는 시대의 희생자인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한 사람이었다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나는 마이라를 완전한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도, 자신의 선택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말하는 것도 둘 다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쟁은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것도, 로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난 때문에 발레단에서 쫓겨난 뒤 살아가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과정 역시 그녀 혼자에게 책임을 돌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마이라가 이후에 한 선택까지 모두 시대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로이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사실을 말할 수도 있었다. 로이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판단을 맡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이라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고, 로이가 진실을 알게 되면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여기서 마이라의 가장 큰 문제가 드러난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랑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숨기게 된다. 그리고 결국 로이는 마이라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 뒤 마이라가 워털루역으로 향하는 장면은 처음 만났던 장면과 겹쳐 보인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됐지만, 마지막에는 그 사랑을 다시는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마이라가 그곳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녀의 죽음을 단순히 사랑의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마이라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로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은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녀의 죽음은 로이에게도 또 다른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결말이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너무 안타깝고, 조금은 답답하다. 마이라에게 다른 선택이 정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이미 자신에게 다른 삶이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린 것인지 끝까지 마음에 남는다.
## 마치며
《애수》에서 마이라는 시대 때문에 인생이 뒤틀린 사람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녀를 단순한 희생자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선택이 있었고, 그 선택 가운데에는 분명 잘못된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전쟁과 가난이 그녀의 선택지를 좁혀놓았고, 그 좁아진 선택지 안에서 마이라는 사랑을 지키려고 했다. 문제는 그 사랑을 지키는 방법으로 진실을 숨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마이라에게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그런 상황에서 정말 쉽게 말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됐다. 아마 《애수》가 지금까지도 단순한 멜로드라마 이상의 슬픔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이라는 완전히 무고한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만든 사람도 아니다. 그녀는 시대에 밀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 사람이었고, 그 얼마 남지 않은 선택 가운데서도 결국 자신의 결정을 내려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워털루역 장면은 사랑의 실패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시대가 빼앗아간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해야 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겹쳐지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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