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 니컬스의 《졸업》(1967)은 대학을 졸업한 벤저민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부모는 그의 미래를 걱정하고, 주변 사람들은 직업과 결혼 같은 다음 단계를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그런데 벤저민은 그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다. 수영장에 떠 있거나 방 안에 가만히 있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벤저민이 조금 답답했다. 가진 것도 많고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도 많은데 왜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벤저민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는가 보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 생각으로 영화를 다시 보니 마지막 장면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벤저민은 결국 일레인을 데리고 결혼식장에서 빠져나온다. 그런데 그 순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버스에 올라탄 뒤 찾아오는 이상한 침묵이 오히려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한다.
## 수영장에 떠 있던 벤저민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수영장에 누워 있는 벤저민의 모습은 《졸업》을 대표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눈을 가린 채 물 위에 떠 있는 그는 겉으로는 아주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오히려 이상하다. 졸업한 사람이라면 이제 무엇인가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벤저민은 계속 움직이지 않는다. 이 장면을 단순히 ‘무기력한 청년’이라고만 보면 조금 아쉽다. 니컬스는 벤저민을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반복했다. 수영장뿐 아니라 어항과 스쿠버 장비 같은 물의 이미지도 사용했고, 유리로 사람과 주변 세계를 나누는 장면도 중요하게 활용했다. 그래서 벤저민은 처음부터 어딘가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문제는 빠져나간 다음 어디로 갈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벤저민을 조금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 더 가깝다. 그래서 부모가 마련해 준 좋은 집과 자동차도 그에게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런데 아직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은 바로 그 애매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도 결국 또 하나의 탈출이었다
벤저민이 로빈슨 부인과 관계를 시작하면서 겉보기에는 드디어 부모의 세계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관계를 자세히 보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는 밤에 호텔로 가고, 낮에는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잠시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그 관계가 끝난 뒤 무엇을 할지는 여전히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영화에서도 벤저민은 이 관계가 지속될수록 더욱 지루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를 벤저민의 첫 번째 ‘탈출’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부모가 정한 미래에서 도망쳤지만, 자기 미래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냥 다른 곳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일레인을 만난 뒤에는 조금 달라진다. 처음에는 일부러 데이트를 망치고, 일레인에게도 제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벤저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처음으로 분명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 행동을 완전한 성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레인을 좋아한다는 것과 그 선택 이후의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 교회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인 순간, 오히려 영화는 끝까지 가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결혼식이다. 벤저민은 마지막 순간 교회에 나타나 유리창 너머의 일레인을 바라보고, 결국 그녀를 데리고 결혼식장을 빠져나온다. 두 사람은 교회 문을 막아버리고 지나가던 버스를 잡아탄다. 여기까지만 보면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웃는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가로막던 사람들에게서 벗어났고, 서로가 원하던 사람과 함께 있게 됐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둘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나란히 앉아 앞을 바라보는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고 불안해 보인다. 이 장면을 두고 나는 처음에는 ‘도대체 왜 여기서 분위기를 이렇게 바꿨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시 보면 이 침묵이야말로 영화 전체와 가장 잘 맞는다. 벤저민은 지금까지 계속 무언가에서 빠져나왔다. 부모가 정해준 삶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 속으로 숨었고, 마지막에는 일레인과 함께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탈출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제 두 사람을 대신해서 미래를 결정해 줄 사람이 없다.
## 그래서 마지막 버스가 오히려 ‘졸업’의 순간처럼 보인다
니컬스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의 웃음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남겼다. 그는 나중에 당시 배우들의 표정이 긴장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순간을 마음에 들어 해 장면을 사용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마지막 버스의 침묵을 실패의 신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으로 남이 정해준 답이 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벤저민은 이제 더 이상 부모의 기대에 맞춰 취직할 필요도 없고, 로빈슨 부인의 관계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없다. 일레인과 함께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조금 전까지는 사랑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버스에 올라탄 순간부터 사랑과 별개로 살아가는 일이 시작된다. 나는 이 장면이 그래서 좋다. 영화가 벤저민에게 ‘이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답을 대신 써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진짜 졸업은 **누군가가 정해준 길에서 벗어난 뒤,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마치며
《졸업》을 처음 보면 교회에서 일레인을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 가장 통쾌하게 기억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장면이 영화의 완성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하면 내게 더 오래 남는 것은 그다음의 버스다. 벤저민은 마침내 탈출했다. 하지만 탈출한 사람의 얼굴이 왜 그렇게 복잡해 보이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그 침묵을 보면서 오히려 이 영화가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고 느꼈다. 사람은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바로 새로운 삶을 얻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벗어난 뒤에야 처음으로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와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버스의 두 사람은 완성된 연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젊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습이 꼭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이번에는 남이 정해준 삶을 따라가는 대신 **자신의 선택으로 버스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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