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첫 장면을 보고 있으면 조금 답답하다. 기차역에 세 남자가 있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금방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사실을 서둘러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인지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한 남자가 물을 받으러 가고, 파리가 주변을 맴돌고, 바람에 장치가 삐걱거리고, 전신기에서는 계속 소리가 난다. 처음에는 이런 장면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생긴다. 특히 서부극의 첫 장면이라면 총을 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빨리 보여줘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레오네는 세 남자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방법을 바꿔 놓았다.**
## 1. 이름 대신 행동을 보여준다
세 남자의 대화만 따라가 보면 이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 사람의 모습은 기억에 남는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얼굴이나 대사 때문만은 아니다. 파리를 귀찮아하는 사람, 물을 받으러 가는 사람, 아무 일 없이 서 있는 사람처럼 각각의 작은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대단한 행동은 아니다. 그 행동이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런데 실제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도 꼭 중요한 말을 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앉아 있는 자세나 무언가를 귀찮아하는 표정처럼 별것 아닌 모습이 오히려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할 때가 있다. 레오네는 이 장면에서 비슷한 방법을 쓴다.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이다”라고 설명하는 대신, **그 사람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세 남자는 아직 이름도, 과거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서로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캐릭터를 소개하는 방식과도 다르다. 영화가 인물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관객이 행동을 보고 직접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가게 한다.
## 2. 왜 하필 이런 쓸데없는 것들이 계속 보일까
여기서 기차역의 사물들이 중요해진다. 파리는 이야기에 필요하지 않다. 물이 떨어지는 것도 사건과 관계가 없다. 전신기의 소리 역시 세 남자의 과거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것들을 그냥 배경으로 밀어놓지 않는다. 세 남자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관객도 덩달아 그것을 보게 된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곳에 오래 있으면 평소에는 지나칠 만한 소리나 움직임이 유난히 신경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기차역은 단순히 세 사람이 서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을 드러내는 일종의 무대가 된다. 파리를 귀찮아하는 모습도 그 공간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고, 물을 받는 행동도 그 기차역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주변의 물건들이 인물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드러내는 데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장면을 다시 볼 때 꽤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볼 때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면 그 쓸데없어 보였던 행동들이 세 남자를 기억하게 만드는 재료가 되어 있다.
## 3. 기차가 오고 나서야 앞의 행동들이 연결된다
한참 뒤 기차가 들어오고 하모니카를 든 남자가 나타난다. 그제야 앞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조금 정리된다. 세 남자는 그냥 기차역에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이 정보를 먼저 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먼저 보여준 것은 사람들의 목적이 아니라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이 순서 때문에 앞에서 보았던 행동들이 뒤늦게 달라 보인다. 파리를 쫓는 것도, 물을 받는 것도,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것도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동이었다는 사실이 뒤에서 연결된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레오네가 관객에게 인물의 설명서를 건네주는 대신, 작은 조각들을 먼저 던져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관객이 그 조각들을 가지고 세 사람을 짐작하게 만든다. 총격이 벌어지는 순간보다 오히려 그 전에 보았던 행동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 4. 이 장면에서는 총보다 파리를 먼저 봐도 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첫 장면을 다시 본다면 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처음부터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무엇을 하는지** 한번 지켜보는 편이 좋다. 누군가는 파리를 쫓고, 누군가는 물을 받고, 주변에서는 전신기가 소리를 내고, 바람에 무언가가 움직인다. 이런 장면들은 줄거리만 생각하면 없어도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인물에게 중요한 행동만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행동까지 보여주면서 세 사람이 실제로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단순히 “느린 서부극의 오프닝”이라고만 부르기에는 아쉽다. **레오네는 세 남자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고, 그들이 지루하고 아무 일도 없는 순간에 보이는 행동을 이용해 관객이 세 사람을 직접 알아가게 한다.** 다음에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총을 뽑는 순간보다 앞부분을 조금 유심히 볼 만하다. 특히 이야기와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행동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파리를 쫓는 손이나 물을 받는 모습처럼 아주 작은 행동을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세 사람의 차이가 조금씩 드러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인물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소개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행동들이다.** 그 점을 알고 다시 보면, 긴 기차역 장면도 전보다 덜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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