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에 왔다는데 이상하다. 관광객이 기대하는 파리는 보이지 않고, 유리벽과 사무실 건물만 계속 나온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정작 누구 하나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비슷한 복도가 나오고, 창밖을 봐도 다른 유리 건물이 보인다.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은 이런 이상한 파리를 한참 동안 보여준다. 처음에는 영화가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으면 화면 한쪽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일이 자꾸 눈에 걸린다.
## 1. 파리에 왔는데 파리가 보이지 않는다
**플레이타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당황스러운 것은 도시의 모습이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오래된 건물이나 좁은 골목, 유명한 관광지를 기대하기 쉽다. 그런데 타티가 보여주는 파리는 전혀 다르다. 미국인 관광객들은 단체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건물을 구경하지만, 건물의 모습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어느 건물이 병원인지, 어느 곳이 사무실인지, 관광객들이 정확히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처음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위베르 씨가 일 때문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도 비슷하다. 그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데 건물은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대신 자꾸 다른 공간으로 연결된다. 사람들이 오가는 유리문과 복도가 계속 이어지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건물인지도 애매해진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건물이 불편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주 현대적이고 깨끗하다. 책상도 반듯하고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편안하지 않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큰 건물에서 약속 장소를 찾느라 몇 번씩 같은 복도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안내판은 있는데 이상하게 내가 있는 곳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타티는 그 경험을 아주 큰 도시 전체로 확대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속 유리 건물은 단순히 현대적인 건물을 보여주는 배경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너무 비슷하게 만들어진 공간에서는 장소의 표정이 사라진다. 편리하고 깨끗한데도 이상하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게 이 영화의 파리가 낯선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 2. 망가진 식당에서 사람들이 오히려 편해진다
**플레이타임**을 이야기하면서 식당 장면을 빼놓기는 어렵다. 이 장면은 영화가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지 잘 보여준다. 새로 문을 연 고급 레스토랑에는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옷차림도 말투도 점잖고, 직원들은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기 위해 애쓴다. 식당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야 하는 곳처럼 보인다.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 이상하다. 시설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 문이 말썽을 부리고, 의자도 불편하다. 벽에 붙어 있던 장식물이 떨어지고, 직원들은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수습하려 한다. 처음에는 손님들도 불편해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았던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식당의 문제가 하나씩 드러날수록 처음에 있던 격식도 조금씩 사라진다. 결국 이곳은 고급 레스토랑이라기보다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어울리는 이상한 파티 장소처럼 변해간다. 나는 이 장면에서 웃음이 나는 동시에 조금 묘했다. 식당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손님들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준비된 식당에서는 모두가 자기 역할을 지킨다. 손님은 손님이고 직원은 직원이다. 그런데 의자가 부서지고 장식이 떨어지면서 그 경계가 흐려진다. 계획대로 할 수 없으니 그냥 상황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정해진 속도로 몰아붙인다. 타티의 **플레이타임**에서는 기계 대신 건물과 가구와 서비스가 사람의 행동을 정해놓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둘 다 결국 사람이 그 질서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순간에 웃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식당이 엉망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이곳이 처음보다 훨씬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준비된 공간에서는 사람도 그 공간에 맞춰야 하지만, 망가진 공간에서는 사람이 직접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 3. 위베르 씨는 계속 엇갈리고, 도시는 계속 움직인다
위베르 씨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모험을 떠난 인물도 아니다.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나려 하지만 계속 엇갈리고, 건물 안에서 길을 찾다가 다른 사람과 마주친다. 바버라 데니스와의 관계도 그렇다. 두 사람은 거창한 사건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 스쳐 지나가고,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진다. 영화가 이 만남을 특별한 사건으로 포장하지 않는 점이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특히 바버라가 관광객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시가 사람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버스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고 건물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개인의 행동은 아주 작아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람들은 계속 계획에서 벗어난다. 누군가는 엉뚱한 문으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약속한 장소를 찾지 못한다. 식당에서는 시설이 고장 나고, 사람들은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난다. 도시가 아무리 사람의 움직임을 통제하려 해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영화 마지막에 자동차들이 원형 교차로를 돌고 또 도는 장면에 이르면 이런 느낌이 더 강해진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거대한 도시의 흐름을 만든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위베르 씨가 이 도시에서 길을 잃었던 이유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가 특별히 서툴러서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사람이 쉽게 기억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그는 계속 다른 사람과 만난다. 결국 내가 **플레이타임**에서 오래 기억하게 된 것은 거대한 건물보다 이런 작은 만남들이다. 영화는 도시를 아주 크게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의외로 사소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잘못 들어가고, 엉뚱한 곳에서 마주치고, 같이 웃는다. 그런 장면들이 쌓이면서 차갑게 보이던 도시에 조금씩 사람의 흔적이 생긴다.
## 마치며
**플레이타임**은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시키지도 않고, 중요한 장면을 따로 표시해주지도 않는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어디를 봐야 할지 놓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한 장면을 오래 보게 된다. 유리 건물 안에서 길을 잃는 사람, 제대로 문을 열지 못하는 직원, 망가진 식당에서 계속 웃는 손님들. 처음에는 각각 별개의 우스운 장면처럼 보였던 것들이 나중에는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타티가 만든 도시는 너무 현대적이고 반듯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반듯하지 않다. 자꾸 실수하고, 엇갈리고, 예정에 없던 행동을 한다. 나는 그게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도시는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 정리되지만, 사람까지 그렇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 엉성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무리 비슷한 건물로 가득 찬 도시에서도 사람 사는 모습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시네마 클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밤의 열기 속으로, 나를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 앞에서 (0) | 2026.09.17 |
|---|---|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나는 이들의 사랑을 끝까지 낭만적으로 볼 수 없었다 (1) | 2026.09.16 |
| 영화 졸업(1967), 사랑을 선택한 뒤 찾아온 이상한 침묵 (0) | 2026.09.15 |
| 욕망(Blow-Up, 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본 이미지의 허구성 (0) | 2026.09.14 |
| 〈페르소나(1966)〉: 자아의 분열과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실험적 영상법 (0) | 2026.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