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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1966)〉: 자아의 분열과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실험적 영상법

infodon44 2026. 9. 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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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1966 영사기
영화 페르소나의 실험적인 영상 연출을 떠올리게 하는 영사기 이미지

서론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페르소나(1966)〉는 처음부터 관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사기와 필름이 돌아가는 모습, 짧게 스쳐 지나가는 여러 이미지가 이어진다. 이후 배우 엘리자베트와 간호사 알마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이 된다. 말을 잃은 엘리자베트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알마는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의 성격과 감정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진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됐다. 특히 두 사람의 얼굴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카메라 때문에 평범한 대화 장면도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1. 알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엘리자베트와 가까워진다

자아의 분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알마가 엘리자베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의 알마는 환자인 엘리자베트를 돌보는 간호사다. 엘리자베트가 말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알마가 대화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알마가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오히려 자신이 점점 불안정해진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별장에서 지내면서 알마는 자신의 약혼자와 생활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법한 과거의 경험까지 털어놓는다. 특히 해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상당히 강렬하게 다가온다. 알마는 그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만 베르히만은 사건을 길게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알마의 얼굴을 바라보게 한다. 나는 이 장면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화면에 직접 보여주는 장면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마는 말을 하면서 점점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부분까지 드러내고, 엘리자베트는 거의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듣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알마가 엘리자베트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엘리자베트 앞에서 자기 자신을 해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알마에게 결정적인 충격이 찾아온다. 엘리자베트가 자신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편지에 적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알마는 자신이 이용당했다고 느끼고 분노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알마의 화가 단순한 배신감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애써 감추고 있던 모습을 엘리자베트가 너무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2.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 두 사람의 경계가 무너진다

〈페르소나(1966)〉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두 배우의 얼굴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베르히만은 인물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촬영한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대화 장면에서 주변 공간이나 몸짓도 함께 보여줄 텐데, 이 영화에서는 얼굴 하나가 화면을 거의 차지한다. 특히 알마와 엘리자베트의 얼굴이 서로 겹쳐 보이는 장면은 두 사람이 점점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처음에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호사와 환자라는 구분이 분명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구분이 흔들린다. 엘리자베트의 침묵은 오히려 알마의 말을 더 많이 끌어내고, 알마의 말은 다시 엘리자베트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베르히만의 실험적 영상법이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화면의 연결이 갑자기 끊기는 듯한 느낌이나 필름 자체를 의식하게 만드는 장면은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한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장면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와 잘 어울렸다. 인물들의 정체성이 흔들리는데 화면까지 안정적으로 흘러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일반적인 심리영화와 비교해도 상당히 다르다. 보통 심리적인 갈등은 대사나 사건을 통해 설명한다. 반면 〈페르소나〉는 설명을 줄이고 얼굴, 침묵, 시선으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느꼈다.

 

 3. 내가 이 영화를 불편하게 느끼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이유

내가 〈페르소나〉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알마는 엘리자베트 때문에 상처를 받지만, 동시에 자신이 감추고 있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드러낸 사람이기도 하다. 엘리자베트는 말을 거의 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물도 아니다. 상대방을 바라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알마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 관계가 오히려 현실의 인간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모습까지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보다 나를 너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페르소나〉라는 제목 역시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얼굴이 있고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이 있다. 알마와 엘리자베트가 서로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은 결국 한 사람 안에 얼마나 많은 얼굴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며

〈페르소나(1966)〉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줄거리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인물의 관계도 관객이 계속 추측하게 만든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렵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불편함 때문에 이 영화를 오래 생각하게 됐다. 특히 알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과 두 사람의 얼굴이 겹쳐지는 장면을 보고 나면 자아라는 것이 정말 하나로 고정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결국 내가 이 영화를 가장 흥미롭게 본 이유는 거창한 철학적 설명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복잡하게 상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페르소나〉는 영화를 보는 일이 단순히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비친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의 모습까지 생각해 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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