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드 를루슈의 《남과 여》(1966)는 겉으로 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다. 배우자를 잃은 남자와 여자가 아이들을 통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순간보다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안에게는 죽은 남편의 기억이 있고, 장 루이에게도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새로운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이미 한 번 사랑을 경험했고, 그 사랑을 잃어본 사람들이다. 내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만 보면 평범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과거의 기억이 계속 끼어든다.
##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전에 이미 누군가를 데리고 있었다
안과 장 루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순간에도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다. 그래서 이들의 대화에는 이상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시간이 많다. 상대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가까워지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특히 안의 과거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기억이 하나의 별도 공간처럼 떨어져 있지 않다. 현재의 안을 보다가 어느 순간 과거의 장면으로 넘어가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과거에 대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 대신 영화가 기억의 조각을 직접 끼워 넣는 방식이다. 나는 이 점이 이 영화의 사랑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안이 장 루이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만 놓고 보면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과거가 계속 함께 등장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는 처음부터 망설임이 섞여 있다. 그래서 안이 행복해 보이는 순간에도 아주 편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과거의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식으로 사랑을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 흑백과 컬러가 섞여 있어서 기억과 현실의 경계가 더 흐려진다
처음 영화를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것도 흑백과 컬러의 변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어느 색이 과거를 뜻하느냐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컬러, 흑백, 세피아에 가까운 화면을 섞어 사용한다. 외부 장면에는 컬러가 많이 쓰이지만 모든 흑백이나 세피아 화면이 과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색채를 단순한 시간표처럼 읽으면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놓치게 된다. Criterion 역시 이 작품의 색채 사용이 일관된 과거·현재의 색상 코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른 필름 스톡의 변화가 감정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바꾼다고 설명한다. 나는 오히려 이것이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실제 기억이라는 것도 흑백 화면처럼 깔끔하게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지금 일어난 일처럼 겹쳐 보인다. 《남과 여》의 화면도 과거와 현재를 딱 잘라 나누기보다 서로 스며들게 만든다. 그래서 안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도 이전 사랑을 떠올리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 자체가 이미 두 시간을 분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자동차 안에서는 사랑이 조금씩 진행되는 시간이 보인다
내가 이 영화에서 의외로 오래 기억한 곳은 자동차 안이었다. 학교를 오가는 과정에서 안과 장 루이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에게 자동차는 단순히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두 사람이 잠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있게 되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의 첫 이동은 학교에서 장 루이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차 안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 말하다가 잠시 조용해지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창밖 풍경이 지나가고, 두 사람은 같은 차 안에 계속 남아 있다. 나는 이 느린 시간이 오히려 이 영화의 사랑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라면 상대에게 바로 뛰어들기보다 이런 애매한 시간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아직 연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남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시간 말이다. 여기에 프란시스 레의 음악이 들어온다. 대표 테마인 〈Un homme et une femme〉를 비롯해 여러 곡이 반복되면서 평범한 이동 장면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사운드트랙에는 〈Samba Saravah〉처럼 브라질 음악의 영향을 받은 곡도 함께 사용됐다. 이 음악이 좋으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약간의 아쉬움도 느꼈다. 사람 사이의 어색함과 망설임이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너무 아름답게 정리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계라면 훨씬 더 어수선하고 불편했을 순간까지 낭만적인 기억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바로 그것이 《남과 여》가 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사랑이 시작되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기억 속에 남게 되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 마치며
그래서 나는 《남과 여》를 단순히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에서 새로운 사랑은 과거의 사랑을 지운 뒤 시작되지 않는다. 죽은 배우자의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는 과정이다. 그것을 영화는 대사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섞이는 화면,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이어지는 조심스러운 시간,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을 크게 부풀리는 프란시스 레의 음악이 함께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거창한 사랑의 장면은 아니었다. 자동차가 달리고, 풍경이 지나가고, 두 사람이 잠시 말을 멈추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때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속도를 조금 이해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다시 사랑한다는 것은 이전의 사랑을 없애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떠난 사람의 기억을 품은 채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 《남과 여》는 바로 그 어색하고 느린 시간을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으로 오래 붙잡아 둔 영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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