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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1966), 이 부부의 싸움에는 늘 관객이 필요했다

infodon44 2026. 9. 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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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술자리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술잔
샴페인을 유리잔에 따르는 모습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조지와 마사가 정말 서로를 싫어하는 부부처럼 보인다. 만나자마자 빈정거리고,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고,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도 상대를 망신시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두 사람은 싸우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누군가 보고 있을 때 싸움은 더 거칠어지고, 하나의 놀이처럼 변한다. 마사가 대학 파티가 끝난 뒤 새로 온 교수 닉과 그의 아내 허니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에서 두 부부가 벌이는 긴 밤의 말싸움은 단순한 부부싸움이라기보다 서로의 약점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여러 게임의 연속에 가깝다. 실제로 영화는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이야기는 술에 취한 하룻밤 동안 이 네 사람 사이에서 진행된다.

 

## 둘만 있으면 끝날 싸움이 왜 손님 앞에서는 더 커질까

조지와 마사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둘만의 싸움에도 이상하게 관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사는 조지를 공격할 때 닉과 허니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조지 역시 마사를 그냥 조용히 반박하는 대신, 손님에게 두 사람의 사적인 일을 하나씩 꺼내 보인다. 처음에는 두 젊은 부부가 그저 늦은 밤에 초대받은 손님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존재 자체가 조지와 마사의 싸움을 굴러가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손님을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 위해 손님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이 집의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사적인 다툼이라기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연처럼 변한다. 나는 이 부분 때문에 조지와 마사의 관계를 단순히 ‘서로 미워하는 부부’라고 보는 것은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상대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상대가 계속 그 게임에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상대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관계에서 빠져버리면 그 게임도 끝나기 때문이다.

 

## 닉과 허니가 들어오자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더 선명해진다

닉과 허니는 처음부터 조지와 마사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점점 그 게임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처음에는 어색한 손님이었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조지와 마사가 서로를 공격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드러내게 된다. TCM 역시 이 밤을 거치면서 두 젊은 부부가 조지와 마사의 심리적인 게임 속으로 끌려들어 간다고 설명한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닉과 허니가 단순한 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조지와 마사의 결혼생활을 비추는 일종의 거울처럼 기능한다. 겉으로는 젊고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둘 사이에도 숨기고 싶은 욕망과 계산이 있다. 조지와 마사가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닉과 허니도 결국 자신들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영화 속 ‘게임’은 단순히 재미있는 말싸움이 아니다. 상대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공개할 수 있는지, 무엇을 숨겨야 하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술이 들어갈수록 그 선이 계속 무너진다.

 

## 그런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성격이 다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은 오히려 닉과 허니 앞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지와 마사가 함께 가지고 있던 가상의 아들 이야기다. 이 아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사람은 오랫동안 그 존재를 공유해 왔다. 영화의 여러 싸움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기 위한 공개적인 게임이었다면, 이 아이는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가장 깊은 비밀에 가깝다. 제작 과정에서도 각본가 어니스트 리먼이 이 아이를 실제로 존재했던 아들로 바꾸는 방안을 생각했지만, 결국 이 설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상의 아이라는 점이 이야기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조지가 이 환상을 없애기로 하는 순간, 단순히 마사의 이야기를 폭로하는 것 이상의 일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면서도 여러 가지 환상을 붙잡고 있었다. 마사의 남편에 대한 기대, 조지의 실패한 경력에 대한 자존심, 닉과 허니에게 보여주던 체면, 그리고 무엇보다 둘만이 공유하던 가상의 아들까지.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중 하나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을 ‘두 사람이 결국 진실을 마주한다’는 식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 밤 동안 두 사람이 계속해왔던 여러 게임 가운데 마지막 게임 하나가 끝나는 장면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부부싸움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라진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두 사람이 관계를 버티기 위해 붙잡고 있던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남는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무서운 것은 부부가 서로에게 잔인한 말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그 싸움을 멈출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싸움에는 관객도 필요하고, 규칙도 필요하고, 때로는 만들어낸 환상까지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고 나면 처음에 보였던 지독한 말싸움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들은 단순히 상대를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결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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