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홍색 벽 앞에 같은 계열의 옷을 입은 인물이 서 있고, 가게 안쪽까지 비슷한 색으로 이어진다. 《쉘부르의 우산》(1964)을 보다 보면 이런 장면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만 예쁘게 찍은 것이 아니라 벽과 가구, 옷까지 서로 맞물려 있다. 처음에는 그냥 화려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조금 오래 보고 있으면 이 색이 단순한 장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노래가 중요한 장면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평범한 이야기를 할 때도 계속 음악이 흐른다. 실제로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되는 이른바 sung-through 방식이고,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 사랑 이야기와 일상적인 대화를 같은 음악적 세계 안에 넣어버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영화를 **색과 음악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 보이게 하는가**라는 쪽에서 보고 싶다.
## 1. 색은 예쁘게 칠한 것이 아니라 인물과 공간을 묶어 놓는다
《쉘부르의 우산》의 색채에서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여러 색이 나온다는 게 아니다. 인물의 옷과 그 사람이 서 있는 공간의 색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시 *Sight and Sound*의 리뷰에서도 분홍과 벽돌색의 조합, 주느비에브의 파란색 계열 옷이 배경의 벽지와 맞물리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검은 우산 하나가 연인의 이별 장면에 끼어드는 것도 그냥 소품 하나가 지나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색채의 변화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화면은 인물을 배경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주느비에브가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그 공간이 그녀를 감싸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색까지 둘이 같은 세계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는 이 점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가까운 사이란 것을 대사로만 설명하지 않고, **화면 전체가 그 관계를 함께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헤어지고 각자의 삶으로 가면 이 효과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처음에는 인물과 공간의 색이 서로 잘 맞는 것이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는 그 장면들이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벽이고 같은 색인데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 색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억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색은 단순히 예쁜 배경이라고 말하기에는 아깝다.
## 2. 르그랑은 왜 모든 말을 노래로 만들었을까
음악 쪽으로 들어가면 더 독특하다. 보통 뮤지컬은 평범한 대사와 노래가 어느 정도 구분된다. 그런데 《쉘부르의 우산》은 그 경계를 거의 없애버린다. 주느비에브가 어머니와 이야기할 때도, 기가 일을 이야기할 때도,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할 때도 같은 방식으로 노래가 이어진다. BFI는 이 작품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된다는 점과, 일상적인 대화까지 르그랑의 음악 안으로 들어간다는 점을 이 영화의 핵심 형식으로 설명한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상당히 대담한 방식이다. 사랑의 감정만 음악으로 만들면 “이 장면은 중요하다”는 표시가 된다. 그런데 생활비나 가족 문제까지 계속 노래가 되어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영화에서는 특별한 감정과 평범한 생활이 음악적으로 같은 세계에 들어간다.** 나는 이게 기와 주느비에브의 관계를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사랑만 하면서 살지 않는다. 일도 해야 하고, 부모와 이야기도 해야 하고, 돈과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결국 둘이 헤어지는 것도 감정 하나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전쟁과 가족과 생활이 사랑 사이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BFI는 작품이 젊은 사랑뿐 아니라 알제리 전쟁과 임신, 사회적 압력까지 함께 다룬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노래로 만든 선택이 오히려 맞는다. 사랑도 생활의 일부이고, 이별도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 같은 멜로디가 나중에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깊게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같은 음악이 다시 나온다는 것.** 영화는 시작부터 르그랑의 중심 주제를 들려준다. Criterion은 그 선율인 「Je ne pourrai jamais vivre sans toi」가 영화의 주요 주제로 반복되며, 영어권에서는 「I Will Wait for You」로도 알려졌다고 설명한다. 처음 이 선율은 현재의 사랑을 위한 음악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고, 아직 앞으로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때 들린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같은 선율을 다시 들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음악이 꼭 다른 곡으로 바뀌어서가 아니다. **그 음악이 놓인 시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멜로디였는데, 나중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떠올리는 멜로디가 된다. 이게 참 재미있다. 음악이 인물의 감정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기억 속에 장면을 저장해 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음악감독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름다운 멜로디’ 자체보다 **반복할 수 있는 멜로디를 처음부터 심어놓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그냥 사랑 노래처럼 들렸던 선율이 마지막에 돌아왔을 때 관객은 이미 그 음악과 함께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 같은 음이지만 같은 감정이 아니다.
## 3. 마지막 주유소에서는 색과 음악이 동시에 과거를 불러낸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이 영화의 방법이 한꺼번에 보인다. 기와 주느비에브는 시간이 흐른 뒤 주유소에서 다시 만난다. 주느비에브는 딸과 함께 왔고, 기도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다. 둘은 잠깐 마주하지만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BFI가 소개하는 이 장면에서도 두 사람의 대화는 짧고 어색하며, 곧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관객에게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에서 들었던 음악이 다시 돌아온다. 색도 처음의 화려한 색감과 달리 훨씬 차분하게 느껴진다. Criterion은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의 주제가 더 조용하고 애도하는 듯한 느낌으로 변주되며, 앞서 만들어진 낭만적인 세계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두 요소가 겹친다. 화면은 “이제는 현실이다”라고 말한다. 음악은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다”라고 기억을 꺼낸다. 나는 이게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 마지막 장면까지 음악과 색이 처음과 똑같은 방식으로 흘렀다면 그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반대로 마지막을 갑자기 어둡게 만들었다면 너무 쉽게 슬픔을 설명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쉘부르의 우산》은 앞에서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그 대신 **아름다웠던 것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한 화면 안에 같이 놓는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다시 사랑하지 않아도 장면 자체가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 아름다운 영화라서 더 슬픈 것이 아니라, 아름다웠던 것을 그대로 기억하게 하기 때문에 슬프다
이렇게 보면 《쉘부르의 우산》의 색과 음악은 각각 따로 노는 장식이 아니다. 색은 인물과 공간을 하나로 묶어 사랑의 세계를 만든다. 음악은 일상적인 대화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 그 시간을 계속 이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색과 음악이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불러낸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를 단순히 “예쁜 뮤지컬”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쉽다. 오히려 **영화가 처음부터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이 나중에 기억의 형태로 돌아오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분홍색 벽도, 화려한 옷도, 사랑의 멜로디도 그저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에 다시 떠올리면 전혀 다르다. 그것들은 행복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흔적이 된다. 특히 르그랑의 음악이 그렇다. 처음에 들었던 같은 선율이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처럼 들린다. 음표가 변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쉘부르의 우산》을 다시 볼 때는 화면과 음악을 따로 보지 않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색이 어떤 공간과 인물을 붙여놓는지, 같은 멜로디가 언제 다시 나타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그 둘이 어떤 모습으로 남는지를 따라가 보면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아름답고 동시에 쓸쓸한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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