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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과 2분의 1 (1963), 만들지 못한 영화가 결국 이 영화가 되어버렸다

infodon44 2026. 8. 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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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 영화 <8과 1/2>, 창작자의 고뇌를 상징하는 흑백 텅 빈 극장 객석 이미지
인적 없는 흑백 톤의 텅 빈 극장 내부와 무대의 모습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영화가 망해버리는 것 같은 장면이 있다. 구이도 안셀미는 새 영화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촬영장을 마련해 놓았지만, 정작 자신이 무슨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질문이 쏟아지고, 구이도는 점점 곤란해진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던 영화를 포기하겠다고 하고, 촬영장까지 없애라고 한다. 거대한 세트는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그대로 무너질 처지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창작에 실패한 감독의 이야기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8과 2분의 1》은 바로 그 순간부터 진짜 영화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구이도가 만들지 못했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가 만들려고 했던 영화보다 그가 왜 영화를 만들지 못했는지가 훨씬 많이 화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영화 속 사람들은 왜 자꾸 구이도의 영화가 되어버릴까

구이도 주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내 루이자, 연인 칼라, 배우 클라우디아, 제작자와 작가, 기자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계속 그 앞에 나타난다. 현실에 있는 사람과 머릿속에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간다. 재미있는 것은 구이도가 이 사람들을 그냥 만나고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볼 때도 자꾸 장면을 만든다. 클라우디아를 바라볼 때는 그녀를 이상적인 여인처럼 바라보고,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는 오래전 기억 속의 인물들이 다시 살아난다. 현실에 있는 사람도 잠깐씩 영화 속 인물처럼 변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이 사람이 실제로 지금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이 조금씩 흐려진다. 그렇다고 구이도가 거짓말을 한다고만 볼 수도 없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과 실제 모습을 계속 섞어버리는 사람**에 가깝다. 이 점이 그의 창작 위기와 연결되는 것 같다. 영화에 무엇을 넣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거도 있고, 현재의 여자들도 있고, 욕망도 있고, 죄책감도 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려고 하니까 영화가 자꾸 흩어진다.

 

## 구이도에게는 영화의 재료가 너무 많은 것 아닐까

그래서 거대한 촬영장이 조금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세트는 점점 커지는데 정작 그 안에 무엇을 찍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감독에게 답을 요구하지만 구이도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여기서 나는 구이도의 문제가 단순한 아이디어 부족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꺼내려고 한 것이 문제였던 것 아닐까.** 그가 만드는 영화에는 거대한 세트가 필요하고, 배우도 필요하고, 이야기도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구이도 자신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만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영화의 재료가 된다. 아내와의 불편한 관계도 그렇고, 다른 여자들을 바라보는 욕망도 그렇고, 어린 시절의 기억도 그렇다. 영화 안에는 실제 사람과 구이도의 기억과 환상이 섞여 있다. BFI도 이 작품을 구이도의 현재와 과거, 꿈과 환상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영화로 설명한다. 그래서 구이도가 영화의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하는 모습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아직 한데 놓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 마지막에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다

이 생각을 가지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 처음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영화 마지막에는 구이도의 삶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모두 다시 나타나고, 거대한 미완성 세트 주변을 행진한다. 구이도가 처음부터 꿈꾸던 완성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세트도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완성된 순간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아마 구이도가 마지막에 가서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억지로 하나의 이야기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아내도 있고, 사랑했던 여자들도 있고, 어린 시절의 자신도 있고,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도 있다.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그 장면이 중요한 것은 갈등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그동안 따로 떨어져 있던 것들이 한 장면 안에 같이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구이도가 처음부터 찾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그는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찾은 것은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혼란까지 포함할 수 있는 영화의 형태**였던 것 아닐까.

 

## 그래서 제목의 '반'이 조금 재미있게 느껴진다

영화 제목 《8과 2분의 1》은 펠리니가 그때까지 완성한 영화들의 수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장편 7편과 공동연출작 등을 계산해 ‘8과 1/2’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제목이 단순히 숫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8편도 아니고 9편도 아닌 **8편 반**이다. 어딘가 모자란 것 같고,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8과 2분의 1》은 그 애매한 상태를 숨기지 않는다. 영화 안의 구이도도 그렇다. 영화는 완성되지 않고, 이야기도 자꾸 끊기고, 현실과 기억도 정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엉켜 있는 상태 자체가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작품을 단순히 “창작의 고통을 다룬 영화”라고만 하면 조금 아쉽다. 내가 보기에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구이도는 마지막까지 완벽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기억과 욕망을 모두 같은 화면 안에 놓는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영화를 만들지 못해서 괴로워하던 감독의 이야기였는데, 끝에 가서는 바로 그 실패와 혼란이 영화의 내용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8과 2분의 1》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구이도가 어떤 멋진 영화를 완성했느냐가 아니다. **완성하지 못한 영화 때문에 헤매던 시간이 결국 자신이 만들 수 있었던 가장 솔직한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것.** 어쩌면 구이도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복잡한 것들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의 원을 보고 있으면 처음의 거대한 촬영장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것이 들어갈 것 같아서 텅 빈 것처럼 보였던 공간이, 마지막에는 구이도의 삶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들어간 장면이 된다. 완성된 세트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충분하다. **영화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구이도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정리하려 하지 않게 된 순간 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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