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즈메리는 임신을 원했고, 남편 가이와 함께 새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임신이 확인된 뒤부터 이상한 일이 하나씩 생긴다. 새로 만난 이웃은 지나치게 친절하고, 남편은 로즈메리를 걱정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의사는 그녀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해준다. 겉으로 보면 모두 로즈메리와 아기를 위한 행동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로즈메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는 《로즈메리의 아기》(1968)의 공포가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즈메리가 자신의 몸과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장 마지막까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이상한 이웃
로즈메리와 가이가 브램퍼드 아파트로 이사한 뒤 만나는 민니와 로먼 캐스터벳 부부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적극적이다. 민니는 사소한 일에도 말을 걸고 음식을 가져오며, 로먼은 가이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이들은 처음에는 조금 피곤할 정도로 참견이 심한 노부부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보통 공포영화에서는 위험한 사람이 위험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민니는 로즈메리를 걱정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임신을 축하하고, 음식을 챙기고, 이것저것 조언한다. 바로 그 친절함 때문에 로즈메리는 상대를 처음부터 의심하기 어렵다. 특히 로즈메리가 임신한 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이 그렇다. 모두가 아이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는 당사자인 로즈메리의 의견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는 이 점이 《로즈메리의 아기》의 독특한 공포라고 느꼈다. **악의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섭다.** 그들은 로즈메리에게 “네가 싫어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그녀가 무엇을 먹고, 누구에게 진료를 받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조금씩 정해버린다.
## 임신한 뒤부터 로즈메리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다뤄진다
로즈메리는 처음에는 임신을 원한다. 그런데 임신이 확인된 뒤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에서 점점 멀어진다. 캐스터벳 부부가 소개한 산부인과 의사 사프스타인은 로즈메리의 임신을 관리하게 되고, 민니가 건네는 음료도 그의 치료 과정에 포함된다. 로즈메리는 점점 체중이 빠지고 복통까지 겪지만 주변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결국 친구 허치가 이상한 점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로즈메리에게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한다. 여기서 영화의 이상한 구조가 드러난다. 로즈메리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변화를 해석하는 권한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 있다. “괜찮다.” “그건 임신 때문에 그렇다.” “이것을 먹으면 좋아진다.” 이런 설명이 계속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 말이 의사의 조언이나 남편의 배려처럼 들린다. 하지만 하나씩 모아놓고 보면 로즈메리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빼앗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의 임신을 단순히 악마의 아이를 잉태하는 공포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초자연적인 사건이 현실인지 의심하는 동안에도, 훨씬 현실적인 방식으로 한 사람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주변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런데 관객도 로즈메리보다 조금 먼저 이상함을 알아차린다
폴란스키가 영화를 무섭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관객에게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주지 않는 것이다. 캐스터벳 부부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가이 역시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서도 로즈메리 앞에서는 계속 평범한 남편처럼 행동한다. 의사 역시 특별히 악의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로즈메리와 함께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짐작하게 된다. 이런 방식 때문에 사소한 장면도 나중에는 의미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평범한 친절처럼 보였던 행동이 다시 생각하면 로즈메리를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기 위한 과정처럼 보인다. 영화가 로즈메리의 불안을 단순히 환각이나 과민반응으로 처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폴란스키는 관객이 끝까지 현실적인 설명과 초자연적인 설명 사이에서 흔들리게 만든다. 나는 이 때문에 이 영화가 더 불편하다고 느낀다. 정답을 너무 늦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알아가는 동안에도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계속 흔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 마지막 요람에서 처음으로 로즈메리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영화의 마지막에 로즈메리는 아이를 낳는다. 가이는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고, 로즈메리는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를 듣는다. 결국 칼을 들고 캐스터벳 부부의 방으로 가서 자신에게 숨겨진 아이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곳에는 검은 요람에 누워 있는 아기가 있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 장면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아기의 정체보다 **로즈메리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설명을 믿지 않고 직접 확인하러 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의 설명을 들었고, 의사의 설명을 들었고, 이웃의 말을 들었다. 자신의 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져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먼저 들어야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볼 것인지 결정한다. 물론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끔찍하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도 아기의 모습을 관객에게 아주 편안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검은 요람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 로즈메리의 표정을 통해 관객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다. 로즈메리는 아기를 보고 처음에는 물러선다. 하지만 결국 요람 곁으로 다가가 아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나는 이 마지막 행동을 단순히 “악마의 아이를 받아들였다”고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로즈메리가 이 상황을 받아들인 것인지, 아이에 대한 모성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인지는 관객에게 남겨진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로즈메리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정해준 설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본 것과 마주한다.**
## 마치며
《로즈메리의 아기》를 보고 나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내내 아무도 크게 소리치지 않았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웃은 친절했고, 남편은 다정한 척했고, 의사는 전문적인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그런데 그 친절한 얼굴들 뒤에서 로즈메리의 몸과 아이에 관한 결정은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처음에는 평범했던 장면들이 뒤늦게 무섭게 보인다. 음식을 건네는 일도, 의사를 소개하는 일도, 걱정해 주는 말도 모두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를 **‘악마에게 쫓기는 여자의 이야기’보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무엇을 알고 결정할 수 있는지를 빼앗기는 사람의 이야기’**로 볼 때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로즈메리는 마지막까지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마지막에는 직접 문을 열고, 직접 아기를 보고, 직접 그 앞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한다. 《로즈메리의 아기》가 오래 남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가장 위협적인 표정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내가 선택할 일을 대신 정해버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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