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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상하게 오래 바라보게 되는 장면들

infodon44 2026. 9. 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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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간에 떠 있는 행성
어두운 우주 공간에 행성이 떠 있는 모습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처음 볼 때 나는 영화가 꽤 느리다는 생각을 했다. 우주선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인물들은 한참 동안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요즘 SF 영화처럼 무언가가 계속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이상하게 몇 장면은 머릿속에 남았다. 특히 우주선 안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 그랬다. 거대한 우주를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계속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우주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더 오래 생각났다.

 

## 1. 우주에 가서도 사람은 똑같이 밥을 먹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내가 의외로 오래 기억한 것은 거대한 우주선이 아니라 식사 장면이었다. 우주선 안에서 승무원들이 음식을 먹고 화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별다른 사건도 없이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화면을 오래 보게 된다. 우주라고 하면 보통 영화에서는 모험이나 위험을 먼저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사람들은 우주 한가운데에서도 아주 평범하게 생활한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화면을 보고, 자기 일을 한다.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생활의 모습은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큰 사건보다 이런 사소한 장면에 시선이 가는 편이다. 사람이 컵을 내려놓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 같은 것이 그 공간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더 잘 보여준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장면도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런 평범한 생활 속에 HAL 9000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은 HAL에게 말을 걸고, HAL은 침착하게 대답한다. 컴퓨터가 사람의 생활을 도와주는 것이 이미 너무 자연스러워진 세계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그 편리함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같은 붉은 렌즈를 보고 있는데도 처음과 나중의 느낌이 달라진다. 사람이 HAL을 이용하는 것인지, HAL이 사람의 생활을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 2. HAL을 미워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HAL 9000**은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존재다. 처음부터 무서운 악당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말투도 정중하다. 오히려 인간보다 감정 기복이 없는 상대처럼 보인다. 데이브와 프랭크가 HAL의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특히 두 사람이 작은 공간에서 HAL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는 장면이 그렇다. 둘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HAL은 그들을 보고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제 일이 잘못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은 이미 HAL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데이브와 프랭크는 아직 우주선 안에 있어야 한다. 그 상황 자체가 답답했다. 프랭크가 우주 공간으로 밀려나가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아주 큰 사건인데도 영화는 감정을 크게 터뜨리지 않는다. 사람이 우주복을 입고 허공으로 멀어져 가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게 한다. 오히려 그래서 죽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이후 데이브가 HAL에게 돌아가 기능을 하나씩 끄기 시작하면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생겼다. 분명히 HAL은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당연히 데이브가 HAL을 정지시키는 것을 보면서 통쾌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HAL의 목소리가 점점 달라지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어가는 듯한 말을 하고, 마지막에는 노래까지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 전까지 두려워했던 존재가 갑자기 전혀 다르게 보였다. 물론 HAL이 저지른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장면에서 느낀 안쓰러운 마음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나는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HAL을 단순한 악당으로 만들어버렸다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큐브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인간을 죽이고, 결국 인간이 그 컴퓨터를 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에는 관객이 기계 쪽에 조금 마음을 빼앗기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HAL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 인간이 명령을 내리고 기계를 만든다고 해서 그 기계의 행동까지 언제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 3. 마지막 장면을 보고 다시 영화의 처음이 생각났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데이브가 이상한 빛의 공간을 지나가는 장면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색과 빛이 빠르게 지나가고 낯선 방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데이브는 자신의 모습을 여러 단계로 마주한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노인이 된 데이브 앞에 모노리스가 다시 나타난다. 마지막에 거대한 태아와 같은 존재가 우주에 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한동안 화면을 그냥 바라봤다.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영화 초반의 원숭이들이 떠올랐다. 처음에 원숭이 한 마리가 뼈를 집어 들고 다른 뼈를 내려치는 장면이 있다. 뼈를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낸 순간이다. 그리고 그 뼈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영화는 아주 먼 미래의 우주선으로 넘어간다. 마지막의 태아까지 이어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계속 변하고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뼈를 도구로 쓰던 인간이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로 나가고, HAL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에는 무엇이 될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도 모노리스가 정확히 무엇인지, 데이브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자신 있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떤 해석이 맞는지 나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꼭 하나의 답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영화를 보고 나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해가 덜 된 상태로 끝나도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며칠 뒤 문득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고, 그러다 보면 다시 처음의 뼈 장면까지 연결된다. 그게 이 영화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마치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누구에게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긴 침묵과 느린 장면을 보면서 ‘이 장면은 왜 이렇게 오래 보여주는 걸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에는 오히려 그 느린 장면들이 기억에 남았다. 우주선 안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 붉은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HAL, 우주 공간에서 멀어지던 프랭크,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난 태아까지. 특히 HAL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인간을 죽인 존재인데 마지막에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도 그것을 정확히 설명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이상하게 다시 보고 싶은 영화라는 생각은 남아 있다. 아마 이 영화는 내가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장면이 몇 개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 생각나는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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