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보물섬》(1950), 보물을 찾는 이야기보다 더 오래 남은 사람 《보물섬》을 다시 보면서 이상하게 눈에 들어온 것은 보물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보물을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짐 호킨스가 롱 존 실버를 대하는 태도**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모험영화라고 생각했다. 소년이 보물지도를 발견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해적들과 싸우는 이야기니까. 실제로 1950년작 《보물섬》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고, 월트 디즈니의 첫 완전 실사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바이런 해스킨이 연출했고 바비 드리스콜이 짐 호킨스, 로버트 뉴턴이 롱 존 실버를 연기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궁금해진 것은 따로 있었다. **짐은 왜 실버를 완전히 미워하지 못했을까?**
## 1. 처음부터 악당으로 보이지 않는 롱 존 실버 실버는 처음부터 위험한 사람이다.
그는 선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만들고, 짐에게도 친근하게 접근한다. 짐은 그의 말을 믿고 따르다가 나중에야 그가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관객인 나 역시 짐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다는 점이다. 실버가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서도 그의 행동을 계속 지켜보게 된다. 그는 단순히 무섭기만 한 해적이 아니다. 사람을 웃게 만들기도 하고, 짐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도 한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짐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모습 때문에 실버를 완전히 악인으로만 보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이것이 실버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보물을 위해 사람을 속이고 반란을 일으키며 자신의 목숨을 위해 태도를 바꾸는 인물이다. 다만 영화는 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표정의 악당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이 오래된 모험영화를 지금 다시 볼 때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느꼈다.
## 2. 짐은 실버에게 무엇을 배웠을까
짐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검술이나 모험의 기술만은 아닌 것 같다. 실버를 만나면서 짐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 배운다. 처음의 짐에게 어른들은 비교적 단순하게 보인다. 믿을 만한 사람과 위험한 사람이 구분되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배에 올라탄 뒤부터 그 구분이 흔들린다. 선원 가운데 누가 누구 편인지 알 수 없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실버는 짐에게 더 복잡한 경험을 안겨준다. 자신을 속인 사람인데도 완전히 싫어할 수는 없는 사람. 위험한 인물인데도 어느 순간에는 도움을 받게 되는 사람이다. 나는 이 관계가 짐의 모험에서 보물보다 더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보물을 찾는 일은 결국 끝난다. 하지만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짐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계속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3. 마지막에 짐이 실버를 도와주는 장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관계가 가장 묘하게 드러난다. 실버가 붙잡히고 보물도 손에 들어온 뒤, 짐은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 않는다. 실버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돕는 행동까지 한다. 처음 이 장면을 보면 조금 의아하다. ‘저 사람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는데 왜 도와주지?’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짐에게 실버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을 속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세상을 보는 다른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는 장면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받은 복잡한 감정을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는 순간**으로 보게 됐다. 실버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 역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버는 끝까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만 짐은 그 사람에게서 배운 것과 느낀 것을 모두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는다.
## 4. 그래서 이 영화의 보물은 무엇일까
《보물섬》이라는 제목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숨겨진 금화와 보물상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다른 종류의 보물이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이 얻은 것은 보물만이 아니다.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직접 경험했고, 믿음과 배신이 한 사람 안에서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50년 당시 이 영화는 디즈니 최초의 완전 실사 장편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당시 평론에서도 로버트 뉴턴의 과장된 롱 존 실버 연기가 특히 눈에 띄는 요소로 언급됐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화려한 모험이나 해적의 모습보다 짐과 실버 사이의 이상한 관계가 더 오래 남는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서도 무언가를 배우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좋고 나쁨만으로 사람을 완전히 나누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는 것. 내가 《보물섬》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보물은 결국 발견되지만, 짐이 실버를 통해 배운 사람에 대한 복잡한 감각은 아마 보물보다 오래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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