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상속녀》를 처음 봤을 때는 캐서린이 마지막에 모리스를 거부하는 장면이 가장 강하게 남는다. 한때 그 사람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던 여자가 이제는 문을 잠그고 돌아서 버린다. 그래서 이 장면을 흔히 배신에 대한 복수나 한 여자의 냉정한 변신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다시 보니 내 눈에 조금 다르게 들어온 것은 캐서린의 **행동과 공간**이었다. 이 영화에서 캐서린은 중요한 순간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들어가고 나오는지, 무엇을 손에 들고 있는지 같은 행동이 그녀의 상태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모리스가 캐서린의 삶을 결정하려 할 때 그녀는 계속 다른 사람의 공간 안에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자신이 문을 닫고, 불을 끄고, 계단을 올라간다. 나는 이 변화가 캐서린의 성격이 갑자기 강해졌다는 것보다 더 흥미로웠다.
## 1. 캐서린의 집은 편안한 공간이었지만, 처음부터 그녀의 공간은 아니었다
영화 속 캐서린의 집은 넓고 안정되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캐서린은 자기 삶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오스틴 슬로퍼는 딸을 계속 어머니와 비교한다. 캐서린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도 아버지이고, 모리스와 결혼해도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도 아버지다. 모리스가 찾아왔을 때도 캐서린의 사랑은 자신의 집 안에서조차 아버지의 판단을 통과해야 한다. AFI의 줄거리에서도 오스틴은 캐서린을 어머니와 비교하며 그녀를 낮게 평가하고, 모리스와의 결혼을 막기 위해 상속 문제까지 꺼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집을 단순히 부유한 집이라고만 보게 되지 않았다. 캐서린에게 집은 보호받는 장소인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평가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녀가 모리스와 사랑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캐서린은 자기 마음을 스스로 결정했지만 그 결정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결국 집 안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서도 그 선택에 대한 최종 권한은 자신에게 없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캐서린의 행동을 보면 초반의 그녀는 늘 누군가의 반응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리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다음 행동이 달라진다. 나는 그래서 캐서린의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강해진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다른 사람의 반응에 맡기지 않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 2. 자수는 캐서린이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도 시간이 흘렀다는 흔적이었다
영화에서 캐서린에게는 자수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아버지는 그녀의 다른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수를 잘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리고 모리스가 그녀를 떠난 뒤 캐서린은 자신이 시작했던 자수 작업을 계속한다. 훗날 모리스가 돌아왔을 때도 그녀는 자수를 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모리스가 다시 찾아오는 바로 그 시간까지 자수를 완성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자수가 단순히 캐서린의 얌전한 성격을 보여주는 소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서린은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리스는 떠나고, 아버지는 죽고, 세월이 흐른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캐서린은 계속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모리스가 돌아온 뒤에도 캐서린이 예전처럼 그의 말에 즉시 끌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리스가 다시 결혼을 제안하자 캐서린은 겉으로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 자신은 그를 거절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될 때까지 자수를 계속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캐서린이 처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자기 손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모리스가 오면 기다렸고, 모리스가 오지 않으면 무너졌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모리스가 문밖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캐서린은 자기 일을 끝낸다. 상대가 서두른다고 해서 자신까지 서두르지 않는다. 이 작은 차이가 오히려 캐서린의 변화를 크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 3. 모리스가 다시 찾아왔을 때, 달라진 것은 캐서린의 행동이었다
모리스가 돌아왔을 때 캐서린은 처음부터 문을 활짝 열어 맞이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그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바꾼다. 나는 이 장면이 재미있었다. 캐서린은 여전히 모리스에게 감정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의 캐서린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모리스가 자신의 삶에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는 쪽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그 사람을 들어오게 할지 결정하는 쪽**에 서 있다. 이 차이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영화 전체를 다시 보면 꽤 크다. 모리스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말을 한다. 자신이 왜 떠났는지 설명하고, 캐서린에게 다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캐서린이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는다. 오히려 모리스가 돌아온 뒤의 장면에서는 캐서린이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안에서 별도의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순간부터 모리스는 더 이상 캐서린의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캐서린은 그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변화가 **표정이나 대사보다 출입의 방향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캐서린의 삶에 들어와 그녀를 움직인다. 마지막에는 캐서린이 문을 열지 말지를 결정한다.
## 4. 마지막 문은 모리스를 향한 문이면서, 캐서린 자신의 삶을 지키는 문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캐서린은 모리스가 약속한 시간에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만나러 나가지 않는다. 대신 불을 끄고 문을 안에서 잠근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간다. AFI의 상세 줄거리에도 이 장면은 캐서린이 모리스의 애원에 응하지 않고 집 안쪽으로 돌아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나는 예전에는 이 장면을 단순히 “캐서린이 드디어 모리스를 거절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 안쪽에 남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모리스는 문밖에 있다. 캐서린은 문 안에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특별한 의미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이 장면의 공간적 위치가 묘하게 느껴진다. 한때 캐서린은 아버지가 정한 집 안에서 살았고, 모리스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는 그녀가 직접 문을 닫는다. 그리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다. 나는 이 장면이 캐서린의 승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오래 남는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누가 들어오고 누가 나갈지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 캐서린은 더 이상 모리스에게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 대신 문을 잠그고 돌아선다. 어쩌면 《상속녀》에서 가장 큰 변화는 캐서린이 차가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여자가 마지막에는 자기 공간과 자기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는 캐서린의 뒷모습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모리스와의 사랑이 끝나는 장면이라기보다, **캐서린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 안쪽으로 돌아가는 장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마치며
《상속녀》를 다시 보면서 나는 캐서린의 변화를 대사보다 행동으로 보게 되었다. 처음의 캐서린은 집 안에 있지만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못한다. 중간에는 자수를 하며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직접 문을 닫고 계단을 올라간다. 같은 집인데도 마지막에 그 공간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캐서린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문은 단순히 모리스에게 닫힌 문이 아니라, 캐서린이 자기 삶의 안쪽과 바깥쪽을 스스로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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